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로마 시대 개선문 중 가장 상태가 완벽하게 보존된 개선문이며, 규모가 가장 크고, 후기 로마시대의 문화 예술의 걸작품입니다.
콜롯세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으며, 오른편으로 포로 로마노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큰 이 개선문은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 막센티우스와 치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으로AD 31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높이21미터, 너비25m의 세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콜로세움 - Colosseum
로마에 있는 거대한 원형경기장.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좌석과 장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콜로세움 - Colosseum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였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된 콜롯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입구 반대편에서 엘리베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이곳을 찾아오려면 지하철 b선 롤롯세움역에서 하차하면된다.
마르첼로 원형극장 - Marcello
사진만 보면 콜롯세움과 혼동하기 쉬운 이 건축물은 로마시대 축조된 극장 중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유일한 극장이다. 각 층당 41개의 아치로 장식되어진 2층 건물로서 내부는 약 15,000명을 수용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극장은 줄리어스 시저가 착공을 해서 BC 11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완성하여 조카이자 사위인 마르셀루스(Marcellus)에게 주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도리아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으로 41개의 아케이드를 세우고, 그 위에는 코린트 양식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외관은 언듯보기에 콜롯세움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콜롯세움과 마찬가지로 중세에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세벨리(Savelli)와 오르시니(Orsini)의 궁전으로 개조되었다. 아폴로 신전(Temple of Apollus)의 세 석주는 다시 세워진 것이다. 이 왕궁의 내부는 19세기의 건축물 양식이 눈에 띄고, 정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입구와 정원에는 오르시니의 곰이 조각되어 있다.
포로 로마노 - Foro Romano
베니치아광장(Piazza Venezia)와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신전,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온나라가 살아있는 박물관
공화정 시대는 기원전 510년에서 기원전 29년까지로 지중해 연안의 강력한 도시국가인 카르타고를 격퇴시킴으로써 이탈리아 반도를 안정시켰고, 이로 인해 인근 지역인 스페인·발칸지역·그리스·소아시아 지방도 정복하게 되어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로마는 기원전 29년부터 476년까지 넓은 영토와 다수국가를 정복함으로써 이를 지배하기 위한 강력한 통치자가 요구되자 1인 체제의 황제가 전권을 행사하는 제정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나 잦은 왕권다툼과 사치 및 퇴폐행위로 476년에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이탈리아는 소도시 국가로 분열되고 교황의 영향력을 받는 암흑기를 거쳐 15 ·16 ·17세기에 로마의 영광을 되살리고 인본을 중시하는 르네상스가 일어남으로써 문예부흥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1870년 가리발디 장군에 의해 이탈리아 전역은 한 국가로 통일되고 다시금 왕정시대를 펼치다가 1, 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오늘날의 이탈리아 민주공화국 정치체제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서구문명의 정신 ·물질의 산실은 로마제국 문명과 기독교 문명, 그리고 르네상스 문명이 접목된 결과이다.
Mamertinum감옥
이곳은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같혔던 곳으로 유명하다. 베드로가 네로황제를 피해 로마 밖으로 피해갔다가 꿈에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네") 하자 예수는 "네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니 내가 백성을 위해 다시 로마로 들어간다" 하셨다. 이후 베드로는 스스로 네로에게 잡히고 바로 이 Mamertinum감옥에 같혔다. 몇달을 음식을 주지 않고 방치 했으나 감옥 바닦에서 샘이 솟아 베드로를 살게 하였다. 말이 감옥이지 한평남짓한 빛이 전혀 없고 칙칙한 토굴과 같은 구조이다.
베네치아 광장 - Plazza Venezia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lo)에서 남쪽으로 늘어선 코루소거리(Via del Corso)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광장 정면에 "하얀 웨딩케이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탈리아 통일기념관
콜로세오에서 시작된 고대 로마의 거리는 좌우로 포로로마노와 옛 로마 황제들의 공회장 등을 끼고 일직선으로 달리다가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러 멈춘다. 베네치아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시대도 근대로 향한다. 로마 시내의 중심 좌표 중 하나로 쓰이는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인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안고 있어 의미도 각별하다. 지난 1870년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1885년에 건립을 시작, 1911년에 완공됐다.
