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어디로 이사 했나요?/(골 1:13-14)

미션(cmc) 2012. 1. 31. 21:01

어디로 이사 했나요?
(골 1:13-14)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 중에 대부분은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직장을 따라서, 돈 때문에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아니면 작은 집에서 큰집으로,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 학군이 좋은 지역을 찾아서 최소한 한 두 번은 이사를 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가재도구를 다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사를 하고 나면 몸살이 날 정도로 힘이 들기도 하고, 특히 아이들은 그동안 친하게 놀던 친구들과 헤어져서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사한다는 것이 결코 즐겁지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교사의 가족들은 어떠할까요? 이역만리 낯선 땅에 가서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다른 낯선 나라에 가서 온 가족이 적응을 해야만 하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예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저희 가족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여러번 이사를 하였지만 제 큰 아들은 현역 군목으로 13년째 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느냐? 고 물었더니 무려 아홉 번이나 했다는데 이는 한 지역서 일 년 반도 채 넘기지 못하고 이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 명의 손자 손녀의 고향이 제 각각 다릅니다. 첫째는 강원도 철원이고, 둘째는 서울이고, 셋째는 경남 진주입니다. 삼남매가 작년에는 강원도 삼척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올해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삼척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부산에 가보니 별로 라는 것입니다.내년 말쯤이면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지 모릅니다.
물론 그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지만 구태여 장점을 찾는다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다보니 좀도 폭넓은 교제를 하게 되고, 친구들을 오래 사귀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대화도 많이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더욱 형제의 우의가 두터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경찰서나 병원이 없는 곳은 없으며 크고 작은 범죄와 질병과 학원 폭력과 왕따는 물론 이웃 간에 주차 문제로 아파트 층간의 소음으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이웃 간에 마음이 상하거나 불화가 단 한 것도 없이 늘 행복하기만 한 동네와 가족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서로 사랑하고 그 때문에 모두가 행복해 하는 동네는 세상에 아주 없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보니 그러한 동네가 유일하게 한 곳이 있으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그 곳으로 이미 이사를 시켰다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개역개정 번역
여기서 ‘흑암의 권세’라는 말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현대어로는 ‘암울한 어둠의 세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암울한 어둠의 세력’인 흑암의 권세는 어떤 세력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가룟 유다가 원수들과 작당을 하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어두운 밤에 찾아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칼로 내려쳐서 오른 쪽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대항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사람의 귀를 만져 고쳐 주시면서 그 일당의 두목인 대제사장과 성전 수비대장과 장로들에게 반문하시기를
(눅 22:53) “내가 매일 성전에 가 있을 때는 왜 나를 잡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가 되었다.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는 때가 온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어둠의 세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까닭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모함하고 시기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배후에서 조종하는 악한 세력인 사탄의 권세, 마귀의 권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줄 알지만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대제사장과 성전 수비대장의 마음속에도 들어가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모함하고 시기하고 꽁꽁 묶고 가죽 채찍으로 살점이 떨어지도록 때리고, 법정에 무고하게 고소하는 일들을 하도록 배후에서 조종을 한 주동세력인 것입니다.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그렇다면 그와 같은 어둠의 세력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 세월이 많이 흘러서 늙어서 힘을 못 쓰거나, 아니면 죽어버렸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의 세력은 얼마나 강력한지 하나님 외에는 세상에서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막가파 두목입니다.
만일 그와 같은 어두움의 세력은 영원히 죽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왜 세상이 점점 갈수록 악해져가고 범죄 연령이 자꾸만 어려져가고 옛날에는 순진하기만 했던 중학생들이었는데 요즘에는 조폭들을 뺨칠 정도로 어른들의 나쁜 짓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을 누가 가르쳤을까요? 부모님인가요? 선생님인가요? 학교에서 배웠나요? 교회에서 배웠나요? 모두 다가 착하게 살아가라고, 정직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데도 왜 갈수록 세상은 악해져가는 것일까요?
대구에서 학교 폭력에 못 견디어 자살을 한 학생의 어머니가 ‘내가 아들에게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고 가르쳤는데 내가 잘못 가르쳐 너무 착하게 키운게 아닌지 후회되기도 한다’고 후회 아닌 후회를 하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세상에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남이 때리면 너도 맞지만 말고 같이 때리고 가르쳐야만 하는 거꾸로 가는 세상을 만들고 있을까요?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암울한 ‘어두움의 세력’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흑암의 권세’는 오늘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예술, 종교 등 온갖 분야에 판을 치는 모든 악의 배후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아이들을 한국에서 공부 시킬 수 없다고 일찍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거나 심지어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기도 합니다.
