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사진 방/수원노회 유럽탐방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19편(이탈리아 로마 하늘계단교회 카타콤베)

미션(cmc) 2012. 7. 24. 10:07

 

 

 

 

 

 

'성 베네딕트' 상

베네딕트수도원

 

 

 

 

 

 

 

하늘계단교회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원하였던 이유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과 같이 당시 로마가 세계의 중심지여서 로마의 복음화는 곧 세계 복음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된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2년여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

하늘계단교회-사도 바울이 갇혔던 감옥이 이 교회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바울이 참수당하기 위해 끌려 갔던 길

바울 참수교회(세 분수교회)

로마 서쪽 성문 밖에 사도 바울 순교기념교회가 있다. 바울이 참수를 당할 때 그의 머리가 세 번 튀었고, 그 튄 장소마다 분수가 솟았다고 하여 오늘날 세 분수 교회라고도 불리운다. 순교기념교회 입구에 들어서니 홀의 우측 벽면에 바울이 참수당하여 순교하는 모습의 부조액자가 있었다. 교회 단 좌측에는 사도 바울이 참수될 때 그의 머리를 바치고 있던 대리석 참수대가 보존되어 있어 순례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베드로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는 조각

바울을 참수하는 조각

바울을 참소 했을 때 샘이 솟은 장소 3곳에 십자가를 세웠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있는 모습

 

 

이태리- 로마 카타콤베 Catacombe

로마 초대 기독교인들의 가장 오래 된 곳 입니다.화산암지대로 지하로 30m 파내려 갔으며 총 연장 20km나 되는 복잡한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3세기때의 교황들의 묘비가 있고 수많은 신자들의 쉬었던 자리가 통로 양쪽에 있습니다

로마의 지하공동 묘지들 중에는 가장 대표적이고 오래 되었으며 3 세기의 교황들의 무덤과 성녀 체칠리아의 무덤도 있다 성녀 체칠리아의 관은 9 세기에 트라스테베레 지역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 성당으로 이장 되었고 빈 자리에 성녀의 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증손녀인 도미틸라의 이름을 딴 지하 공동 묘지로 로마의 카타콤베들 중에서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에   4층으로 된 지하 공동 묘지에는흉상이 있다

로마시대 사용하였던 거리. 이 거리는 군사적, 경제적인 긴요한 가치를 가진 로마로 통하는 길 입니다. 로마군단들이 개선행진을 하면서 로마에 입성할 때도 이 도로를 사용하였다 합니나.이 아피아 가도 양옆으로 지하에 많은 동굴이 있었는데 초대 기독교인들이 미사도 드리고 피신하여 기거도하고 죽은자들의 시신을 모셔 둔 곳이도 합니다.로마시대 초대 기독교인들은 이곳이 "쉬는곳"(체메테리아)라 불렀 답니다.

Catacombe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카타콤은 매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했다. 사람이 죽었을 경우 지하에 있는 가족 납골당에서 매장일과 기일을 맞아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을 치렀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시절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 수반되었던 성체성사도 이 납골당에서 치러졌다. 어떤 카타콤은 커다란 방과 부속 예배실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성인과 순교자에게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사실상의 성소(聖所)로서의 기능을 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으로는 산세바스티아노 사원의 카타콤에 있는 트리클리아로,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와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를 기리는 음식(arigeria)을 함께 먹고 성인들에 대한 자신의 기도문을 벽에다 새겼다.

카타콤에는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고 비밀통로가 있어서 모래밭이나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으므로 박해와 소요 사태가 닥쳤을 때 은신처로 이용되었다. 그 예로 교황 식스투스 2세와 4명의 부제(副祭)들은 258년에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할 때 산세바스티아노 사원의 카타콤 안에서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후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민족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곳으로 피신했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이 카타콤을 비밀 예배장소로 사용했다는 통념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3세기경 로마 시에는 5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교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마다 집을 나와 비밀리에 카타콤으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어떤 종류의 예배이든지 간에 카타콤의 길고 좁은 통로를 생각할 때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보이며, 성 칼릭스투스 카타콤에 있는 '교황의 예배실'과 같은 가장 큰 공간을 가진 예배실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40명 정도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교도나 이교도 모두 죽음을 불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묘지에서 죽은 자를 기리며 함께 식사를 하거나 미사를 보았을지는 몰라도 이 카타콤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정기적으로 예배를 보았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카타콤은 그리스도교도나 로마인만이 유일하게 만들어낸 것은 전혀 아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돌로 된 지하의 굴 속에 매장하는 관습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권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카타콤을 발견할 수 있다. 몰타에서는 이 섬의 고대 수도 근처에, 시칠리아에서는 타오르미나와 시라쿠사 근처를 비롯한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 근처에 있다. 레바논의 시돈(지금의 사이다) 근처를 비롯해 튀니지의 하드루메툼(지금의 수사) 근처에 카타콤이 있으며 이탈리아에는 여러 곳에 널리 분포해 있으나 특히 나폴리 주변과 고대 에트루리아 지역에 많이 있다.

로마에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도의 카타콤은 시 중심부에서 4.8㎞ 정도 반경 안에 분포해 있다. 40개의 굴방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도시로 들어오는 간선도로 근처에서 발견된다. 이것들은 알려져 있는 모든 카타콤 가운데 큰 편에 속하는 것들로 일부는 관람객들에 개방된다

 

 

익투스(그리스어: ἰχθύς 이크티스*, 대문자 표기로 ΙΧΘΥΣ)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초기 기독교도들이 비밀스런 상징으로 썼던 두 개의 곡선을 겹쳐 만든 물고기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