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도/(골 1:9-12)

미션(cmc) 2012. 1. 26. 09:30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도
(골 1:9-12)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갈수록 개인주의와 더불어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이해타산에 급급하여 나만 있고 이웃은 없으며, 심지어 고독과 폭력을 예술처럼 미화하는 광기어린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거룩한 공회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1) 마음이 고독한 사람은 결코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협력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가정을 지으신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고서는 세상의 죄악과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래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2012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섬겨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와 성도가 되자’는 표어를 걸고 새해를 시작한지 벌써 네 번째 주일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마음은 선척적인 성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은혜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듣고, 좋은 책을 보고, 좋은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그 같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행복 나눔이가 될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1. 행복 나눔이
오늘 성경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로마 감옥에 갇혀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서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억울하게 로마 감옥에 수감된 죄수가 되었다면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옥중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가운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 사람이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였습니다.
2) 감옥이 마치 도서관이라도 되는 듯 여러 교회를 격려하는 여러권의 신앙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바울의 옥중서신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3)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히려 자기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지상 최고의 복인 은혜와 평강을 비는 행복나눔이가 되었습니다.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우리가운데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을지라도 로마 감옥에 수감된 사도 바울보다 더 열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마음이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고 축복을 나누는 행복 나눔이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그렇게 열악한 로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그처럼 마음이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비는 행복 나눔이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을 바울에게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바울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비록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물론 사람들은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을 다른 죄수들과 동일한 일개 죄수로 밖에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된 자기를 왜 로마 감옥에 갇히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절망하고 낙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이 복음전파의 사명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옥중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외형적인 차이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불신자보다 더 열악한 삶을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내 처지가 왜 이모양인가?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진 사람인가? 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처한 환경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 때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것이 곧 마음의 여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으로 평안을 빌며 복을 받게 하는 행복 나눔이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마 10: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것이 곧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행복 나눔이의 복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인 것입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둘째는 ‘바울은 혼자가 아니라 믿음의 형제들과 친교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가리켜 ‘형제’라고 하였을 뿐 아니라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형제라는 말은 어머니의 모태에서 함께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디모데나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는 육체적으로는 남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디모데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영적인 한 아버지로, 예수님을 한 구세주로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고생을 하고 있을 때 못 본 체 하고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을 멀리서 기도만이 아니라 필요한 물질과 심지어 위로의 사절을 보내어 위로하는 믿음의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옥중에서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자기가 친히 전도하여 세운 제자요 성도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가리켜 주저함이 없이 ‘친밀한 형제’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해관계를 떠나서 나보다 더 믿음이 좋은 사람, 나보다 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나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 나 보다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을 형제처럼 가까이하며 닮고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나도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바울의 소망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자기가 세우지 않고 에바브라가 세웠다고 할지라도 그 교회가 동일한 하나님의 교회이었기 때문에 로마 감옥에서 교회들을 위해 기도할 때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여기서 '기도할 때마다'라는 원어( pavntote)는 '언제나, 항상 기도하면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기도할 때마다 라는 말은 언제나 항상 기도했다는 뜻이고, ‘감사하노라’는 말은 동분사 현재형으로 항상 기도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 1:3 절 말씀을 직역하면 '우리는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성숙한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나만 평안하기 위해서, 우리 가족만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교회의 부흥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미성숙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이웃과 하나님의 모든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성숙한 믿음의 기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인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감사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1) 믿음과 사랑을 겸비한 성숙한 믿음의 교회였습니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여기서 믿음과 사랑은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모든 교회들이 항상 갖추어야 할 신앙의 기본 덕목입니다. 만일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은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직접 방문하여 확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회가 믿음과 사랑을 겸비한 교회라는 긍정적인 소식이 누군가에 의해 멀리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사도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2) 하늘에 소망을 쌓아둔 성숙한 믿음의 교회였습니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오늘 성경이 기록될 당시 골로새 교회는 신앙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였음을 바울의 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후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환난‘이라는 말은 ’억압과 고통‘을 뜻하며, 그것만이 아니라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교회를 돕기 위해 사랑의 헌금을 풍성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소망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두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성숙한가 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골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여기서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라는 말은 모두가 다 동분사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을 듣고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복음의 핵심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깨달은 것으로 다가 아니라 그 때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성숙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라는 신앙의 기초를 탄탄히 하고 또 열매를 맺어 자라가는 골로새 교회를 보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좋은 소식을 접하고 나서 더욱 골로새 교회를 돕고 싶었으나 로마 감옥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는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갖추고 열매를 맺으면서 자라가는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욱 성숙한 믿음을 위해 수준 높은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에 나타난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 사도의 소망을 담은 세 가지의 기도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실천해야 할 기도입니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쉬운 번역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좀 더 깊이 아는 지식을 채워주시기를 비는 기도였습니다.
(골 1:9) “그러므로 우리가 여러분의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우리도 여러분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둘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좀 더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비는 기도였습니다.
(골 1:10)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셋째는 하나님 앞에 가서 상 받을 수 있도록 기쁨으로 잘 참고 견딜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골 1: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골 1:12)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바로 이와 같은 기도가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출발지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믿음은 점진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살후 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기도는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수준과 비례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기도는 어린아이의 소리와 같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장성한 어른과 같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한 신앙인의 기도는 어떤 기도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1) 자기 자신은 기도하지 않고 남의 기도에 의존하거나,
2) 기도한다고 하지만 조리가 없이 중언부언하거나,
3) 항상 자기 필요 중심만의 기도를 하거나,
4) 평안할 때는 기도하지 않다가 급할 때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 자라 성숙해져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도 점점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삶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듣기는 많이 하고, 깨닫기는 잘하고, 결심하기는 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쉬운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와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도’가 동반되어져야만 합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매일 기도할 때 먼저 기도의 장애물이 되는 죄를 회개하고, 그 다음 선교사님들을 위해, 어지러운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성도들의 은혜와 평강을 위해,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태신자를 위해,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한 세 가지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는 기도를 덧붙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남을 배려하고 남을 축복하고 남을 사랑하는 믿음의 여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