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성벽.
바티칸시티 [Vatican City]
로마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로 교황이 지배하는 독립국.
바티칸시티는 1929년 라테란 조약에 따라 당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 이 나라의 통치권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선출된 교황이 행사한다. 교황은 바티칸시티 안에서 행정·입법·사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또한 바티칸 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는데, 이들은 교황청 인사들과는 달리 성직자가 아니다. 교황은 교황청의 바티칸시티 위원회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며, 행정권은 중앙협의회의 보좌를 받는 지사에게 위임된다.
이곳의 문화는 교황들이 이탈리아 최고의 예술 후원자였던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많이 쇠퇴했다. 그러나 바티칸 박물관,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 보르지아관(館)에 있는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 라파엘의 방 등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비평가, 미술가 및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바티칸 도서관은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와 그리스도교 시대의 진귀한 사본들을 소장하고 있다. 바티칸시티에서는 영향력있는 일간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L'Osservatore Romano〉를 발행하고 있으며, 이곳의 인쇄소는 그루지야의 교회언어로부터 인도의 타밀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모든 언어로 책이나 소책자를 발행할 수 있다. 인구 900(2003 추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MICHELANGELO,Interior of the Sistine Chapel, The ceiling (detail)
바티칸에 피냐 정원
솔방울
거대한 4m 높이의 청동 솔방울은 고대 로마의 분수의 일부로 판테온 근처에서 발견된 것이 베드로 성당 현관에 있다가 베드로 성당이 새로지어지면서 1508년 이곳으로 옮겨졌고, 솔방울 청동상과 받침은 서로 다른 작품으로, 솔방울 받침은 아그리파 욕실에서 가져온것이고, 양쪽 봉황두마리는 아비다누스 황제 묘지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
바티칸 피냐정원 동영상
지구본
지구본은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지구가 환경 오염에 의해 파괴 되어 가고 있는것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데, 지구안에 또하나의 지구가 있다. 안의 지구는 신세계가 탄생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 이라고 한다.
라오콘
미켈란젤로도 감탄했다는 작품
성 베드로 대성전
성 베드로 대성전(라틴어: Basilica Sancti Petri, 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1][2][3]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서기 90년에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나중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이 되는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전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4]
베드로
베드로(고대 그리스어: Πέτρος 페트로스→반석, 라틴어: Petrus 페트루스, ? ~ 64년)는 기독교의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다. 특히 신약성경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베드로는 요나 또는 요한의 아들로서 갈릴래아 지방 베싸이다 마을 태생이다. 사도 안드레아와는 형제지간이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1]이었으나, 예수가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 케파(kefa)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이를 고대 그리스어로 Κηφας(kephas)로 소리나는 대로 적은 후, 낱말 뜻을 고대 그리스어 페트로스로 풀이한 것이다.[2]
예수의 승천 후 베드로는 예수를 대신하여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으며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소아시아 및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하였다. 가톨릭교회에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그는 로마에서 잠깐 동안 교회를 주재하였으나 네로 황제의 박해에 휘말려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에 그의 무덤이 있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하늘나라의 열쇠를 부여받았기 때문에(마르 16,19),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초대 교황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제도를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그 예로, 현재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베드로의 265번째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도 바오로와 같은 날짜인 6월 29일을 베드로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1496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와 프랑스 추기경으로 부터 피에타상을 조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피렌체에서 로마 바티칸으로 갔습니다.
"피에타" 라틴어로 "경건한 마음" 혹은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르네상스 미술에 자주 표현되는 양식이기도 합니다.
성 베드로 광장(이탈리아어: Piazza San Pietro)
성 베드로 광장(이탈리아어: Piazza San Pietro)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바로 앞에 조성된 광장이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에 둘러싸여 있는 비지국으로 로마 교황청이 다스리는 나라이다(광장은 로마 시의 보르고 리오네 구역과 동쪽으로 접경을 이룸).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성 베드로 광장의 설계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이다. 베르니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머리로 두고, 반원형의 회랑 두 개를 팔로 묘사함으로써 성 베드로 대성전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성 베드로 광장 양편에 각각 네 줄로 늘어선 토스카나식 기둥 284개와 벽에서 돌출된 기둥 88개로 이루어진 베르니니의 회랑은 165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67년에 완공되었다. 16m 높이의 원기둥꼴 대리석 기둥 위에 있는 140개의 성인상은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다
'연합회사진 방 > 수원노회 유럽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23편(이탈리아 베네치아 곤돌아 ) (0) | 2012.07.27 |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22편(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언덕 시뇨리아광장 ) (0) | 2012.07.27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20편(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대전차경기장) (0) | 2012.07.24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19편(이탈리아 로마 하늘계단교회 카타콤베) (0) | 2012.07.24 |
유럽종교개혁지 탐방 18편(이탈리아 피사의 탑) (0) | 2012.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