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사기꾼들
(골 2:8-12)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은 육신으로만 아니라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어야만 합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다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으며, 심지어는 차라리 믿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 한 영적 사기꾼들의 꾐에 빠져 이단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잘못된 이단에 빠지게 되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가정이 파탄이 나고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는 일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값비싼 명품만이 짝퉁을 만드는 것처럼 참된 기독교를 믿지 못하도록 짝퉁을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심으로 지상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초기 기독교 사회에 영혼의 사기꾼들인 이단들이 어떻게 번성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온갖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서 전통 기독교를 믿는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1) 이단들은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2) 무엇이 참된 기독교요, 무엇이 사이비 기독교 이단인지를 분별하는 영적인 지혜를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철학과 헛된 속임수
오늘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세상에 어느 누구보다 구약의 율법과 헬라 철학에 능통한 사람으로 율법과 철학 양쪽을 다 잘 알기 때문에 과연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골로새 지역은 지리적으로 동서양이 만나는 남단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와 종교가 쉽게 유입되는 곳으로 사상적으로 혼합주의가 극에 달했습니다.
곧 헬라 철학과 다신론, 우상숭배, 동방의 신비주의, 메소포다미아 지역에서 유입된 금욕주의와 미시신적인 마술 행위, 유대인의 율법주의가 뒤범벅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미혹하는 영적 사기꾼들을 인간의 이성의 산물인 헬라 철학과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거룩하다는 동방의 이원론과 합하여 만든 초기 영지주의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와 같은 철학은 겉보기에는 굉장히 고상하고 유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헛된 속임수로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대의 무신론 철학이 아무리 그럴듯한 논리를 인간의 고상한 삶을 논하지만 그와 같은 철학이 인간의 죄와 구원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당대의 철학은 이원론을 받아 드려 육체를 악하게 보았기 때문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게 함으로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당시 이단들이 주장하는 고대 영지주의나 무신론 철학 사상은 난해한 논리이기 때문에 간혹 철학이 기독교보다 더 수준이 높은 것처럼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불신앙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육체가 아니라 성령으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무죄한 몸으로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성을 내재하시는 거룩한 육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신성과 무죄한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만이 구세주요 교회의 머리요 세상의 모든 권세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신론 철학자들이나 이단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떤 원리나 학문이나 우주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요 이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요 이 세상 위에 계신 분이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유일하신 중보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론 철학자들이 자신들만이 지혜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에 빠져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로 말미암은 구원을 부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꾀에 자기가 발목을 잡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불신앙에 대한 형벌인 것입니다.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고전 3: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 그림자와 실체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지역에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 대개 사람들을 만나기 쉬운 접촉점으로 이고니온,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 유대인들의 회당을 전도의 장소로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행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행 17: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행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바울 사도에게 복음을 들은 사람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와 더불어 개종한 전통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것과 더불어 구약의 율법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절충주의자들이 교회 안에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방에 세워진 교회들은 구약의 율법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큰 혼란에 접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그 중에 하나로 구약의 할례를 예수 믿는 사람들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받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갈등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오늘 성경에서 구약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한 할례와 손으로 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할례로 구분하여 명확하게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구약의 할례의 원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가문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가문으로 구별하시고 그 믿음을 가문대대로 보존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언약의 자손으로 구별하는 표로 육체의 할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같이 구별된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제는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할례를 받은 것처럼 손으로 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할례는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받게 될 세례를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과 신약의 구조로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율법과 복음, 순종과 믿음, 제사와 예배, 성전과 교회, 제사와 예배, 안식일과 주일, 할례와 세례 등 모두가 다 그림자와 실체의 관계입니다.
이제는 그 그림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예표들은 다 성취하심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골 2:12-15까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쉬운 번역으로 이해를 돕겠습니다.
(골 2:11)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악한 욕망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벗는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골 2:12)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그 믿음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골 2:13) “여러분이 전에는 죄에 가득 찬 욕망을 끊어 버리지 못해 죄 가운데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골 2:14) “여러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사실을 기록한 명세서를 지워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목을 적은 명세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아 무효로 만드셨습니다.” (골 2:15)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고발하는 사단의 세력을 꺾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없애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의 그림자를 붙잡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할례나 성전이나 제사나 안식일과 같은 것들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붙잡고,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가장 바람직한 믿음인 것입니다.
(골 2:16)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을 지키는 문제나 초하루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로 남의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골 2:17) “이러한 것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이것들은 다만 그 본체이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미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 시대의 그림자에 매어 달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단들이 구약 성경에 분명히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으니 안식일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그럴듯한 말로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과 같은 성경의 원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문자대로 지켜야 한다는 그와 같은 이단들의 주장이 더 성경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위험소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단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영혼의 사기꾼들의 주장이 가장 비성경적인 주장임을 깨닫고 호기심을 갖거나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주장은 결코 성경대로 잘 믿는 것이 아니라 거창한 종교 의식을 가장하여 거룩해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 초등학문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로 후퇴하는 영적인 퇴보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그와 같은 형식주의를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경건이 아닌 신비주의
우리는 앞서 골로새 지역이 동서양의 문물이 오고가는 교통 요충지로 온갖 잡다한 문화와 종교가 유입이 되어 혼합주의 사상과 종교를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사상들이 바로 헬라 철학과 다신론, 우상숭배, 동방의 신비주의, 메소보다미아 지역에서 유입된 금욕주의와 미시신적인 마술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도 그와 같은 미신과 신비주의에 대한 경계령이 선포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천사 숭배입니다.
