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드리는 기도
(시 5:1-3)
(시 5: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을 과신하며 자만하고 교만했던 사람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1) 치명적인 신종 감기 바이러스의 등장에 세계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신종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WHO에 따르면 지난 2012년 9월 이후 확진판정을 받은 94명 가운데 사망자는 46명이고 치사율이 무려 6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종으로 아직 백신도 치료약도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아무리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한다고 할지라도 그 바이러스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죄악이라는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문화를 막론하고 소유나 지식의 많고 적음,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뭍 영혼들이 다 감염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교육, 과학, 정치, 법, 문화,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죄악이 홍수처럼 온 세상에 흘러넘치며 예전에 비해 더욱 더 지능화되고 흉포해지는 것을 볼 때 인간이 얼마나 무능력한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
악과 타협하거나 방관해서도 안 된다면, 그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다윗 시대의 죄악상
오늘 성경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약 일천년 전 시대에 살던 다윗의 기도문으로 당시 시대가 얼마나 악했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시 5: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시 5: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여기서 일곱 가지 죄악이 명시되어 있는데 각각 그 의미가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1) 4절 ‘죄악’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일종의 생활을 나타내는 말로 ’불의(전 3:16), 폭력(사 58:4), 부정직(미 6:10-11)‘과 같은 죄악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악’이라는 말은 '나쁜, 해로운, 악한'이라는 의미로 잘못되어 고통으로 가득차게 하거나 불쾌감(삼상 29:7)과 마음의 슬픔(느 2:1-2, 잠 25:20)을 가져다주는 것을 뜻합니다.
2) 5절 ‘오만한 자들’이라는 말 ‘밝게 비추다, 자랑하다, 찬양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자기가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는 자들을 뜻합니다.
또한 ‘행악’ 이라는 말은 하나는 사악한데로 나아가는 고생을 강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상 숭배로 나아가는 헛됨을 강조하는 것으로 우상 숭배로 말미암은 ‘헛됨, 거짓, 사악, 공허, 우상, 속임, 사악, 부정, 고통, 불행, 역행'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3) 6절 ‘거짓’ 이라는 말은 '거짓말, 허위, 사기'를 의미하며 거짓말은 사람을 기만하며 사람을 타락하도록 할 뿐이며(잠 23:3), 거짓말을 할수록 더욱 무익하게 됩니다.
그 다음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라는 말은 성경에서 피는 생명이며, 또한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피 흘리는 자를 하나님이 보복하십니다.
또한 ‘속이는 자’라는 말은 ‘기만하다, 속이다, 배반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사람을 속이는 말에 사용되었습니다(창 34:13, 시 10:7, 시 17:1, 시 24:4 등).
그렇다면 다윗 시대에 만연했던 그와 같은 죄악은 다윗 이전에는 없었나요? 결코 아닙니다. 다윗 이전 인류의 초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심판을 내리신 이유, 바벨탑을 무너뜨리신 이유, 소돔과 고모라성을 불 심판을 하신 이유가 다 그와 같은 죄악이 만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후에는 그와 같은 죄악이 없어졌나요? 결코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한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이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렘 36:31)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2.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지만 죄악을 미워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죄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셨습니다.
다윗도 인간인지라도 한 때는 죄악에 빠진 적이 있지만 그것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평생 후회한 것은 그 때문에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몇 가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고 또한 죄악과 함께 거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시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여기서 ‘머물지’라는 말은 ‘머무르다, 체류하다, 거주하다’라는 말의 미완료 형으로 하나님은 죄악과 잠시라도 함께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서 인간은 어떻습니까? 생각이나 언어나 행동에 잠시라도 죄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2)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오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 5: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여기서 ‘서지 못한다’는 말은 ‘출두하다’는 뜻의 미완료로 오만한 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는 물론 남을 속이는 자도 싫어하시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자를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시 5: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여기서 '멸망시킨다‘라는 말은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소멸시킨다‘는 뜻의 미완료형으로 거짓말 하는 자를 끝까지 사라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죄는 크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거짓말은 누구나 하기 때문에 큰 죄로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은 살인과 거짓말을 똑같이 싫어하시고 가증이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예사로 여기는 인간은 입만 열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고 그들의 생각은 멸망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그들의 혀는 거짓말만 한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시 5: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여기서 ‘입, 목구멍, 혀’는 모두 거짓말하는 주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거짓을 얼마나 철저히 미워하시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거짓 증거를 살인이나 도적이나 간음과 동일하게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시편 기자의 믿음
물론 시편 기자도 연약한 인간이요, 또한 죄악의 지뢰밭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 한 때는 깊은 죄악에 빠져 허우적댄 적도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 기도하는 믿음
시편 기자는 온갖 거짓과 술수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원수들에게 에워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입으로 부르짖는 기도만 하지 않고 그의 마음을 열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시 5: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여기서 ‘심정’이라는 말은 ‘묵상하는 것, 탄식하는 것, 중얼 거리는 것, 속삭이는 것, 심사숙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입술로 말하는 유창한 기도가 아니라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묵상하고 탄식하는 안타까움을 하나님께서 이해하시고, 분별하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기도의 대상이 어떤 분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편 기자는 평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결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아침에 기도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시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기서 ‘아침’이라는 말은 해뜨기 직전의 새벽 미명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또한 ‘들으시리니’라는 말은 ‘귀 기울여 경청한다’는 뜻의 미완료 동사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새벽에 드리는 기도만 기뻐하신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을 언급하는 이유는 새벽이 하루의 첫 시작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께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2) 예배하는 믿음
시편기자는 악한 자들에게 쫓겨서 성전에서 멀리 떠나 있지만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다시 성전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 때가 다시 오게 되면 더욱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성전을 향해 경배드릴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시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여기서 "주를 경외함으로 경배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경외와 사랑의 자세를 가지고 예배드린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기자와 같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마음으로 주의 성전을 향해 기도하고 예배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스,q니까?