과연 외국에 가면 그런 일이 없을까요?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오히려 한국에 없는 인종 차별이 극심하고 한국 사람들끼리도 미움과 폭력과 왕따가 늘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세상에는 왕따나 폭력이 없는 나라는 없을까요?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아니 예수를 믿는 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아직도 마음에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지 못하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여전히 그와 같은 악의 세력에 마음이 지배를 당하고, 입술이 조종을 받고, 행동까지 노예처럼 질질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보면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서 고시에 합격을 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돈과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도 그와 같은 흑암의 권세에 노예가 되어 나쁜 짓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암울한 어둠의 세력을 잘 몰라서도 그렇지만 설령 안다고 할지라도 전적으로 타락한 아담의 자손인 인간의 힘으로는 그 세력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도 바로 살아 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고 탄식을 하기도 한 것입니다.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와 같은 어둠의 세력에 영원토록 노예가 되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사람은 이길 수 없지만 세상에는 어두움의 권세보다 더 강력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로지 말씀으로 넓고도 넓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위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그 하나님께서 새로운 나라를 준비해 놓으시고 그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 나라로 이사를 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여기서 ‘건져내사’라는 말(rJuvomai)은 ‘구출하다, 구해내다, 보존하다, 구하다’라는 뜻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과거 시제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새로운 나라로 이사를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성경 말씀이 법이고,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백성인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옮기셨으니’라는 말(meqivsthmi)은 ‘바꾸어 놓다, 옮기다’라는 뜻으로 옛날에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이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에는 백성들을 집단적으로 강제이주시키거나, 바벨론으로 강제로 포로로 끌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옮기셨다’는 말은 그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미 이주시키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를 그 나라로 이주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를 가리켜 쉽게 번역한 성경에는 (골 1:14) “그리고 그 아들은 다시 자신의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서 자유인이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성경은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지만 이미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은 맥락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metabaivnw)은 ‘떠나다, 옮기다’라는 뜻으로 ‘한 곳에서 다른 거처로 옮기다’라는 완료형으로 ‘예수님이 전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 생명의 세계가 곧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미움과 시기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 나라와 대조가 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인지 이미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만일 이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한 나라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러한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물론 장차 우리가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영원토록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이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미루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하나님이 이미 그러한 나라로 이사를 시키셨다고 하였습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미 그러한 나라에 살고 있다면 그러한 나라는 어디를 가리킬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현실 교회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이사시킨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시키셨다고 하였는데 그 나라는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모든 문제의 정답은 예수님에게 있고 해답지는 바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이사시키신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왕으로 모신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국이나 스위스와 같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신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마음의 왕이시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미움이 거주할 수 없고 쫓겨나야만 하고 그 대신 사랑이 깃 들이게 되고, 어둠이 물러나고 그 대신 빛이신 예수님이 내 마음을 항상 밝히실 때 내 마음은 사랑의 나라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의 왕으로 모신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이 함께 모여 사는 가정은 바로 사랑의 아들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일학생 중고등부 대학생 청년과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인 교회는 오늘 성경에 말씀한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미움 분노 시기 욕심과 같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는 내 마음을 비우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 나를 다스리시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일학생 청소년 새벽이슬 청년국 중국교회 성도와 청장년 소망 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로 이사를 했나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세상 나라인가요? 아니면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했나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한 사람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은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의 통치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왕으로 모셔드리는 것은 나의 영혼이 빛의 나라로 이사를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속에 어두움의 세력인 미움과 분노와 시기와 욕심이 폭풍처럼 몰려 올 때 그것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예 화
어느 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학생들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사탄의 시험과 유혹을 쉽게 이길 수가 있었습니까?” 루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음, 사탄이 내 마음의 문을 자주 두드리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칠 때가 있다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에 계시는 예수님이 나가셔서 문을 열어 주시지. 그리고 마귀가 ‘이 집에 루터가 살고 있지요?’하고 물으면 예수님은 ‘그래. 과거에는 루터가 살았지만은 이제는 내가 살고 있어’ 그렇게 대답하면 마귀는 기절초풍을 하고 대경실색해서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만다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마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서 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알려 주신 예수님을 주일학생 중고등부 새벽이슬 청년국 그리고 청장년과 소망부의 어른들과 중국교회 교우들을 하나님 나라로 집단 이사를 시키신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수원제일가족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속에 있는 마귀의 영을 쫓아내고 주인을 바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빌미로 해서 마귀가 우리를 종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죄의 빚을 청산하면 빚쟁이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일생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을 찢기고 피를 흘려 우리의 죄악을 다 청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위에 부어져서 우리의 모든 빚이 청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빚이 청산 되었으니 빚쟁이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빚 때문에 마귀가 우리의 주인 노릇 했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빚에서 청산되므로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큰 가족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에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내가 이미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한 나의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믿지 않거나 나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지 않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사람은 미국 시민권을 얻기까지 미국의 법을 지키며 미국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한 하나님의 가족이 된 우리는 혈통적인 가족 간에 경험하지 못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먼저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사랑을 실천하고, 가정에 돌아가서 가족들 간에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베푸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화 -상대적인 존재 동영상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사랑을 요구하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말이나 행동을 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그렇게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가 먼저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가족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물론 이 세상 나라에 사는 동안 완벽한 사랑의 실천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며 손을 내미신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내가 먼저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사진1-예수님의 손 내미심
그동안 우리는 한 교회를 다니면서 마치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는 것처럼 자기 부서만 알던 우리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일학생과 청소년과 장년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각 부서가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이사를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만 언젠가 때가 되면 나이가 많아지고, 몸이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으로 이사 갈 준비를 확고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