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골 1:25-29)
(골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세상에서 가장 긴급한 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되 악한 사람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과학과 지식과 경제가 발달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의 발달 중에 무엇보다 획기적인 것은 생명의 변이와 복제가 가능한 유전공학이 발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과학의 발달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될까요? 아니면 해가 될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로 말미암아 우주와 인간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창조주 하나님으 위대하심과 지혜로움에 대해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면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과학만능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마치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이 올 것처럼 착각하고 과장하고 교만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유전공학을 통해서 인간의 죄성의 근본적인 원인이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유전인자가 원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잘못된 유전인자를 찾아서 치료함으로 범죄 성향을 제거할 수 있고 완전무결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마치 인간의 과학이 신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입니까요? 결코 아닙니다. 큰 착각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바로 유전공학을 통해서 변이된 농산물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마다 막대한 농산물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가운데 유전공학으로 조작되어 생산된 콩이나 옥수수가 정상적으로 생산된 농산물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값이 쌀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기피하는 이유는 그것을 먹음으로 혹시나 인간의 유전자에도 변이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설령 인간의 유전공학에 의해 악한 유전인자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 할지라도 만일 타락한 인간이 의도적이거나 아니면 실수로 인해 정반대로 선한 유전인자를 악하게 변이시켜 더 악한 인간이나 괴물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해진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불신앙의 죄가 자초한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타락한 인간이 선해지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욕심이기 때문에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 본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선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구해야만 합니다.
물론 인간의 악한 심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도 여전히 변화되지 못하여 세상사람 못지않게 악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변화가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변화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한 평생을 지켜보게 되면 비록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 일컬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안에 하나님의 일꾼들을 세워 비록 더딘 것 같지만 그일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의 가정을 돌이켜 보면 어제의 아이가 자라서 오늘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자라서 내일에는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의 새 신자가 오늘의 일꾼이 되고, 오늘의 새 신자가 내일의 일꾼이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영원한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나를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셨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또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 하나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고난 중에서도 어떻게 믿음을 지켰는가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고후 6: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 6: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고후 6: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고후 6: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 6: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일꾼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면 사도 바울을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이가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으니 사도 바울은 곧 하나님의 일꾼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으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과연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며,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통해서 그 의문을 풀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한 것은 바울이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골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기서 ‘일꾼’이라는 말이 지금 교회 안에서 익숙한 ‘집사’라는 단어와 같은 말(diavkono")로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 또는 시중드는 ‘하인, 고용인. 청지기, 빵 굽는 사람, 조타수’ 라는 뜻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교회가 세운 것도 아니고, 자의로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직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는 누가 세우셨으며, 이 교회의 머리는 누구이실까요?
그렇다면 오늘 교회 안에 목사 장로 집사 권사 교사 구역장은 누가 세우셨을까요? 골로새 교회와 동일하게 우리 교회를 세우신이도 하나님이시라면 우리 교회의 주인도 동일하게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을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이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해마다 삼일절, 현충일, 8 15 해방절이 되면 국가 유공자에 대한 표창이 있습니다. 물론 이미 유공자들은 고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손들이 유공자의 표창과 연금을 수령하고 그 집 대문에는 국가 유공자라는 자랑스런 패가 붙어 있음으로 그 자손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물며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주신 것이면 나름대로 영적인 자부심과 더불어 투철한 책임감을 갖고 주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일꾼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교회 안에서 제일 먼저 회복해야 할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나는 교회의 일꾼이라는 사명감의 회복입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다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서 게 되는 날 한 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2.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신 까닭
바울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괴로움을 기뻐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였을까요?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시고 맡기신 일이 너무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골 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기서 ‘경륜’이라는 말은 본래 ‘집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청지기 사명’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감추어 오셨던 비밀을 이제 사도 바울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온 성도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는 일임을 깨달다는 것입니다.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여기서 ‘비밀’이라는 말(musthvrion)은 본래 ‘입술을 다물다’ 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언급이 되지 않았던 감춰진 신비를 이제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공개를 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라는 말(fanerovw)은 ‘계시하다, 알리다, 보여주다, 나타내다’ 라는 뜻으로 명백하고 뚜렷하게 알려지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얼마나 신뢰하시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신뢰를 받아도 신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하나님에게 신뢰를 받는다면 어찌 고난을 마다하고 생명을 아끼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온 교회의 성도들에게 밝히 드러내시기를 원하신 비밀이 무엇일까요?
