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시 6:1-5)

미션(cmc) 2013. 8. 13. 15:33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
(시 6:1-5)

 (시 6: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 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시 6: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 6: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만 있으면 고통을 피하려고 하고, 피할 수 없다면 아주 약하게 신속히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과거나 현재나 아니면 언젠가는 물질, 건강, 잘못된 인간관계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그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가 아닌 나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더더욱 허탈감과 절망감에 빠지게 될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이유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기 그 원인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1) 어떤 경우는 자신의 죄와 실수로 자초한 것이거나,
2) 다른 사람의 실수나 고의 때문에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나,
3) 인생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경우나,
4) 나를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6편의 기자는 무엇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또한 그와 같은 고통을 어떤 자세로 대처하는가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인생살이에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고통을 당하는 까닭은 어느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1)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기서 ‘책망’이라는 말은 ‘심판하다’는 뜻의 미완료형이고, ‘징계“ 라는 말은 ’교훈하다, 징벌하다‘는 미완료형으로 그 출처가 다 하나님의 분노하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심으로 말미암아 내리시는 심판이나 징계라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이겠으며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임을 그의 탄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 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여기서 ‘수척하다’는 말은 ‘기운이 없어지고 약해진다’는 뜻으로 보이는 몸뚱이가 기진맥진한 상태이고, ‘뼈가 떨리오니’라는 말은 단순히 뼈만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뼈 마디마디가 덜덜 떨리고 온몸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경직된 상태를 뜻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심지어 영혼까지 떨리어 몸을 가눌 길이 없는 상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 기자를 그처럼 육체는 물론 마음과 정신까지 고통스럽게 하게 하는 근본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와 같이 육체와 정신이 함께 고통 중에 처하게 될 때 유일한 피난처가 하나님이시며, 그 고통을 치료해 주실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굳게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으로 말미암아 영육 간에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시편 기자가 피할 도피처나 치료자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한 편으로는 죄악을 미워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시편 기자가 범한 죄에 대해서 정당한 징계와 심판을 내리신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이 지금 당하는 고통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 밀어내어 죽게 한 비겁한 죄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와 형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오늘 성경에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바로 그와 같은 맥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시편만이 아니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하여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지도자들의 치부를 숨김없이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정직한 책이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시편 기자의 기도
시편에는 회개의 시가 모두 일곱 편(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에 기록되어 있어서 ‘7대 회개의 시’라고 하는데 오늘 성경은 그 중에 첫 번째 회개의 시입니다.

(시 6:1) “ 여호와여, 주님의 노여움으로 나를 꾸짖지 마시고, 주님의 불 같은 분노로 나를 벌하지 마소서.”

다만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호소하였습니다. 다만 그와 같은 징계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 징계를 멈춰주시고 고통 중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그로 인해 당하고 있는 질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시 6: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여기서 ‘고치소서’ 라는 말은 단순히 아프지 않도록 치료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징계하시고 심판하심으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심히 고통 중에 처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이 자기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거두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 6: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이 자기에게 분노하시고 징계하심을 그대로 받아 드렸습니다.

(욥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시편 기자는 자신이 지금 고통 중에 처한 원인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가신 결과라면, 이제 자신이 고통 중에서 구원함을 얻고 병든 육체와 두려워 떠는 영혼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돌아오셔서 죄인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의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시 6: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 중에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은 난치병에 걸리고 , 물질적으로 손실을 입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나를 간섭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라 나를 포기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죄를 깨닫거나 회개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심판에 이를 때까지 그냥 내려 두시는 것이 가장 무서운 징계와 심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신학적으로 유기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당신의 백성을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에 처하게 하심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돌이켜 보게 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은 후에는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는 영원한 멸망을 받고 스올이라는 지옥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의 채찍으로 인해 아무리 고통스러울 때 오히려 크게감사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3. 회개기도의 위력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범죄한 죄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징계하심으로 시편 기자가 육체는 심히 쇠약해지고 그의 영혼마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고통 중에서 시편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지난 날의 죄악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어 용서와 구원을 간구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1) 진정한 회개의 기도
시편 기자가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드린 회개의 기도는 단지 입술만으로 고백하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탄식으로 눈물을 쏟고 또 쏟아 마치 침상을 눈물로 띄울 정도로 밤마다 회개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편 기자는 어려서는 곰과 사자를 겁내지 않았고, 심지어 사울왕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골리앗조차 쓰러뜨려 목을 벨 정도로 용맹스러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마치 어린아이처럼 밤마다 눈물을 쏟으며 고통 중에서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밤마다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의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고통 중에서 회개의 눈물을 쏟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 6:7)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세상에서 자식의 눈물을 외면하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시편 기자에게 징계와 심판의 채찍을 가하셨을 때 시편 기자가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고통 중에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 눈물을 보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시 6: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시편 기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 왕도 마찬가지입니다. 히스기야가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죽음을 통고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 소식을 듣고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 다윗처럼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생명의 연장을 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왕하 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활짝 웃는 미소는 모든 사람과 소통하게 하는 만국어라면 눈물은 더 이상 구차스런 변명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는 천국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다윗이나 히스기야처럼 눈물로 회개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물을 보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시편 기자처럼 고통 중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만 하면 응답해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동일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애 2: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2) 믿음과 확신의 기도
시편 기자를 무엇보다 더 고통스럽게 하는 사단은 시편 기자의 마음속에 끊임없는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는 절망감을 부추겨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하고, 좌절 할 때 까지 공격의 고삐를 더 강하게 조이고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만 드린 것이 아니라 눈물 못지않게 소중한 믿음의 기도를 드렸음을 확신에 찬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 6:8)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시 6: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징계를 내리심은 자신의 아주 버리심이 아니라 회개케 하기 위함이며 회개하기만 하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근거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이며 지난날에도 수없이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고통 중에서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자신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시 6: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여기서 ‘간구’라는 말은 '은혜‘라는 말에서 왔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들으셨음이여‘라는 말은 완료형으로 하나님께 이미 ’귀 기울여 들으셨다‘는 뜻이고, ’받으시리로다‘라는 말은 ’취하다, 손에 넣다, 붙잡다‘는 미완료 형으로 시편 기 자기가 기도하면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물의 기도를 이미 들어 주셨으며 또한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원수들을 향해 담대하게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시 6:10)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그렇습니다. 눈물은 단순히 액체가 아니라 기도로 만들어진 천국의 이슬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시편 기자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은 앞으로도 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사노라면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쌓아두는 것은 마치 심판 때에 불을 지필 장작을 쌓아두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시편 기자에게처럼 우리에게도 징계의 채찍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길은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죄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임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계와 채찍이라고 생각이 되거든 자비와 긍휼을 힘입어 속죄해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회복하여 주시기를 눈물로 회개할 수 있는 회개의 영을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아프게 하셨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셨다가 고치시는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욥 5: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시 147:3)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사 30: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그러한 믿음의 기도는 고통 중에서 두려워 요동치는 우리의 영혼을 잔잔케 하고, 고통을 안식으로, 불안을 평안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켜 주실 것을 믿고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설령 지금까지 내 인생살이에 좋은 추억들과 평안만 있었다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 때문에 감사를 잃어버리고 안일과 나태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를 범하며 살고 있지 않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물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죄를 범하여 고통 중에 처하였을지라도 그 원인이 하나님께 범한 죄에 대해 징계라면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크게 더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눈물로 참회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사 내가 죽기 전에 나를 회개시켜 정결한 영혼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시려는 특별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