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기자/(창 2:18-25)

미션(cmc) 2012. 1. 4. 08:05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기자
(창 2:18-25)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012년 새해의 첫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착각 중에 하나는 열심히 신앙생활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직장을 소홀히 해도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교회만을 지으신 분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세상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1. 일하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일하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일하시니’라는 말(ejrgavzomai)은 ‘어떤 일에 종사하다, 노력하다, 일하다’라는 뜻으로 현재형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창조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서 일하고 계실까요? 물론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장과 모든 곳에서 일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마치 몹시도 추운 한 겨울 밤 사람들이 춥다고 다 귀가하여 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에도 전후방의 국경들과 발전소의 직원들은 잠을 자지 않고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모든 곳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는 성과 속의 구분이 없는 온 세상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예수님이 찾아가시고 만나주시고 가르치시고 치료해 주시고 전파하신 대상들이 소수의 제자만이 아니라 빈부귀천을 막론한 모든 불신자들이었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특권층의 사람들로 사람들에게 섬김의 대상이었으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삼년 동안 제자들을 훈련시키시는 동안 자주 말씀하신 것 중에 하나가 ‘세상으로 가라는 말씀과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 드리신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등을 밀어 내셨습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바로 그 세상 속에 우리의 가정이 있습니다. 그 가정은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제일 첫 번째로 만든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 최초로 교회가 아니라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시게 된 동기는 그 가정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담 혼자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만드셔서 짝지어 가정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 최초의 가정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다고 하였는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마주서서’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돕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은 ‘섬김’을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주신 이유는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이 ‘좋은, 즐거운, 이익, 번영, 복지’라는 뜻의 반대말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고, 즐거운 일이 아니고,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다고 하였는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인류 최초의 가정은 ‘섬김’을 통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지상 낙원 에덴동산을 만들어 아담에게 주셨을지라도 아담 혼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혼자서 본다는 것이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고독하지 않도록 하는 도움이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가 되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정보다 더 행복하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 밖에서는 고독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는 우울증과 같은 고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부부의 책임과 사명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지으셨다고 할지라도 아담은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아담 혼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워 갈비뼈를 취하여 아담을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 두 사람을 짝지어 새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었다’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뜻입니다. 만일 서로 동등하지 못하다면 둘이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고 하는 우열이 없이 동등한 인격임을 뜻합니다.
(고전 7: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 7: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부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가르칠 때도 부부가 동등하게 각각의 책임과 의무가 있을 가르쳤습니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뿐만 아니라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모델을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어려운 말 같지만 한 마디로 부부가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아내를 괴롭히고 미워할 수 없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내라면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무시하고 짓밟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되 교회를 위해 당신의 몸을 주신 것같이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인정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인정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이 곧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부부간의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이 돕는 배필로 지으신 것처럼 아내는 남편을 돕는 섬김이가 되고 남편은 아내를 돕는 섬김이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의 근원은 한마디로 상대방을 섬기려고 하지 않고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영향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자기 주장을 하며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갈대까지 가려고 하면 결국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이나 다른 사람 앞에서 상대방에게 모욕적이거나 비웃는 언행을 하는 것은 인격이라는 얼굴에 황산을 뿌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부부간에 대화를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좀 생각을 해 볼 시간을 주세요 라고 하는가 하면 생각은 무슨 생각 내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라오면 되는 거지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잘났으니까 다 알아서 하라구 나는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그 결과는 부부가 함께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자존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행복한 가정의 대안
부부간의 문제는 대다수가 일방적일 때 발생하는 것이고, 수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부부로 지으신 것은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나 주장이 둘이 되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통해서 하나로 통합이 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하신 말씀처럼 섬기려고 이 세사에 오실 때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것만으로도 엄청난 희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연약한 인간의 편이 되셔서 인간들을 이해하시고 인간들에게 무조건 명령하시지 않고 깨닫도록 가르치시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치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가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명령하시고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도움이를 붙여 주시고 주변 환경을 조성해 주시면서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명령에 순종했을 때 그 모든 것들이 주님의 은혜였음에도 불구하고 칭찬하시고 친히 상급을 준비해 주시기까지 하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기는 부부가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배우자가 공부를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낮고를 막론하고 행복한 부부의 첫 번째 조건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와 도우려는 마음 자세입니다.
이를 위해서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노력을 하게 되면 배우자가 나와 무척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점에서 견해 차이와 성격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는 ‘당신은 사사건건 왜 그래?’라는 식으로 부부싸움이 시작이 됩니다.