(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을 먼저 이방인에게 풍성하게 전파하게 하기 위해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가리켜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이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말씀처럼 유대인들이 노골적으로 배척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이 마음에 구주로 영접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만세와 만대로부터 하나님이 감추셨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은 이미 오래전 구약 시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으로 구약 성경의 핵심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유대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조건에서 오히려 예수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배척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비밀로 감추어 놓으셨기 때문에 두 눈으로 똑똑히 예수님이 행하시는 초자역적인 여러 가지 기적을 보면서도 이사야의 예언처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 13: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해야만 복음이 먼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어질 수 있고,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면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고 시기하여 나중에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비밀스러운 경륜이라는 것입니다.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3. 교회의 일꾼인 바울의 헌신
사도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영적 비밀에 대한 무지와 오해로 자기를 핍박함으로 인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경험하면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쓴 세 가지를 오늘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전파’라는 말(kataggevllw)은 ‘선포하다, 알리다, 공포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설교를 뜻하는 것으로 설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취사선택의 자유가 없고 오직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받아 드리고 승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능동태로 오늘도 유효함으로 뜻합니다.
둘째, 각 사람을 권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권하고’라는 말(nouqetevw)은 ‘경고하다, 충고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훈계하고 충고하고 경고하고 자극을 주어 잘못된 것ㅇ르 바로 잡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목적은 잘못을 정죄하거나 형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교정하고 개심하게 하기 위한 도덕적인 호소로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동분사 현대 능동태로 오늘도 동일하게 사람들에게 경고와 충고를 주는 효력이 있음을 뜻합니다.
셋째, 가르치는 일입니다.
여기서 ‘가르치다’라는 말(didavskw)은 받‘가르치다, 알다, 교육하다, 증명하다, 지시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생과 제자 간에 반복적인 학습 활동을 거쳐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전수해야 학습과정이 요구됩니다.
이 단어 역시 동 분사 현재 능동태로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널리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부단히 가르쳐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디에서든지 각 사람에게 이와 같은 세 가지 방법을 병행하여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까닭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여기서 ‘완전한 자’라는 말(tevleio")은 ‘완성한, 온전한, 흠 없는, 결여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일을 효과적으로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과 더불어 좋은 연장과 도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시고자 하는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도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리 불완전하고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고, 권하고, 가르치니 그 사람이 오늘 성경 말씀처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역사나 문학전집처럼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선지자와 사도들이 대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권하고 가르치게 되면 사람들에게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게 됨은 하나님이 사람의 심성과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온전하게 하며’라는 말(a[rtio")은 1) 어떤 환경이나 요구에 적합하게 하다 2) 육체적, 지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올바른, 결점이 없는, 정상정적인, 건전한 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라는 말은 ‘완료하다, 갖추다, 준비하다’라는 뜻으로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도록 준비해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설교 말씀을 듣는 일과 성경 말씀을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각 사람에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히 4:12 우리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양날 선 어떤 칼보다도 더 예리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냅니다.
그렇다면 성경만 있으면 사람이 저절로 온전해질 수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 성경 말씀을 어느 누가 어떻게 가르치는가? 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 모델이 바로 오늘 성경에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조상 대대로 유대인의 골수 분자요, 어려서부터 철저한 율법 교육을 받아왔고, 당대 명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누구보다 남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유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디에 가서 누구를 가르치든지 항상 조심한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지혜를 의존하여 가르쳤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그 이유는 타락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이 모두 죄 투성이인 세상을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변화시키는 일은 인간의 지헤와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대안이 무엇인가를 오늘 성경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기서 ‘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라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두 가지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도록 하는 일에 세우심을 받은 교회의 일꾼은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결코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성령이 다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는 안일 무사한 삶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불신자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으로 세상에 태어나 자라서 또 부모가 되어 자녀를 낳아 기르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자녀를 성공적인 인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힘과 지혜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나도 어제는 새 신자였었는데 교회의 일꾼인 누군가가 나에게 바울처럼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알게 되었고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자와 이방인에게 널리 전하고 가르쳐서 그들로 예수를 믿고 구원 얻게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엡 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온전하게 하여’라는 말은 ‘준비, 갖추기, 회복’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자질이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준비를 뜻하는 말입니다.
비록 성급한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자신이나 자녀나 제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마시고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완성과 온전한 변화인 성화의 완성은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마치 호흡을 하는 것처럼 중단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한 평생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비로소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의 변화가 완성되어졌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 일을 위해 나도 바울 사도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핑계대지 말고 최선을 다할 때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온전하게 변화하고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온전하게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성령 충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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