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오직 하나님만!/(시 4:1-8)

미션(cmc) 2013. 8. 1. 16:05

오직 하나님만!
(시 4:1-8)

 (시 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 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시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시 4: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시 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사람이 기쁘고 즐거울 때 악기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거나 시를 낭송하는 것은 당연히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원수들이 죽이려고 점점 포위해 오는 와중에서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신이 없거나 아니면 믿음이 큰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 4 편의 표제를 보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현악’이라는 악기(네기노트"(twnygn))는 하프나 심벌즈와 같이 손으로 연주하는 악기를 뜻합니다.
시편기자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심이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하나님께 노래하며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1.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에 지난날의 역사를 기록해 놓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읽게 하시는 까닭은 당면한 현실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에 하나님께 구하였더니 응답해 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어려운 현실에서 낙심하지 않고 현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 것은 지난 날 응답하신 것처럼 지금도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시 4:1) “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여기서 ‘곤란’이라는 말(rx')은 ‘좁은, 단단한, 고통, 재난, 곤란, 적대자, 원수’라는 뜻으로 시편 기자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너그럽게’라는 말(bj'r;)은 앞서 곤란이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넓다, 광대하다’라는 뜻으로 과거 좁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너그럽게’ 라는 말은 이삭이 여러 번 우물을 강탈당했지만 여러 번 양보하였을 때 마침내 여호아께서 넓게 하셨다는 듯의 ‘르호봇’이라는 말과 바로 오늘 성경에서 ‘너그럽게’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창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하였더라

비록 세상이 정의롭지 못할지라도 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편 기자는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지난 날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던 하나님께 동일하게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라고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시편기자의 기도에 대해서 당연히 응답하셔야 할 무슨 책임과 의무가 있으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시 4:1) “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위기를 만났을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며,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은 더 놀라운 은혜입니다.
비록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택하시고 기름을 부으셨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당연히 백성들은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 영광을 높이고 존경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고 또 다윗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해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모든 것들이 헛되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 4: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것들을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그것을 무(無)로 돌려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를 비난하고 조롱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기죽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더욱 우리와 함께하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은혜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2. 오직 하나님만 불러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지난 날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구하였을 때 은혜 베풀어 넓은 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지금은 물로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시 4: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여기서 ‘경건한 자’라는 말(dysij)은 ‘친절한, 충실한, 경건한 자 즉 성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택하신 줄’ 이라는 말(hl;P)은 ‘구별하다, 명확하다, 뚜렷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애굽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확연히 구별하여 재앙을 내리신 것처럼 택하신 자들을 갈라놓으신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는 말은 성품이나 행실이 남달리 깨끗하고 거룩한 자를 골라서 택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우리를 택하시고 가리켜 ‘경건한 자’ 라고 하신다면 그 칭호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한 자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성도로 택하신 사람들을 가리켜 경건한 자라고 부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부를 때에’ 라는 말(ar;q)은 ‘부르다, 초대하다, 선포하다’ 라는 뜻이며, 또한 여호아께서 ‘들으시리로다’ 라는 말([m'v)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이해하다, 기도에 응답하다’라는 뜻처럼 귀 기울여 들으신다는 미 완료형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경건한 자일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전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지 않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와 같이 택하심을 받은 경건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께 기도하고, 응답해 주시는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우리를 택하시고 가리켜 ‘경건한 자’ 라고 하신다면 그 칭호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한 자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여기서 ‘떨며’라는 말(af;j)은 ‘두려움에 떠는 것’을 뜻하고 또 ‘범죄’라는 말(af;j;)은 ‘빗나가다, 잘못을 범하다, 죄를 짓다’라는 뜻의 미완료로, 과거는 물로 현재에도 죄가 여전함을 뜻합니다,

1) 하나님께서 지난날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셨다면 그 죄를 청산하고 더 이상 끌고 가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은 불의한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2) 사람들 앞에서 떠벌리지 말고, 자리에 누워 잠잠히 자신에게 물어 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그것은 “나 자신이 1)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2)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3) 한번 가면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는지? 4) 내게 주신 달란트를 얼마나 남겼는지? 5)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였는지? 6)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7)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지?” 에 대하여 자신과 깊이 대화를 나눌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는 경건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됩니다.

