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
(마 16:13-20)
(마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 16: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지난 2009년 1월 9일 미국의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자 된 후에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거의 일 년 동안 함께 예배드릴 교회가 없어서 힘들게 보냈다는 고백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나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지만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요즘은 미디어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 실황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은 물론 심지어 성경이 스마트 폰에 저장되어 있고, 어디서든지 유명하다는 설교자의 설교를 생생하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면, 구태여 힘들게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하는 오해를 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옛날에 비해 현대 교인들의 교회 출석률이나, 교회 사랑이나, 헌신의 열정이 점점 식어가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는 단지 듣기 좋은 설교를 들으려고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때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연약한 마음과 육체를 회복하고 새 힘을 얻어 가정과 직장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게 하는 곳입니다.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의 믿음 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인 영적 가정인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바른 교회관을 확립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삼년 동안 동거 동락하는 가운데 상당한 세월을 지난 어느 날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방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마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 만큼 예수님과 직접 접해보지 못했거나 잘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평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시던 동네 사람들을 포함해서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서 어깨 너머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기도하고 행하시는 기적을 목격하기도 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무조건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포함한 대중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뜻은 예수님을 ‘어떤 사람’이라고 평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흔히 정치가들은 이것을 가리켜 흔히 ‘민심, 여론, 국민의 소리’라고 말하면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 생명이 이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여론이 긍정적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만일 여론이 나쁘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을 변명하고 해명하고 진화하여 지지율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정치가들처럼 여론 조사를 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수집한 여론에 의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저마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달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물론 한 사람 한 사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경하는 정의로운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접한 대중들의 그 같은 평가에 대해서 긍정을 하거나, 부정을 하거나, 무슨 해명을 하는 일을 전혀 하시지 않고 마치 무시하듯이 지나쳐 버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든지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든지 예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사람들이 아니라 소수의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마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론 여기서 ‘너희는’ 은 지금 예수님과 마주하고 있는 소수의 제자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다수의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라고 일컫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만하지 않고 이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살아계신’이라는 말은 동분사 현재 능동형으로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살아가계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며,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같은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하신 말씀처럼 베드로 한 사람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에게 물으신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표성 고백인 것입니다.
그 후로 이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지상의 모든 교회의 공통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이 같은 베드로의 고백을 너무나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러나 베드로의 그 같은 고백은 예수님만을 기쁘시게 한 고백이 아니라 그 같은 고백을 한 베드로에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복’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염려와 걱정들로부터 놓여 자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네가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베드로가 그와 같은 복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네가 복이다’라는 현재 능동태로 다른 사람에게 그와 같은 복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어떻게 그와 같은 복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마치 정치인들처럼 세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를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서 때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교회를 좋게 말하기도 하고 직접 교회에 와서 보고 듣고 경험해 보지도 않고서 남의 말만 듣고 덩달아 무조건 교회에 대해서 입어 거품을 품고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일일이 대꾸를 하고 해명을 하여 교회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기대하려고 한다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여론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 위축을 당하거나 교회를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덩달아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자기반성과 긍정적인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더욱 힘을 쓰는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약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하신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하였을 때 베드로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은 예수님이 최초로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원어로 ‘교회’라는 말(ejkklhsiva)은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 무엇으로부터’ 라는 말(ejk)과 ‘부르다’라는 말(kalevw)이 합성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전체‘를 뜻하는 말로 단수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최초의 교회를 세우시는데 그 교회는 여러 개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세우리니’라는 말(oijkodomevw)은 ‘짓다, 세우다, 설립하다, 복원하다’라는 뜻으로 미래형으로 기존에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돌과 황금과 백향목으로 견고하고 화려하게 세웠지만 이방나라의 침략을 받아 무너졌고, 바벨론의 포로들이 귀환하여 재건한 성전도 역시 침략을 받아 무너져 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야망에 찬 헤롯왕이 신앙심이 아니라 온갖 불의를 범하면서도 오로지 민심을 얻기 위해 구릉을 메우고 높은 돌담을 쌓고 성전 뜰을 솔로몬 시대보다 2배나 확장을 하는 대대적인 건축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1/6 면적을 차지하는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후일에 로마의 침략을 받아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처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김이 없이 다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교회의 터는 예루살렘이라는 특정지역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을 뜻하는 견고한 반석과 같이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신앙고백을 터로 삼아 세워지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 교회를 세우시는 이도 그 교회의 주인도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내 교회’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교회의 설립자요, 건축자요, 주인이 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하얀 대리석으로 가로가 300미터 세로가 430미터나 되는 거대한 성전이었지만 결국 다 허물어져 버렸고 허물어질 수 밖에 없지만, 이제 예수님이 세우실 교회는 그 어떤 세력도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하고 견고한 교회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음부의 권세’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배후 세력인 사단의 권세를 가리키는 것이며, 주님이 세우실 교회는 그와 같은 사단의 세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교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건축자재 중에 돌보다 더 견고한 것이 있을까요? 