그것은 갈수록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도 시편 기자처럼 고통과 위협과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 때 원수를 대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기도와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시 5: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시편 기자도 한 때 큰 시험과 유혹과 죄에 빠질 정도로 세상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죄악을 이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마치 항해하는 배가 폭풍우가 몰아쳐 올 때 신속하게 튼튼한 방파제가 둘러 쳐 있는 안전한 포구로 피하는 것처럼 죄악의 폭풍우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도 주의 성전인 교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이른 아침에 기도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피난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겨우 우리를 피하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다 기뻐하게 하시고, 보호해 주시고, 영원히 외치게 하시고, 즐거워하게 하는 복을 주신다고 오늘 성경에 약속하고 있습니다.
(시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기서 ‘다 기뻐하며, 영원히 기뻐 외치고, 즐거워 하리이다’ 라는 단어가 모두 미완료형으로 메마르지 않는 기쁨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당시 죄악상을 보고 가슴 아파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매일 기도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따라서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으로부터 삼천년 전 시편기자가 탄식하던 죄악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물리치고 이기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5:5) 어리석은 사람들,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 (시 5:6) 거짓말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고 속이는 사람들, (시 5:9)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도 믿을 수 없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며 혀는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예고한 것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시편 기자가 살던 때와 방불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누가 더 정의롭고, 누가 더 불의한가 하는 것이 잘 구별할 수 없는 세대입니다.
거짓과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이지만 다 자기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증거가 없으면 무혐의로 풀려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사소한 일에도 폭력과 살인과 공갈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다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과연 어느 누가 사실대로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게임을 하는데 엄청난 인력과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법들이 만들어지는 국회안에도, 법으로 죄인을 다스리는 법원과 경찰, 심지어 정의와 자비를 가르치는 종교, 십자가 높이 세운 교회와 성직자들까지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러한 세상에서 교인들조차 교회 중심, 말씀 중심, 예배 중심, 기도 중심의 신앙을 마치 잘못 믿는 맹신이나 미신처럼 취급하는 잘못된 풍조가 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일은 기복주의 신앙이다”
점점 살기가 편해질수록 그렇게 믿음이 좋았던 교인들조차 예배와 기도와 성경읽기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가정이나 직장이나 건강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 기자처럼 갈수록 악해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는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영적 무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들에 무관심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군인이 총을 내려 놓고 총은 있으나 실탄이 없는 것과 같이 영적 무장해제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을 무기력하게 하고 마귀의 밥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른 새벽에 기도를 드려야만 응답을 받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성 프랜시스는 평소에 방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이 옆에 계시는 듯 대화하듯 기도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형편을 따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도를 하든지 아침에 드리는 기도처럼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드릴 때
1)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을 수 있으며,
2) 마음의 청결과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3) 모든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으며,
4) 죄악 가운데서 보호를 받으며,
5) 시들지 않는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시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갈수록 점점 더 악해지는 세상에서 내 힘으로는 믿음을 지킬 수 없고 나도 죄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이 내 마음과 내 건강과 내 믿음을 지켜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고 오늘 시편 기자처럼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삶을 사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크고 놀랍습니다.
(시 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여기서 ‘복을 주시고’ 라는 말이 미완료이고, 방패는 골리앗이 무장했던 것과 같은 큰 방패이고, ‘호위한다’는 말은 ‘에워싸다, 관을 씌우다’라는 뜻의 미완료형으로 어제도 오늘도 물론 내일도 계속되는 보호를 뜻합니다.
이 방패로만이 인류 최대의 난적인 죄악의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혼토록 아침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성도에게 그와 같은 방패로 동서남북 사방만이 아니라 오방, 팔방을 에워싸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설 교 > 이규왕목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억울할 때 드리는 기도 /(시 7:1-5) (0) | 2013.08.22 |
---|---|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시 6:1-5) (0) | 2013.08.13 |
오직 하나님만!/(시 4:1-8) (0) | 2013.08.01 |
나의 하나님이여!/(시 3:1-8) (0) | 2013.08.01 |
하나님의 웃으심/(시 2:1-6) (0) | 2013.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