한 예를 든다면 요즘 들어서 많이 알려진 성격유형검사(MBTI)를 하게 되면 부부가 성격이 본래부터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나는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고, 즉시 상황에 맞게 행동과 계획을 바꾸고, 섬세하고 경험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이고 사람중심의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은 재테크 체질이 아니라 돈을 있는 대로 쓸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성격은 많은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 것보다는 정해진 사람과 만나고 깊이 사귀기를 좋아하고, 상황에 관계없이 정해진 원칙을 지켜야 하고, 현실적이고 섬세하며 논리적인 면과 일 중심의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재테크 체질이기 때문에 절약을 하고 저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격은 누가 만드셨을까요? 그리고 둘 중에 어느 누가 좋은 성격이고, 어느 누가 좋지 못한 성격일까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둘 다 장단점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두 사람이 한 집에 살지만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번번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손님을 청하거나 명절에 친척들과의 만남이 있거나 큰일을 결정할 때 틀림없이 대판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서로의 성격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성격에 맞추어 무슨 일을 한다면 그 가정은 빈틈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평생 부부 싸움을 하면서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지, 아이구 내 팔자가 그런 것을 뭐, 내가 참아야지’라고 하면서 할 수 없이 살아가는 재미없는 부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화
어떤 부부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지면서 급기야는 말도 주고받지 않고 서로를 외면한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차창으로 개 한 마리가 분주히 돌아다니는 광경을 남편이 발견했다. 그 순간 남편이 빈정대며 아내에게 말한다. “반가울 텐데 인사나 하지. 저기 저 개, 당신 친척이잖아….” 그러자 아내가 개를 향해 소리친다. “안녕하세요, 시 아주버님-.”
그러므로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인격을 모욕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고 명령한 현대적 표현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존중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의 생각에서부터 상대방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가시 돋친 말을 하지 말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수명 연장에도 기여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싸움과 증오로 점철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보다 평균 4년 정도 장수한다’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부부간에 사랑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많이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그 수치가 높을수록 면역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동반자로 부부의 사랑은 장수케 하는 보약을 먹는 것과 같다면 정반대로 부부싸움을 격렬하게 할수록 그만큼 부부의 수명은 단축시키는 독을 먹는 것입니다. 예 화미국 유타대학 심리학연구팀은 3일 심장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60,70대 부부 150쌍을 대상으로 부부싸움이 심혈관 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3년간 연구한 결과 부부싸움 때 거친 언어와 격한 분위기는 동맥경화 등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심혈관에서 혈류를 방해하는 혈반(plaque) 생성을 돕는 석회성 물질의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닏다. 연구팀장인 스미스 교수는 “인간관계에서 다툼은 불가피하지만 대화 방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명심해야 한다며, 금연, 운동, 다이어트 만이 아니라 부부간의 대화에도 주의를 기울여야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OECD 국가 중에 이혼율이 제일 높게 나타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소리는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24세 이하의 젊은이들의 이혼 사례가 전체 이혼율의 10 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혼율은 점점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미래는 얼마나 상처가 많겠습니까? 부모의 죄악을 대물림하지 말아야 합니다.
2012년 새해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겨 교회와 같은 가정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성경이 말씀한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역할에 충실한 한 해가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을 섬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어느 누군가가 행복한 부부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서로 마주보다 살아가면서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것이라고 핑계하지 말고 그 마음을 말과 실천에 닮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듣고 느끼고 감동을 받는 부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여보 사랑해, 여보 미안해, 여보 나 힘들어, 여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나를 위해 기도 좀 해줘요. 이거 별거 아니지만 당신 주려고 사왔어요. 여행지에 가서 선물 않 사는 남편들의 공통점은 야단 맞을까봐, 본전도 못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2)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이는 겸손한 마음, 겸손한 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우선순위의 첫 번째를 자신에다 두지 말고 배우자와 가족에게 두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도 ‘애야! 아버지 먼저, 엄마 먼저’ 라고 말해야 합니다. 가장이 가장 상처를 받을 때는 가족으로부터 무시를 당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고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3) 할 수 있으면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려고 배려한 마음을 상대방이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대화하는 것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고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유모스럽고 긍정적인 대화를 자주 나누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여성들이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드는 이야기들은 심각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지만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도움이가 되어야 합니다.

4)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잘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허물과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고 오래 참고 기다리고 도우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5) 무엇보다 부부지간에는 친절하고 자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사소한 필요와 아픔을 미리 알아채고 챙겨주는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관심이고 관심이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까지 귀를 기울이시는 분인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