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사진 방/수원노회 유럽탐방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22편(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언덕 시뇨리아광장 )

미션(cmc) 2012. 7. 27. 17:34

 

 

 

 

 

휴게소

베키오 다리 - Ponta Vecchio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베키오 다리는 아르노강에 세워진 피렌체의 최고로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라고 말해도 여느 다리와는 달리 보석점과 금세공을 해서 파는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외관에서 보면 창문이 쭉 늘어서있는 벽과 지붕이 세워져있기때문에, 다리라고 한번에 알아보기 힘들다. 
다리를 건너면서, 여느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며 상점가를 지나게 된다. 원어인 "폰타 베키오"라는 뜻은 "낡은 다리"라는 의미이다. 우피치 궁전과 강건너의 피티궁전을 연결하는 교량역활을 한다. 윗쪽으로는 귀족과 상인이 아래쪽에는 서민들이 거닐었다고 전해지며 16세기에는 금은세공하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다고 해서 당시의 번화된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다.
베키오 다리의 중앙에는 인물의 흉상이 하나 서있다. 16세기의 조각가에 의해서 금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흉상으로 벤베누토라는 뜻은 영어로 웰컴 "Welcome"이라는 뜻이다. 또한 <신곡>을 쓴 단테가 이상의 여성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도 이 다리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

 

미켈란젤로의 언덕에 다윗상

 

 

 

 

 

 

 

산타 크로체 성당 - Basilica di Santa Croce

교회와 회랑으로 이루어진 산타 크로체성당

시뇨리아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200m 정도 걸어서 내려오면 아담하고 잘 균형잡힌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산타 크로체 성당을 만난다. 산타 크로체 성당은 프란체스코파의 고딕 성당으로 그 규모가 두오모 성당만큼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정결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교회와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는 산타 크로체는 전형적인 피렌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교회당은 프란체스코파에 속하는 것으로 1294년에 착공하여 1443에 완성되었다. 이 성당은 아르놀프 디 깜비오의 수작으로 추측되며, 지오또의 프레스코 벽화와 이태리 유명인사들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성당의 좌측으로는 단테의 동상이 서 있다.
예배당은 276개의 묘석들로 포장되어 있으며 벽을 따라서 호화로운 무덤들이 즐비해 있다. 내부에는 바사리의 작품인 미켈란젤로의 무덤을 비롯해 작곡가 롯시니의 무덤 왼쪽으로는 갈릴레오와 기베르띠의 무덤과 로셀리노의 성모자, 단테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 등 많은 조각품과 부조작품이 있다.
오른쪽 벽으로는 금박이 벗겨져 일부만 남은 도나텔로의 수태고지가 아름답게 부조되어 있다. 산타 크로체 박물관은 치마부에의 십자가 처형상이 소장되어 있으며, 대형 회랑은 브루넬레스키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그의 사후인 1453년에 완공되었다.

 

 

시뇨리아 광장 - Piazza della Signoria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곳곳에서 거리의 판토마임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이 곳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또는 강탈)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베키오 궁 - Palazzo Vecchio

피첸체 시청으로 쓰이는 호화로운 내부의 베키오 궁(Palazzo Vecchio)

   1982년 피렌체 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시뇨리아 광장에 면해있는 고딕건물로 높이 94m에 달하는 종탑이 있다. 1299년에서 1314년, 깜비오의 설계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그 이후에는 몇번이나 재건축되어서 현재의 모습을 이룬것은 16세기경이 된다고 한다.
피렌체 공화국의 중앙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궁전의 입구에는 미켈란젤로작"다비드상"의 복제품이 있으며, 2층에는 공화국 정부의 회의장이였던 대형홀이 있다.
홀의 양쪽 벽면에는 메디치의 전투장면 회화가 장식 되어 있고 호화로운 교황 레오 10세의 거실과 메디치가의 사람들이 거처했던 방도 보존되어 있다.
3층에는 "백합의 방"이 있는데 피렌체의 심볼인 백합의 꽃모양이 새겨져 있다. 엄격한 고딕양식의 외부와 우아한 내부 장식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마키아벨리의 초상화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15세기에 개수된 정원에 16세기의 바자리에 의해 섬세하게 장식되었다고 한다.
중앙의 아기천사의 분수는 베로키오 작으로 현재 원본은 칸첼레리아에 보존되어 있고, 현재의 조각상은 모조품으로 대신한 것이다. 두오모에서 카루치오리 거리을 남쪽으로 내려간 시뇨리아 광장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보로 약 8분정도 소요된다.

 

코시모 1세

시뇨리야 광장의 중앙에 세워진 청동기마상은 잠볼라냐에 의해 1594년 완성된 코시모 1세입니다.

