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내게 계획하신 일
(골 1:21-23)
(골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처럼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고 그 사람의 글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지성이 드러나고 그 사람의 작품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천체 망원경을 통해서 우주를 보고 고배율의 전자 현미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DNA에 감춰진 생명의 신비를 보면 창조주가 얼마나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지난 날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장차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들이 성경이 기록된지 어림잡아 3,600 여 년 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치밀하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가장 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의 계획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 가서는 창세전부터 미래로 나아가서는 세상 끝 날까지 긴 기간 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창세전의 계획과 오래전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물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에 나사렛 목수 요셉의 가정을 통해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로만 보였지만, 영적인 눈을 열고 보게 되면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과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는 오늘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인 사도 요한도 마치 바울과 말을 맞춘 것처럼 동일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은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아기 예수가 구유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기 때문에 동방박사가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 성경 본문도 동일한 맥락으로 만물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 세 가지는 1)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2)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3)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그와 같이 찬란 영광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오시기 위해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사렛 목수의 가정에 태어나신 것은 당신을 그만큼 낮추시고 또 낮추신 겸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을 다 이루신 후에는 다시 본래의 영광의 자리로 복귀하신 것이 바로 부활 승천과 보좌 우편에 영존하시게 된 것입니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물론 오늘 우리들의 수준에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영적인 진리일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와 같은 성경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오늘 성경 말씀이 기록될 당시 고대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 얼마나 높았으면 이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전해졌을까 하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보다 고도로 과학이 발달되고 학적 수준이 높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성경 말씀이 어렵다고 하면서 보다 더 이해하기 쉽고 현실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감성적인 하나님의 축복만을 추구하는 신앙이라면 오히려 이천년 당시 성도들에 비해 영적 수준은 퇴보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한갓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요?
이제 우리의 신앙도 보다 더 본질적이고 영원하고 깊이가 있고 수준이 높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임을 잊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좀 더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 소망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2.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사역
태초에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대부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답이 될 수 없음은 아무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지라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믿을 수 있고 믿지 않는 다면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러므로 무신론과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죄를 물마시듯 하는 인생들에게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것도 공간적으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시간적으로는 주님이 믿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날까지 복음을 가르쳐야 할 장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야 할 장소,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해야 할 장소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며,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바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삼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사십 일동안 지상에서 지체하신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대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리고는 그 교회를 통해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것을 명령과 더불어 약속을 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 성경은 그 예수님이 교회를 제자들에게만 맡기지 않으시고 친히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통치하시고 계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여기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첫째가 되는 것, 최고의 것, 탁월한, 뛰어난’이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말로 교회는 가시적으로는 단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우리가 주님의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구태여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골로새와 동일한 바울의 옥중서신인 에베소서에 같은 맥락의 말씀이 있는데 그 이유는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해 몸된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는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지상 교회를 통해서 인류의 죄악된 현실을 바로 잡아 영혼을 풍성하게 하게 하시고자하는 계획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계시하는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심으로 만물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이전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불화의 관계에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과 본래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몸된 교회를 세상에 세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그로 말미암아 본래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인종간에 갈등, 빈부와 유무식의 차별,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인류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안에서 한 하나님의 자녀가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화목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장차 영생 부활을 하게 될 것을 보증하는 첫 열매로써 부활하신 것입니다.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난 날의 죄악을 사함받았을 뿐 아니라 설령 우리에게 죽음이 온다고 할지라도 부활의 주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된다고 하는 믿음과 더불어 소망을 주셨습니다.
3.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만일 예수님이 성육신하시지 않았거나,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죽지 않으셨거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본래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는 그동안 지은 죄만으로도 지옥에 가기에 충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골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여기서 ‘멀리 떠난’이란 말은 '사이를 나쁘게 하다(이간), 정을 떼다, 멀리하다' 라는 뜻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이는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어 철저히 소외되었던 존재임을 나타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 상태란?’ 예수를 믿기 전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에 처해질 운명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랬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무엇보다 가장 큰 은혜와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단번에 사함을 받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장차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는 의롭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골 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여기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는 말은 -앞으로 데려오다 세우다 참석하다 라는 뜻으로 ‘옛날에 죄인을 법정이나 황제 앞에서 데려오는 것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계획은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 가 있어야 할 우리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세워 예수님과 더불어 보좌우편에 앉게 하시려는 계획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계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여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에 복을 받아 장수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나에 대한 계획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살아가면서 그 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1) 첫째로 ‘믿음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 둘째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런 모습으로 서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영원한 것입니다. 1) 과거 이천년 전에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2) 현재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내게 믿음과 소망을 주시며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심을 믿으며, 3) 미래 ‘다시 오시마’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가져야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3) 셋째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과 더불어 그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쏟아 헌신하는 일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복음의 일꾼이 되었음을 알고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비단 바울만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다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자입니다.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은혜와 축복만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준비를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으며, 예수님이 왜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나를 교회로 부르셨는지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 혼자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마치 많은 열매를 맺는 종자처럼 나로 말미암아 나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나로 말미암아 예수를 알게 되고 믿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고맙게 느낀다면 이제 부터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태신자를 작정하여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려 주고 교회로 인도하여 교육과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나 혼자만 믿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나를 통해서 나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전하여 구원하려는 계획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기도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다하는 최선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그러나 주 예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비와 사랑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이 일을 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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