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부르신 이에게 주신 약속
(행 2:38-41)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평소 우리가 1)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과, 2)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과, 3)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나쁜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 일은 믿으면 좋고 안 믿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누구나 반드시 믿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례를 받는 일은 어떨까요?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태여 형식적인 세례를 꼭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일까요?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세례와 구원과 직결시켜 말씀하였습니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가? 를 재확인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헛되지 않도록 세례 받은 자답게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1. 세례의 기원(基源).
아담의 자손인 인류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노아 홍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벨탑 사건을 겪으면서 지구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단 한 사람도 남김이 없이 다 타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통해 인류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언약 곧 약속입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 때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효하였으며, 그 언약의 표로 반드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창 17: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창 17: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그 언약대로 이 세상에 오셨으나 아브라함의 자손만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오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구별하는 새로운 믿음의 표시가 필요하였이전의 할례는 육체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표를 하였지만 새로운 할례는 마음에 더러운 죄를 씻는 회개를 상징하는 물로 베풀게 하였습니다.
(롬 2:28, 개정)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와 같은 물세례를 제일 먼저 베푼 사람이 바로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세상에 태어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자기 뒤에 메시아가 오시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을 외쳤습니다(마 3:11).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친히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을 직접 찾아가셔서 세례를 받으시고자 하자 세례 요한은 깜짝 놀랐습니다.
(마 3: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그 모든 절차를 따르시기 위해 겸손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고, 예수님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비로소 예수님이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혀진 후 세례 요한은 마치 무대에서 주인공을 소개하고 뒤로 사라지듯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2. 세례의 의미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때문에 인간은 결국 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와 같은 죄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가 없는 사람이 인간의 죄 값을 대신하여 죽어야만 인간의 죄가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제사 제도입니다. 그래서 죄는 인간이 지었지만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을 제단에 바쳐 불사름으로 속죄를 받게 하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레 4:20) “그 송아지를 속죄제의 수송아지에게 한 것 같이 할지며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여기서 ‘사함’이라는 말(jl's;(5545, 살라흐) )은 '용서하다, 사면하다‘ 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완료형으로 그렇게 속죄제를 드리면 계속 죄를 용서받는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라고 한 까닭은 예수님이 바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임을 뜻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셨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 53: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왕이시며 백성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믿으면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나의 죄가 씻겨지는 것이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나는 죽음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만일 그와 같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헛된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믿는 사람일까요? 행실이 선한 사람일까요? 행실이 선한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일까요? 아무리 행실이 선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도 선하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마치 광부가 석탄을 캐고 나왔을 때 어떤 광부는 새까맣고 어떤 광부는 좀 덜 한 것처럼 인간의 죄의 경중은 도토리 키 재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광산에서 나온 모든 광부는 입었던 옷을 세탁기에 집어던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물로 씻어야만 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세례는 바로 그와 같은 축복을 받습니다.
(롬 6:4)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만 구원의 확신과 감격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가 그와 같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 중에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여기서 ‘세례를 베풀고’ 라는 말(baptivzw(907, 밥티조) )은 동분사 현재 능동형으로 계속해서 세례를 주라는 말씀입니다.
3. 세례와 성령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에게 그와 같은 명령을 받은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불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불붙는 뜨거운 심정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일에 앞장을 섰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서 담대히 설교를 하였습니다.
(행 2:36)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그와 같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서 사도들에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바로 오늘 성경 본문과 같은 설교를 하였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을 분석하면 세 가지 단계를 가르칩니다. 첫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세례 받기 전에 필수단계입니다.
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구나 나는 어찌하면 좋을까? 라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믿는 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 사람의 죄를 예수님이 사죄하여 주셨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세 번째 단계로 그렇게 죄 사함을 뜻하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세 번째 단계로 그렇게 죄 사함을 뜻하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1)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선물을 유대인들에게만 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로마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에 가서 복음만을 전하였을 때 고넬료와 함께 모인 친지들이 성령을 받고 세례 받기를 요청하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 성령을 이방인에게도 주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행 11: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오늘 교회 안에는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동시적으로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성령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세례까지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에베소 교회에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라는 사람이 와서 사람들에게 열심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만 알았지 성령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가 고린도로 가고 사도 바울이 두루두루 거쳐서 에베소 교회에 와서 누구보다 잘 믿는다는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질문을 하였을 때 에베소 교회의 제자들이 하나 같이 답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행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이 물세례만을 알고 있는 에베소 교회의 제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안수 하였을 때,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그 증거로 사람들이 방언과 예언을 하였는데 열 두 사람 쯤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제자들은 삼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서도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비겁하게까지 보였던 베드로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난 다음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숫자가 무려 삼천 명도 더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는 베드로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성경에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중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행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설령 세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을 만족해서는 안 되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1) 아직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처럼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고서는 그 무엇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교회가 만든 제도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이미 세례를 받았습니까?
참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례를 받았지만 에베소 교회 성도들처럼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했습니까?
주님이 부르시는 모든 이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3) 성령도 선물로 받았습니까?
내가 이미 세례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하기를 원한다면 오늘 성경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처럼 살아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행 2: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 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모여 기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행 2:47)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자답게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가) 적극적으로는
(갈 5:22)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갈 5: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나) 소극적으로는
(갈 5:24)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비록 어려울 수 있어도 주님이 부르신 모든 이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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