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후원
(살후 3:1-5)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살후 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살후 3: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광대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 없으셨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마지막 죽는 날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생존 여부를 막론하고 현재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나는 부모 형제와 이웃과 스승의 도움을 받은 존재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선행과 노력만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인 지혜만으로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성경을 가르쳐 주었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롬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설령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자랑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되며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고백처럼, 하나님은 물론 그동안 나를 후원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는 영육 간에 빚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랑의 빚을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웃을 섬기는 일이고 전도하는 일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성인이 되었고 우리가 직분자가 되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우리는 누구의 도움이나 후원이 필요 없는 사람들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도음과 후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또한 그 사랑의 빚을 누군가를 돕고 후원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 자식들을 사랑하고 염려하고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하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영적인 후원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타락하고 범죄하게 만든 원흉인 사단이 그것을 보고 구경만 하고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간 믿음의 선진들도 모진 박해와 시험을 당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서 인내하고 승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가 개척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외부적으로는 유대 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내부적으로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그릇된 재림 사상에 미혹을 받고 있는 위기 상황을 전해 듣고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1)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성경적으로 풀어서 도움을 주는 것이고,
2) 또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바로 그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1.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도 바울
사도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고 한탄만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고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살전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살후 1: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오늘 목회자들이 양떼들의 형편을 위해 기도할 때 건강이나 사업이나 진급이나 자녀들의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앞서 살펴 본 대살로니가 후서 2장 후반부에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바울의 간절한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살후 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낙심하며 좌절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가장 강력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 사도의 기도는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특정인의 주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세주가 되시며,
2)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사랑에 있어서도 가장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상호간에 신뢰라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가장 먼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평소 우리가 무슨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에 기쁨이나 확신이 없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받은 복을 헤아리게 되면 지금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도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또한 과거에처럼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해주신 구세주이시고,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 아버지시이시라면,
이제 우리가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지라도 그것을 능히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바울 사도가 그 같은 믿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는 지금 고난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소원하는 기도였습니다.
(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위로하시고’라는 말(parakalevw)은 ‘훈계하다, 격려하다, 간구하다’라는 뜻으로 사도 바울은 핍박당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하나님께서
1) 마음에 위로해주시고,
2) 선한일과 말에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렇게 위로하시고 붙잡아 주시기만 한다면 능히 잘 이겨나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의 중보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핍박 중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시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후원이었고 또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사람도 고난과 핍박을 즐거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속적인 고난 앞에 무릎을 꿇고 낙심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세상에서 그 어떤 힘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부단한 위로와 힘주심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롬 8:38)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생명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천사들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옥의 모든 세력을 다 합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멀리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에 대한 우리의 염려도 내일에 대한 우리의 공포도” (롬 8:39) “또는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거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일선 선교사들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은 인사치례가 아니라 오늘 성경 말씀처럼 선교사들이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어떤 물질적인 도움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하는 막강한 후원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주 경험하는 좌절과 절망적인 생각과 나태함과 자포자기와 같은 도전을 받을 때 스스로 내가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그럴 때 누군가 오늘 성경의 사도 바울처럼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줄 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하심과 일으켜 세우심과 힘주심을 경험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후원인 것입니다.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마치 불 심판 받기로 이미 작정된 소돔과 고모라성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해 아브라함이 중보의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그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후원임을 잊지 말고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교회에 기도를 요청하는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요즘으로 말하면 최전방의 일선 선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여러 가지 어려움과 더불어 필요한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외부적인 핍박과 더불어 내부적인 이단들과 맞싸우는 것도 힘 드는 일이지만 사도 바울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는 비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1) 경제적인 어려움
