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억울할 때 드리는 기도 /(시 7:1-5)

미션(cmc) 2013. 8. 22. 08:52

억울할 때 드리는 기도
(시 7:1-5)

(시 7:1)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시 7: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시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시 7: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시 7: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런 일이 없고 만사가 형통하게 술술 잘 풀려 나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정직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기와 모함을 당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나 나에게 신세를 진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마음씨 착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일지라도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모함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때 그것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힘으로 그 억울함을 풀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라도 그 억울함을 풀려고 도움을 요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그러한 억울함을 풀게 하기 위해 신문고라는 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요즘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나 아니면 ‘대한법률종합상담센터’와 같은 기관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것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시편 기자의 현실
오늘 성경의 주인공 시편 기자가 바로 그와 같은 억울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하소연 하고 있음을 오늘 성경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 7:1)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여기서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이라는 말(#d'r;)은 본래 메추라기를 사냥할 때 사용하는 말로 전쟁을 하거나 복수를 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추적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시편 기자의 목숨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시편 기자가 지금까지 힘들여 쌓아온 명성과 사회적인 지위를 땅에 떨어뜨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편 기자를 괴롭히고 박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따라다녀도 고통스러울 터인데 시편 기자에게는 ‘모든 자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떼거지로 추격해 오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무리들은 너무나 무자비하여 마치 사자가 어린양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살점을 찢듯이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하기 전에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 7: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시편 기자가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하지도 않은 말을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로 사람을 모함하는 억울한 소리였습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가

(시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시 7: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여기서 '화친한 자'란 언약을 맺은 자, 협약을 맺은 자를 뜻하는 말로 시편 기자가 언약을 맺은 자의 재산을 탈취하였다고 원수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한 시편 기자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본래 목동이었으나 사무엘 선지자에게 새로운 왕이 될 것을 보증하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거인 골리앗의 위협에 두려워 떨 때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 나가서 물맷돌로 단 번에 골리앗을 쓰러뜨려 목을 벨 정도로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로 다윗은 (삼상 18: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고 소리 높여 노래할 정도로 인기가 백성들에게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그 때부터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위태롭게 할 자로 낙인을 찍고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모함을 하고 나중에는 많은 군대를 풀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윗은 의로운 자로서 대적들에게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1)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만한 무슨 잘못을 범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을 죽이고 대신 왕이 되려 한다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2) 다윗은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행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사울의 모함처럼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울의 왕권을 폐하고 왕이 되려는 의도는 전무한 일이었습니다.
3) 물론 다윗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사울을 대신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왕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그같은 모함을 당하게 된 것은 다윗의 인기가 백성들에게 너무 높아지자 이를 시기하는 대적들이 다윗을 모함하는 소리였습니다.

세상에서 다윗만 그렇게 시기와 모함을 당하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믿음으로 정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그 때문에 때로 시편 기자처럼 모함을 당하는 세상이 아닙니까?
물론 시편 기자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일지라도 오늘 성경의 시편 기자와 같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하지도 않은 일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모함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당하게 될 시기와 모함을 대비하여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 시편 기자의 믿음
아무리 착한 사람도 억울한 소리를 듣게 되면 대부분 나도 상대방에게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이 불타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공의롭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시 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하기 위해 만일 원수의 모함이 사실이라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벌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면서 무죄함을 변명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양심이 불량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람 앞에서는 계속 변명하고 부인하고 침묵하고 부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정직하지 않고서는 눈이 불꽃 같으신 하나님 앞에서 시편 기자처럼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 다윗은 원수들에게 온갖 모함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끝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7: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시 7: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1) 만약에 내가 이러한 일을 행하였다면
여기 ‘이런 일’이란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고 의심하였듯이 남을 속이려 했거나, 다른 사람의 지위를 빼앗았거나, 음모를 꾸몄거나, 선을 악으로 갚았거나, 인기에 영합하여 교만을 부렸거나, 맡겨준 일에 불충한 것이 있었다면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2) 만약에 내 손에 죄악이 있다면,
여기 ‘죄악’이란 남을 해치는 사악한 짓, 나쁜 악행으로 만일 시편 기자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악행을 저질렀다면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3) 만약에 내 친한 친구에게 악으로 갚았다면,
친구가 시편 기자에게 선을 베풀고 사랑과 은혜를 주었었는데, 오히려 시편 기자가 친구를 배반하고 배은망덕하였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4) 만약에 내 대적에게 까닭 없이 빼앗았다면,
시편 기자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 대적들을 아무런 까닭 없이 그들의 것을 노략질하고 빼앗았다면 자신이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편 기자 다윗이 지금까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앞에서 ”(9절) 양심의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를 보면 시편 기자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비난과 헐뜯음을 받을 정도로 실수나 잘못이 없으며, 어느 누구를 배반하지도 않았고, 까닭 없이 약탈한 적이 없음에도도 불구하고 모함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이 그러한 죄를 범했다면 원수의 손에 짓밟히고 영광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시 7: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간다면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시편 기자처럼 당당할 수 있습니다.