지금까지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인간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견고한 돌로 세워진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피는 사망의 권세도 사단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죽어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사도행전에서는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물론 여기서 '교회‘라는 말도 역시 단수로 하나의 교회를 가리키는데 이는 지상의 모든 교회는 그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하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 교회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현재 우리 ‘수원제일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를 세우신 이도, 우리 교회의 주인’은 어느 특정인이나 단체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예수님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를 죽여 그 피 값으로 산단 말입니까? 그것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결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기까지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교회를 전심으로 섬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수원제일교회는 지난 58년간 누군가 이 교회를 섬겨온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저절로,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피로 이 교회를 사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원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긴 결과입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충성스런 신앙의 선진들처럼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겨야만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 우리들처럼 자유롭게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훈련을 받아 이 교회의 차세대의 섬김이들로 바통을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그와 같은 복을 이어가게 하시려고 교회 60주년을 한해 앞둔 2012년 우리 교회의 표어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가 되자고 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3. 현대 교회의 문제점과 대안
오늘 우리는 주님이 피흘려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 우리는 어느 누구도 내 믿음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베드로와 같은 확고한 신앙고백으로 무장을 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열심을 다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우지 않고, 설교를 듣지 않고도 저절로 믿음이 자라고 저절로 믿음이 확고해지는 기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갈수록 이단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만일 우리가 교회를 멀리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송을 게을리 하고, 세상의 미련을 끊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다가는 마귀의 표적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2)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말씀에 집중한다고 해서 신앙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랑꺼리가 아니라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할지라도 하늘에 상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수준을 뛰어 넘어 나만이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사람도 신앙생활이 기쁘고 행복하도록 유익을 주는 주며 교회가 총체적으로 화목하게 부흥되어지는 일에 섬김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일꾼들의 헌신과 수고로 말미암아 우리가 교회에 나오면
가)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고,
나) 차세대를 이끌어 갈 신앙 인재가 육성되어지고,
다) 즐겁게 식사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라) 장애우를 살피고, 외로운 노인들을 섬기고, 노숙자를 섬기고,
마) 교회안에서 만 아니라 수원지역과 농촌과 선교지까지 섬기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일들을 위해 섬김이로 부름을 받아 모인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해가 바뀔 때마다 또는 때때로 섬김이를 요청하는 광고를 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일이고, 내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나만 손해를 보는 헛수고가 아니라 장차 주님 앞에 가서 상급을 받을 기회라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서로 자원을 하고 감사함으로 봉사하며 주님을 섬기듯이 남을 섬기려는 아름다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아름답게 부흥하고 화목하며 좋은 전통이 세워지고 그로 인해 좋은 인재들이 자라나서 신앙의 대물림을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섬김이가 되었다고 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내가 교회 주인인 것처럼 내 주장을 하거나, 나의 감정 나의 기분만을 생각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부정적으로 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관심을 가지고 칭찬하셨던 주님의 관심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나의 신앙이 어느 정도 구원의 확신으로 가득차 있고.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얼마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가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석해 보지도 않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비난하게 된 원인은 알고 보 면 교회를 다니는 우리들이 그 같은 원인을 제공한 까닭입니다.
1) 그것은 상당수의 성도들이 마치 나만 은혜 받겠다는 사람처럼 시간과 물질과 몸으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며,
2) 오로지 내 신앙생활의 편의만을 추구하며 조금 불편한 것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쉽게 불평하고,
3) 조금 섭섭하다고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노출하고,
4) 교회 전체를 균형있게 보지 못한 채 오로지 자기가 속한 부서 이기주의에 집착하여 기관끼리 상호 협력하지 않고, 심지어 갈등하고 반목하기 때문입니다.
5) 그렇게 될 대 사람을 구원해야 하는 교회가 도리어 상처를 주며,
6)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마치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부정적인 교회관을 갖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이 교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교회를 무엇 때문에 불신자들이 출석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도는 점차 어려워지고 성도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 수평이동하기에 분주한 것을 마치 교회가 부흥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본질을 상실하게 될 때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교회를 떠날 뿐 아니라, 교회를 열성적으로 섬기던 사람들이 낙심하고 이단 교회로 넘어가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가 되어 장차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설령 그러한 모습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점령군처럼 버티고 아무리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고 할지라도 마치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주는 무의미한 교회로 전락되어 교회는 점점 약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시급한 것은 오늘의 한국 교회는 목회자로부터 성도들까지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출석하는 성도들을 섬기는 섬김이들로 다 변해야만 합니다. 아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늘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1) 그것은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사랑의 지체들이 되는 것이며,
2) 교회가 주님의 몸임을 깨닫고 무슨 일을 하든지 겸손히 나를 낮추고, 나를 죽이고, 주님만 높이는 것이며,
3) 내가 허물이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고 교회를 봉사하는 이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비판하지 말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누구보다 먼저 내 마음이 기쁠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 재미가 있고 보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변하여 사랑에 굶주린 세상 사람을 불러내어 구원하고, 사랑으로 섬겨 좋은 믿음의 사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여, 그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만일 오늘 내가 2012 년부터라도 주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의 각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으로 신실한 섬김 이가되기만 한다면, 우리 수원제일교회는 세상을 밝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등대가 될 것이며, 세상에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는 이들로 말미암아
1)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고 마음을 열게 되고,
2)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게 되고,
3) 연약한 믿음이 점점 자라나게 되고,
4)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를 받아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2년 새해를 맞이했으니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성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후일에 그러한 나 때문에 나와 관계된 가족과 친구와 교우와 이웃이 세상에서 받을 수 없는 신령하고 영원한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벧전 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벧전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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