통일의 상징적 의미도 의미지만 건물 자체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으로도 명성이 높다. 기념관 앞 광장이 바로 베네치아 광장인데 이곳은 무솔리니가 파시즘 주창의 대중선동 장소로 활용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그가 대중을 선동하고 그예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했던 기념관 발코니에는 이제 로마 시내를 조망하는 관광객들의 느긋한 시선만이 가득할 뿐 당시의 긴박함과 집단흥분의 상태는 온 데 간 데 없다.
베네치아 광장 - Plazza Venezia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lo)에서 남쪽으로 늘어선 코루소거리(Via del Corso)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6개의 주요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있다. 광장 정면에 "하얀 웨딩케이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 있다.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엠마누엘 2세를 기념에서 건설되었으며, 1911년에 완성된 네오클래식양식의 건물로 유명하다. 엠마누엘 2세국왕의 기마상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전사의 묘가 있다.왼쪽에는 베네치아 궁전이 있으며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 - Piazza del Campidoglio
캄피돌리오 광장은 고대 로마제국의 시작으로 로물로스가 로마제국을 건국한 후, 쥬피터의 신전을 세웠던 고대로마의 중심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에 황폐해진 이 언덕에 생명을 불러일으킨 것이 미켈란젤로이다.또한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것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황제의 기마상이다.
이 로마황제상은 여기에서부터 남쪽으로 수킬로미터가 떨어져있는 산 조바니 인 라테라노 교회(San Giovanni Laterano)의 근처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로마황제의 동상은 기독교인들의 손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으나 이 동상만이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그뒤에 이 동상은 후세에 기마상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라는 뜻은 수도라는 캐피탈(Capital)의 의미이다.
정면에서 볼 때 우측 건물은 콘세르바토리 궁(Palazzo dei Conservatori)이며 왼쪽은 누오보 궁(Palazzo Nuovo)인데 현재는 둘다 카피토리노 박물관(Museo Capitolino)이란 명칭으로 고대 로마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광장 정면의 건물은 고대 로마의 폐허위에 12세기경에 세나토리오궁을 세운 것인데 현재는 로마의 시의회와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캄피돌리오 광장, 좌/우의 박물관, 시청사 앞의 분수, 꼬르도나타(Cordonata) 계단 등은 모두 미켈란 젤로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다. 고대로마시대에는 시청사의 우측의 좁은 길이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 캄피도리오 언덕을 연결하는 길로 되어있었다.
대전차 경기장 - Circo Massimo
이 장방형의 길쭉한 건물은 시민들의 즐거움을 제공해 주기 위해 지어진 전차경기장으로 벤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1인승 이륜 전차 경기와 검투사들(글래디에이터)의 검투가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흔적만 남아있는데, 그 크기가 너비 664mX124m에 이른다.
이 건물은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과거에는 2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역사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이며, 중간 중간에 계속 증축되었다. 이 경기장은 에트루스칸 왕 때, 타르키니오 프리스코에 의해 만들어 것으로 추정되며, 트라얀(Trajan)에 의해 개축되었고, 카라칼라(Caracalla )가 확장공사를 하였다.
현재는 이 지역이 공원과 폐허만 남아 있지만 콘스탄티누스도 개축 공사에 참여하여 이 당시에만 20만명을 수용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비니 여인의 강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이야기와 관계가 깊은 곳으로 바티칸 미술관과 피렌체의 광장에서도 조각품을 볼 수 있다.
사비니 여인의 강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로물러스 형제에 의해 로마가 세워진 직후 여인들이 부족했었는데, 로물러스는 현재 대전차 경기장이 세워진 곳에서 인근의 사비니인들을 딸과 아내를 동반하도록 초청하여 큰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열리는 동안 로마사람들은 손님으로 온 사비니 여인을 습격하여 강간하고 남자들은 쫓아버렸다.
이 당시 여자들은 약탈된 재산으로 법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했는데, 초창기에는 도망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받았으며, 자손들이 로마에 정착한 후에도 여인들의 지위는 노예와 다름이 없었으며, 그들은 이렇게 로마 사회에 융화되었다.
보통 배낭여행을 빼고는 들어가기 힘든 지역으로, 건너편에서 보면 벽면이 보인다. 이 대전차경기장의 오른편은 팔라티노 언덕이, 왼편은 아벤티노 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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