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지극히 아름다운 주의 이름/(시 8:1-5)

미션(cmc) 2013. 8. 28. 16:05

지극히 아름다운 주의 이름

(시 8: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 8: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5)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있어서 성경 말씀과 기도를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는 마치 호흡과 같이 잠시도 중단할 수 없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에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시편을 강해하면서 아침에 드리는 기도,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 억울할 때 드리는 기도를 살펴보았습니다.
흔히 ‘기도’라고 하면 하나님께 필요한 무엇을 구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만일 기도가 그런 것이라면 이미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은데, 아직도 부족한 것이 얼마나 많기에 그렇게 기도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그러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물론 자기 자신도 기쁨으로 기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 8편을 살펴보는 가운데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지를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1. 우주만물의 찬양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실존하신 분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존재하는 그림자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 하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그림자일까요?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그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그림자라고 오늘 성경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여기서 ‘아름다운지요’라는 말(ryDia'(117, 앗디르) )은 ‘큰, 위대한, 장엄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그림자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8:1) “ 여호와 우리 주님, 온 누리에 주님의 이름이 어찌 그리도 장엄한지요. 주님의 영광 하늘 위까지 두루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시편과 같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영원하심을 노래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은 그와 같은 성경 말씀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우주 만물을 본다면 어떨까요? 우리들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주 만물을 볼 때 아울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안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화
지난 8월 13일 태양계를 130년 주기로 돌고 있는 스위프트 터틀이라는 이름을 가진 혜성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별 똥들이 떨어지는 페르세우스 자리 유성우 우주쇼가 있다는 방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밤에 잠을 자는 동안 하늘에 은가루처럼 뿌려진 수많은 별들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밤하늘을 수놓고 별똥이라고 부르는 유성들이 우주 쇼를 펼치지만 도심의 가로등과 현란한 네온 불빛에 가려져서 육안으로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관심이 있는 많은 마니아들이 천문대가 있는 적성산과 제주도의 해수욕장 등에서 우주 쇼를 보면서 소원을 빌겠다고 젊은이들이 밤을 지새웠지만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우주 쇼를 보기 위해서는 전등불이 밝혀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캄캄한 산골에서 천체 망원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밝은 도시 주변에서 육안이나 일반 카메라로는 아름다운 장관을 포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 말씀이라는 특수 망원경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리 우주 만물을 본다고 해도 감동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끼고 자연 만물을 바라보게 되면 새벽 미명 어두운 동편을 밝히면서 솟구치는 찬란한 일출과 한낮에는 파아란 하늘에 각가지 모양의 구름들 그 아래 펼쳐지는 산천초목들과 각양각색의 꽃들, 저녁에는 서산을 넘어가는 일몰이 내 품는 노을로 말미암아 채색된 형용색색의 구름들을 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우주만물은 인간들의 제품처럼 대량생산된 싸구려 공산품이 아니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이 만든 값비싼 수제품처럼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공을 들여 만드신 수제품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여기서 ‘보오니’라는 말(ha;r; 7200, 라아)은 ‘주목하다, 지각하다, 느끼다, 이해하다, 배우다, 즐기다’ 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을 어떤 자세로 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해 주신 까닭은 하나님의 그림자인 자연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우주 만물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정작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만물은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것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인하는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기자와 같이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감지하고, 지극히 아름다우신 주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 어린아이들의 찬양
오늘 성경 본문을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번역된 성경으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 8:2) “어린아이도 젖먹이까지도 주님의 권능을 찬송하오니 주님의 원수들 기가 꺾이고 주님을 짓누르려는 것들 쓸려 사라지라고 그렇게 하심을 압니다.”

시편 기자는 우주 만물만이 하나님의 지극히 아름다운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젖먹이까지도 주님의 권능을 찬송함으로 주의 원수들의 기를 꺾어 잠잠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1) 어린아이들을 낳아 키워 본 엄마는 어린 아기가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할 때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느껴질 때 그 아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그 어린아이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2) 예수께서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어린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단의 앞잡이였던 헤롯왕이 아기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다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소리치며 환호할 때 어린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 사건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 노래하면서 어린아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 사건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하실 때 오늘 성경 본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시편 기자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너희들은 내 나라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위대한 자가 되고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구나. 그러나 내 나라는 젖먹이들의 나라이며, 겸손한 자, 자신들이 보기에도 작은 자, 다른 사람들이 멸시해도 작은 그대로 만족하는 자, 세상에서 위대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 자들의 나라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우리의 찬양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장엄하신 영광을 노래하면서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인간을 내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감사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기서 ‘생각하시며’ 라는 말(rk'z:(2142, 자카르))은 ‘기억하다’는 뜻의 미완료로 동사이고, 또 이어서 ’돌보시나이까‘라는 말(dq'P;(6485, 파카드))은 ’계수하다, 돌보다, 시찰하다, 방문하다‘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노아 홍수 심판 때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을 기억하시고 물을 감하신 사건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창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느 정도 돌보셨는지 성경 전체를 돌아보게 되면 인간을 향해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존재는 유일하게 인간 뿐 입니다.
그와 같은 인간은 본래 에덴동산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그 사람 앞에 나와서 이름을 부여 받을 정도였습니다.

(시 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시 8: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시 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다스리게’라는 말(lv'm;(4910, 마샬) )은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통치하다’라는 의미의 미완료 동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 가운데서도 왜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시고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을까요? 그것은 세상에 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통해 영강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도리어 만물의 찌끼와 같이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전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을 위해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이유도, 끊임없이 배은망덕하여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을 징계하실지언정 아주 버리시지 않으신 까닭은 그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탄생하는 길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을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지으실 때는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였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일에는 동기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도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것도 그 동기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극히 아름다운 하나님을 이름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엡 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지극히 아름다운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존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 화
유대인들의 한 전설이다. 그 전설에 따르면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고 있을 때 한 석공이 채석장에서 운반된 돌과는 크기와 형태 면에서 다른 돌을 가져왔다. 이를 본 건축자들은 '이 돌은 사용 가치가 없네'라고 말하며, 성전 밑에 있는 기도론 골짜기의 절벽 밑으로 굴려 버렸다. 7년이 지나 성전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이 주춧돌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그들은 하찮게 여겨 내가 버린 돌이 생각났다. 그들이 골짜기 밑으로 내려가 그 돌을 찾아다가 성전 중앙에 놓자 비로소 성전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시편 8편 말씀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간청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 도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는 모든 이에게 은혜가 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 중에 어떤 기도를 더 많이 했는가? 하는 것을 돌이켜 볼 때 이제부터는 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는 물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입는 옷이나 먹는 음식이나 타고 다니는 차종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구와 더불어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좌우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듯이 이제 우리도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 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인간의 본래 위치는 무가치함과 무력함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존귀한 존재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듯 비천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전혀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각자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일,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건강과 물질과 기회를 드리는 삶을 살 때 우리는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지금까지 우리의 연약함과 무가치함과 죄악 됨은 존귀하신 우리가 높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하고, 위대하게 되어지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 44: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