(골 2: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여기서 천사 숭배를 ‘꾸며낸 겸손’이라고 한 것은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신을 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반드시 중계자가 필요한데 그 중계자가 바로 천사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천사가 있어서 그 천사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중계해 주기 때문에 그 천사를 잘 대접을 해야 한다는 무척이나 겸손한 것처럼 보이는 그럴듯한 주장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마치 약을 먹는 것이 과다하지도 말고, 부족하지도 말고 적당해야만 좋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신앙인 것입니다.
(수 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기서 '치우치지 말라‘는 말(rWs)의 뜻은 ’빗나가다, 돌이키다, 떠나다‘라는 뜻의 칼 미완료 동사로 치우치는 것은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빗나간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1) 물질을 악하게 보는 이원론자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그와 같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실 수 있는가? 라고 예수님의 신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도 꾸며낸 겸손으로 우로 치우치는 것이라면,
2)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중계자 천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천사를 섬겨야 한다는 주장도 역시 꾸며낸 겸손으로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임을 부인하는 것으로 역시 좌로 치우친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 주변에는 그와 같은 천사 숭배자들이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고 하는 주장을 정죄하고 자기들은 천사를 보고 그 천사와 교통을 하고 자기들의 필요를 그 천사에게 부탁하면 들어준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호기심을 갖고 그와 같은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천사를 숭배하고 천사와 교통을 하고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환상적인 신앙처럼 착각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더 경건하고 독실한 신앙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지금도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동행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중보하시고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는 것이 다 필요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천사 숭배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의 초등학문이요 영적인 후퇴하게 만들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영혼을 사냥하는 사기꾼들의 술책이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상
보성 삼남매 살해사건
지난 2월 11일 오전 9시 50분 경 전남 보성읍의 한 교회 사택에서 10살 8살 5살된 삼남매 어린이가 숨져 있는 것을 아이들의 고모부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 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삼남매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위에 음식물이 전혀 없었고 폭행과 영양 결핍이라고 잠정 결론이 내렸습니다. 그 이유는 박씨 부부가 아이들의 양손을 묶고 바울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은 것처럼 아이들을 한 명당 허리띠와 파리채로 39대씩 모두 네 차례 때렸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 결과 그 어린이들의 아버지는 43살 먹은 박모씨는 199년 진도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하여 광주에서 고등학교 중퇴를 한 뒤 검정고시를 보고 모 고등학교 사무 보조원으로 일하다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뒤 신학이나 목사 안수도 받지 않고도 만인 제사장론을 주장하며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누구나 설교할 수 있고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이단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들이 인용한 성경은 잠언 24장13∼14절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였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성경 해석인 것입니다. 왜 이렇게 황당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분명히 그 부모도 누구 못지않게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들로 나름대로는 살려 보겠다고 한 일이 그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과연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부모가 누군가로부터 잘못된 신앙을 가르침을 받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영혼의 사기꾼 이단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기독교가 도매금으로 매도를 당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경고를 발한 이단 사상들은 지금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단들의 특징은 불신자에게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여, 자기들이 가장 성경적인 것처럼, 가장 사랑이 많은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는 마치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기독교를 가장하고 영혼을 노략하여 지옥으로 이끌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영혼의 사기꾼들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한다면 짝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로 짝퉁은 어떤 상품입니까?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유명 상품들입니다. 그래야만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단이라는 짝퉁이 그렇게 설치는 것일까요? 참된 종교가 인간에게 그 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럴듯한 논리와 사상과 주장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영적인 사기꾼들인 것입니다.
이단들이 전통 교회에서 배운 진리와 달리 더 성경적이고 더 겸손해 보이는 것처럼 생각되나 알고 보면 짝퉁으로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거기에 미혹이 되면 개인적으로는 영적으로 파산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가정까지 파탄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골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그와 같은 영혼의 사냥꾼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오신 후에는 물론 말세에는 더욱 활개를 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 오늘 성경이 내리는 결론에 주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특별히 잘 믿어 보겠다는 그러므로 이단들의 미혹에 관심을 갖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된다고 끌려가지 말고 고 영적인 사기를 치는 것으로 미혹이 되거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경계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배운 진리로 만족하지 않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는 누구보다 더 잘 믿어 보아야 겠다. 신령한 영적 세계를 경험해야 겠다 하나님을 특별히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겠다는 식의 영적인 호기심이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 인간을 신격화시켜 한몫을 챙기려는 영적인 사기꾼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 영적인 이기주의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좀 불만족스러울지라도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가이드북으로 주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을 대망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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