3.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시 4: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여기서 ‘의지 할지어다’ 라는 말(jf'B)은 ‘믿다, 신뢰하다, 안심하다, 안전하다’라는 뜻으로, 시편 기자가 여호와 하나님만을 확고하게 의지하였을 때 그 마음에 임하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과연 세상에서 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경건한 자인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온갖 잡다한 종교와 우상이 가득한 세상에서 오로지 의의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속적으로 하나님만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가리켜 독선주의라고 비난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몹시 싫어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핍박자들이 하나님께만 의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편 기자를 향해 조롱하며 압박하였을 때 시편 기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얼굴빛을 비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하였습니다.

(시 4:5)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이처럼 시편 기자 다윗이 구한 주의 얼굴은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의의 제사를 드리는 자에게 두려움을 몰아내고 마음에 평화를 주시는 선하고 은혜로운 얼굴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이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부르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을 때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물론 외형적으로는 시편 기자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은 세상에 가장 소중한 선물을 먼저 시편 기자의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예 화
부잣집에는 개인금고가 있어 거기에 패물과 예금 통장과 부동산 문서들을 보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도나 화재나 천재지변에 안전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너는 확실히 구원을 받았다는 보증서를 주시면서 그 문서가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구원의 보증서를 어디에다 보관하면 가장 안전할까요? 우리 집은 가난해서 금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다 보관할까요? 어떤 사람처럼 구원의 보증서를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다 묻어두면 안전할까요? 아무리 고민을 하고, 오래 생각한다고 해도 세상에서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안전하게 맡길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의 금고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소중한 보화를 마음의 금고에 가득히 채워주셨습니다.

(시 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 중에 제일 기쁘고 즐거울 때가 일년 농사를 추수하여 곡간에 가득히 채웠을 때라면, 오직 여호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은 그것들 보다 더 풍성한 복을 마음의 금고에 가득히 채워주셨습니다.
그 결과 언제 대적들에게 기습을 당하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도 마음에 평화라는 보화를 마음의 금고에 가득히 채워주셨습니다.

(시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1) 여기서 ‘평안히’라는 말(!/lv)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사로 ‘평화, 복지, 번영, 행복, 건강, 안전’등을 내포하는 말입니다.
이 같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이상으로 샬롬의 진정한 개념을 더 잘 표현해 주는 완전, 무결, 조화, 완성의 상태를 뜻합니다. 한 마디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샬롬은 성경에 나오는 거의 3분의 2 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결과로 말미암아 모든 부족함과 문제점들을 완전히 충족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 그 다음 ‘안전히’라는 말(jf'B)은 ‘안전, 안심, 염려 없는’ 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염려가 없이 평안한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3) 끝으로 ‘살게 하시는’ 이라는 말(bv'y:)은 잠간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앉다, 머무르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상태로 앞서 ‘평안히’와 ‘안전히’ 라는 상태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평안히 눕고 자고 살게 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흔히 앞서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라는 말씀 때문에 아침 기도라고 합니다.
오늘 시편 4편은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평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의 기도이기 때문에 저녁 기도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에게도 오늘 성경 시편 기자와 같이 언제 어디서나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그와 같은 평안과 안전의 복을 주시는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정말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모든 죄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다 청산해 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시편 기자 다윗처럼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만사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 마음에 주인으로 초청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시편기자와 같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자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며 마음의 금고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고귀한 선물을 가득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구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샬롬과 바타흐 즉 평안과 안전”이라는 축복입니다.

기도는 천국의 창고를 열고 보화를 가져오기 위한 열쇠와 같고, 간절한 기도는 강하고 큰 날개를 가져서 어떤 새들보다도 높이 날아 하늘 보좌에 닿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사람은 그가 간구하는 모든 것을 얻은 듯, 왕궁에서도 원수들을 담대하게 꾸짖는다. -로버트 레이턴-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은 자는 언제, 어디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히 잠을 잘 수 있는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 바랍니다.

(신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