(잠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오늘 우리가 정말 거룩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시편 기자처럼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억울한 소리를 들을지라도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무죄함을 입증할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고 불공정한 인간과 공평하게 심판하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7: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왜냐하면 심판주되신 하나님은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 없이 인간의 마음과 양심까지 감찰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여기서 ‘감찰하시나이다’라는 말(@j"B;(974, 바한) )은 ‘검사하다, 시험하다, 입증하다’는 뜻으로 오해나 실수가 없으신 분임을 뜻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울이 지금 삼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방으로 포위해 오고 있는 반면 자신의 군대는 수백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피할 곳이 없으니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비록 자신의 군대가 대적들보다 열세이고 무장이 변변치 못하기 때문에 더욱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방어 무기인 방패와 공격 무기인 칼로 삼았습니다.

(시 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시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물론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했다고 해서 지금 당장 모든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위험한 상태 입니다.
그러나 당장 진통제나 마취제처럼 믿음과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에 분명히 믿음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3. 시편 기자의 승리
사람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생각을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현상적으로 보고, 하나님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비록 현재 악인에 대해 심판하시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분명히 악한 자들의 행위를 보시고 다 아시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심판을 미루시지만,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시며, 칼을 가시며, 불화살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1)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악을 보시면 매일 죄에 대해여 악인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시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2)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자를 위하여 지금 칼을 갈고, 또한 활시위를 당겨 놓고 계시기 때문에 악인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시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 7: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악인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보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한 자들은 하나님이 악을 보시고도 분노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집행을 유예하시는 것은 악인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마지막의 자비인 것입니다.

3) 악인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악한 생각을 품고 그것을 키워서 의인을 모함하고 괴롭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더 큰 죄악을 생산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 무덤을 파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입니다.

(시 7: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시 7: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원을 열망하고, 악인의 심판을 탄원하였을 때 당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편 기자의 믿음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고 결국 승리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그것은 오늘 시편의 배경이 되는 사건으로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사울 왕이 다윗이 엔게디 산속에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특공대원 삼천 명을 뽑아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 나섰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양우리가 많은 곳에 있는 동굴 속으로 숨었는데 사울이 마침 그곳으로 지나가다가 공교롭게 볼일 보기 위해 혼자서 그 굴속으로 들어가 뒤를 보게 되었습니다.
동굴 속 깊이 숨어 있던 다윗과 몇 안되는 부하들은 이제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사울을 당장 쳐 죽이도록 다윗의 허락이 허락해 주기를 요청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거절하고 살금살금 사울의 뒤로 가서 사울의 겉옷 자락만 살짝 베어왔습니다.
만일 그 자리에서 사울을 죽였다면 다윗은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되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사울 왕의 옷자락만 베었을까요?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그것은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이기 때문에 사울의 생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사울 왕의 옷자락만 벤 것도 마음에 찔렸으며 부하들에게 사울 왕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시편 기자 다윗은 자신의 억울함을 사울 왕에게 알리고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아니한 것을 호소하였을 때 그동안 마음이 돌같이 굳어져 있던 사울 왕도 감격하여 여러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소리 높여 울면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다윗이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고 다윗의 승리를 선언하였습니다.

(삼상 24:19) “너는 내게 언제나 좋은 일을 하였고, 특히 오늘은 그것을 내게 직접 보여주었다.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 주셨으나 네가 나를 살려 주었기 때문이다.”(삼상 24:20) “도대체 어느 누가 자기 원수를 손아귀에 넣고서 다시 살려 보내겠느냐? 세상에 그러한 일을 어느 곳에서 다시 볼 수 있겠느냐? 그런데도 너는 오늘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그 상을 여호와께서 네게 내려 주실 것이다.” (삼상 24:21) “나는 이제야 네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 너는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를 하여라. 네가 왕이 되면 나의 후손들을 죽이지 않겠거니와 이스라엘 역사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리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여라!'”

이는 다윗이 부하들의 말대로 사울의 목을 베었다면 이룰 수 없는 완벽한 믿음의 승리입니다.
하만 장군이 모르드개를 해치기 위해 파 놓은 함정에 자신이 빠졌듯이(에7:10), 다니엘을 해치려고 파 놓은 사자굴 속에 자신들이 던짐을 받았던 페르시아의 고관들처럼(단7:24) 인생의 역전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7편은 시편기자가 매우 절박함으로 시작되었던 1 절에서 다윗의 부르짖는 탄식의 기도가 마지막 절에 와서는 감사와 찬송을 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시편 기자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신하고 기도를 드렸을 때 결국 승리를 경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 7: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여기서 ‘감사함이여’ 라는 말(hd:y 야다) )은 ‘고백하다, 쏘아 올리다, 찬양하다’는 뜻이고, 이어서 ‘찬양하리로다’라는 말(rm'z: 자마르)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사는 날 동안 그들의 목소리와 악기를 높여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뜻의 미완료형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인간에게는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면서 오히려 더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동기나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착각하게 하고 남을 억울하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무엇보다 남을 억울하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윗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전보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신앙이 좋은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정의를 ‘감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내 양심이 살아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당당할 수 있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거룩하고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시편 기자처럼 사람들에게 모함을 당하고 억울한 소리를 들을지라도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의로움을 입증할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의 성도가 악한 대적자들의 핍박을 받을 때 육신의 힘이나 칼이나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만일 육신의 힘이나 칼이나 세상을 의지하는 자는 그것들로 인해 수치를 당할 것이지만, 시편 기자처럼 억울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시는 방패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시편 기자처럼 이 세상에서는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고 정죄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면 선과 악이 확실히 구분되어질 것을 믿고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로운 심판의 날을 소망하며 항상 공의를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마침내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