코시모 1세은 피렌체의 첫번째의 대공으로 피렌체 부흥을 이끈 인물입니다.

기마상의 기단부에는 전투장면을 묘사한 부조상이 있습니다.

트레비 분수 - Fontana di Trevi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다비드 상 [David, ― 像]미켈란젤로 조각

  다비드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1501년1504년 사이에 조각한 대리석상으로, 높이는 5.17m이다.

미켈란젤로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청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위엄있게 표현해냈다. 현재 피렌체 국립 미술원에 소장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에서 시청의 부탁으로 다비드(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를 3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헤라클레스>>

베키오 궁전 입구의 오른쪽을 장식하고 있는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비치오 반디넬리(Baccio andinelli)에 의해 1533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원래는 미켈란젤로에게 베키오 궁전의 왼쪽에 세워진 다비드상과 쌍을 이룰 작품으로 헤라클레스와 카쿠스의 조각상을 의뢰했었지만

미켈란젤로는 밀려있는 많은 작업으로 인해 제작을 기피하게 되어 비치오 반디넬리에 의해 제작되게 됩니다.

이 작품은 헤라클레스의 열번째 과업인 게리론의 소떼를 빼앗아 돌아오는 길에

소떼를 빼앗아 간 괴물인 불을 뿜는 괴물인 카쿠스를 물리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뇨리아 광장 - Piazza della Signoria

중세 이래로 피렌체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은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모으는 정치적인 연설과 시위의 장소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복제품을 비롯한 많은 예술작품들이 즐비해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곳곳에서 거리의 판토마임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화주의의 이상이 명백히 표현된 절대군주의 살해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이 곳에 있는 것은 복제본이고 원본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에서 지암볼로냐(Giambologna)의 기수상의 듀크 코지모(Duke Cosimo) 1세의 초상화식 동상(1594년)과 사비니 여인의 강간(또는 강탈)까지, 이 곳에 있는 건축물에서 신화와 과거의 정치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 분수가 있고 종교개혁을 주도하다 처형된 사보나롤라의 처형지라는 표식인 화강암도 보이며 저쪽으로는 베키오 궁전이 보인다. 최근 광장 밑에서의 발굴로 인해 중세의 건물뿐만 아니라 AD 1세기의 로마 건축양식도 있음이 알려졌다.

 

 

단테의 생가 - Casa di Dante

두오모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단테의 초라한 생가가 있다. 현재 이곳이 단테의 생가였다는 증거는 벽에 붙어있는 단테의 토르소가 전부이다. 그가 이탈리아에 남긴 유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현재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탄테 상

바닥에 탄테의 모습

 

 

 

 

 

         두오모 성당 - Duomo,Santa Maria del Fiore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거리의 중심을 향하면 눈앞의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능한한 장엄하게, 더욱더 화려하게"라는 말처럼 175년, 엄청난 세월을 거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 두오모는 피렌체 시내 어떤 외진곳에서도 두오모의 아치형 돔의 일부분이 보일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하다.
성당의 광장에는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준비되어 있다. 두오모는 1292년에 착공되어 1436년에 완공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마리아'란 뜻)'이다. 깜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를 하였고, 106m의 높이를 자랑하는 돔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작으로 1420년 착공후 14년간 이 건축 공사에 종사했으며 사후 1461년에 완성을 보았다.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의 벽체는 장관을 연출하며, 내부는 전성기 고딕 아치형 천정이 아치들로 받쳐져 있다. 관광객들이 직접 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이 가능하다      

 

지오또의 종탑(Campanile Giotto)
높이 85m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종탑은 1334년 지오또에 의해 기동되어 안드레아 피자노와 프란체스코 랄렌리에 의해 완성되었다. 당시는 페인트와 같은 안료가 없었기 때문에 흰색과 녹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외관을 조화롭게 구성하였으며, 근처의 두오모 성당과 성 요한 세례당과 조화를 이루어 질식할듯한 규모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성 요한(산 지오바니) 세례당
원래는 피렌체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건물로, 두오모 성당 바로 맞은 편의 천국의 문이 있는 건물이다. 5세기 전에 최초의 건물이 세워졌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건물로 외벽은 흰 대리석의 줄무늬로 만들어져 있다.
천국의 문은 기베르띠의 작품으로 구약성서를 상징하며, 르네상스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프랑스 로댕 박물관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지옥의 문'과 비교해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북문도 역시 기베르띠의 작품으로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고, 세례 요한이 그려져 있는 남문은 안드레아 피자오에 의해 1330년 완성되었다.

천국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