물론 사도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천막을 제조하는 텐트 메이커로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지만 만일 선교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더 많은 교회들을 세웠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선교를 하였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기에게로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의식주에 있어서 풍족하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딤후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만일 사도 바울이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날이 추워졌으면 새 옷을 사서 입으면 될 텐데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굳이 드로아 가보의 집에 맡겨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한 것은 그 만큼 사도 바울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2) 지 교회들의 어려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처럼 사도 바울이 여러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세웠지만 한 결 같이 다양한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바울 서신들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교회들의 어려움은 곧 사도 바울의 어려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떠난 뒤에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면서 동시의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변형해서 율법과 할례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다른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2) 고린도 교회는 교회 안에 여러 분파와 갈등과 음란과 부패와 성령의 은사에 대한 혼란 등으로 사도 바울의 마음을 고민하게 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여러 교회들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해야만 하는 가운데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라고 우리와 성정이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평범한 감정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항상 바울의 기도 제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복음전도 사역의 어려움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에 항상 최선을 다하였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생각할 때마다 다른 교회들을 통해서도 그렇게 복음이 좀더 널리 확산되어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음을 오늘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여기서 ‘퍼져’라는 말은 하나님의 복음이 좀 더 빨리 전파되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 바울의 간절한 소원이요 기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강경한 핍박에 직면할 때 바울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배후에 누군가의 기도 후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도 복음 전파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악한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아 복음 전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후 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의 후원을 요청한 까닭은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보호와 구원이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살후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여기서 ‘미쁘사’라는 말은 다른 말로 ‘믿음만 하다,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한번 작정하셨으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변경시키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며, 또한 기도의 후원이 필요한가 하면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구원을 무효화시키려고 하고, 또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고, 우리를 늘 불안하게 하려는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단을 대적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기도의 후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우리를 파멸시키는 이기주의의 속임에서부터 우리를 정화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3. 온전한 믿음을 위한 기도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우리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자랑하기 보다는 감사해야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구원 받았음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구원의 필수요건처럼 강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죽음에서 겨우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 최종목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닮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선한 삶을 위해서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인생의 행복이 좋은 옷을 입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다 죽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몇 평짜리 집에서 살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얼마나 선한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성자나 성직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느껴야 할 책임과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과연 그것이 우리의 의지로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답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성경을 안다고 해서 저절로 선하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힘을 주셔야만, 성령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선하게 살아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 성경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 은혜에 순종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계가 아니라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자 하는 죄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죄성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그 싸움이 바로 기도 싸움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성경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전서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명령에 잘 순종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살후 3: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 알아서 잘 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권면이나 잔소리가 필요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잘 순종할 것이라는 기대와 더불어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시험과 유혹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것을 잘알고 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후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와 같은 신앙적 균형을 위해서는 바울이 준 가르쳐 준 교훈과 명령을 반드시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거짓 진리에 속아서 잘못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후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고 나서 그들의 마음이 부정적이 되지 않고 긍정적이 되고, 그들이 불순종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마음을 ‘인도하여’라는 말(kateuquvnw)은 ‘곧게 하다, 똑바로 인도하다, 지시하다, 지도하다’라는 뜻의 과거 능동태로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단번에 그렇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바라는 기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인내에 들어가는 성숙한 신앙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다스리는 일입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왜냐하면 이전에 성품으로는 그렇게 순종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을 열어 주시고, 인도하시고, 다스려 주실 때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거나 나의 가족이나 친구 중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 무엇보다 강력한 기도의 후원이 요청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자신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온전한 삶을 소원하십니까? 정말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의 후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저의 마음을 똑바로 인도하여 주세요. 하나님 내 남편의 마음을 바르게 지도하여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정말 우리의 내면적 삶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면 말도 행동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바울은 신앙의 용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에게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먼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롬 15: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바울은 자신들이 아무리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증거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지 아니하시면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복음의 열매를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하나님께서 구하여 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기에,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할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시길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신앙은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모든 자에게 승패를 결정짓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첫째, 성도들이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성도들도 교역자들이 전하는 말씀이 사람들 속에 힘 있게 역사하기를 위해 후원기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가 서로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오늘도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고, 악한 자들에게서 지키실 것을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되 물론 육신의 건강이나 경제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죽을 때까지 그러한 수준에 머물지 말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흠이 없게 해달라고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서로를 위해 후원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적극적인 기도의 후원자가 될 때 복음은 힘 있게 전파되고 전파된 복음은 옥토에 뿌려진 씨처럼 싹이 나서 자라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음이 마치 지진처럼 지축을 흔들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흥왕하게 되고 선교사들을 통해 땅 끝까지 확산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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