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하나님의 은혜 /(왕상 8:64-66)

미션(cmc) 2013. 10. 31. 12:05

하나님의 은혜
(왕상 8:64-66)

(왕상 8: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왕상 8: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왕상 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두 66권을 한권으로 모아놓은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기록된 년대는 제일 늦게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2천여 년 전이고, 제일 오랜 모세오경은 3천 5백여 년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최고의 진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급속히 변하는 첨단 과학만을 절대 진리로 믿는 현대인들이 볼 때 교회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성경을 믿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성경은 이 시대가 자랑하는 과학과 상충되는 것이며 마치 골동품처럼 구시대의 유물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구시대의 유물 중에도 현대 과학으로 재연하지 못하고 그 비밀을 캐내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유물들이 세계 도처 깔려 있습니다.
그처럼 성경은 구시대의 유물이고 첨단 과학만이 절대 진리로 믿는 현대인들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컴퓨터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와 같은 컴퓨터는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의 뇌세포를 모방한 것이고, 현대인들의 애호품인 디지털 카메라는 인간의 눈을 모방한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밝히고 그것을 모방할 뿐이지 하나님처럼 창조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신비와 창조주의 능력을 인정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겸손히 기도하는 독실한 신학자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고 듣고 믿는 성경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시대에 뒤떨어진 진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포함하고 또한 초월하는 영원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오늘의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으며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바람직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오늘 성경 말씀에서 찾고자 합니다.

1. 솔로몬의 성전 봉헌과 기도
오늘 성경의 주인공 솔로몬 왕은 성경은 물론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많이 누렸던 사람입니다.
지난 2010. 11.3 일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The World’s Billionaires(세계의 억만장자)'의 명단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는 흔히 생각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회장 빌게이츠가 아니고 빌게이츠보다 5억 달러 더 많은 72조원을 가진 멕시코 통신의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이고, 3위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워렌 버핏(Warren Buffett)으로 47억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요?
솔로몬이 그처럼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된 것은 그가 땀흘려 수고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부왕 다윗이 솔로몬에게 금 10만 달란트(66조 8천만원), 은 100만 달란트(14조 7,200억원), 기타 놋, 철 등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물을 물려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일년 국고 세입금이 666 달란트였고, 그 외에도 주변 여러 제국으로부터 많은 조공을 받았기 때문이습니다.
(왕상 10:14)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왕상 10:15) “그 외에 또 상인들과 무역하는 객상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나라의 고관들에게서도 가져온지라”
솔로몬이 그처럼 부귀권세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은 사실 그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부귀권세가 아니라 지혜를 구하였을 때 그것을 어여삐 여기시고 구한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아니한 부귀권세까지 전무후무하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왕상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솔로몬은 그와 같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되었을 때 자기를 위하여 화려한 왕궁만 건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최고로 아름답게 건축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봉헌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림으로 성전은 단순히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운 집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성전에 나와 기도하면 건져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왕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서,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펴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린 다음, 주님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왕상 8:61) “나는 여러분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바쳐서 오늘날처럼 언제나 그의 모든 법과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서 솔로몬 왕과 그 곳에 모인 모든 백성들은 제사를 드려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였는데 솔로몬 왕은 화목제로 소 22,000마리와 양 120,000마리를 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와 같은 성전 봉헌식운 7일 동안의 초막절을 포함하여 모두 14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북으로 하맛 고개에서부터 남으로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후 솔로몬 왕이 백성들을 돌려보내자 그들은 왕에게 복을 빌고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왕상 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이와 같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의 기도와 백성들에게 축복을 선포한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요?

2. 주님이 세우신 지상 교회
제가 수년전에 경주 어느 교회의 초청을 받아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는데 경주는 땅속에 문화재가 많이 내장되어 있어서 집을 짓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다가 무슨 유물이 나오면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신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경주는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신라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마치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진 문화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단을 제외한 정통 교회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갑자기 솟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제단- 출애굽 광야시대의 성막- 오늘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성전은 이전의 아브라함의 제단- 광야의 성막에서부터 비롯되어 이후로는 바벨론 포로귀환 재건 성전-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중세 로마 교회- 종교개혁 교회- 근대 서구 교회-선교를 통해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워진 역사적 전통과 맥을 이어 온 것입니다.
물론 각 시대의 문화에 따라 성전과 교회의 건축 양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였지만 그 교회 내면에 교회의 본질은 유유히 이어져 왔기 때문에 성경적인 바른 교회는 그와 같은 교회의 역사성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3 천여 년 전에 솔로몬이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린 것으로 오늘 이 시대의 교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가 솔로몬의 성전처럼 화려하게 건축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솔로몬이 마음을 다하여 아름답게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한 그 정신을 이 시대의 교회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할 때 여러 날 동안 하나님께 각종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왕상 8: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 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그것은 아브라함의 선택과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과 이스라엘의 건국과 성전의 건축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제사였습니다.
1) 하나님께 온 몸을 다해 헌신하는 번제
2)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소제
3) 하나님과 죄로 인한 적대 관계를 화해하는 화목제

구약 시대에 드린 번거로운 제사를 오늘 우리들이 드려야 한다면 사실 매년마다 성지순례를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성전과 제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네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라고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세계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져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신문지로 본을 떠서 한복을 만든 후에는 그 본이 필요가 없어지는 것처럼 이 지상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는 더 이상 성전의 존재의미를 상실하였습니다.
물론 오늘의 교회의 기초와 그 원리는 구약의 성전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랜 역사적인 전통 위에 세워진 오늘의 교회는 솔로몬 시대와 같은 성전의 구조도 아니고 솔로몬 시대와 같은 형식의 제사도 드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때때로 구약의 모세 오경을 통해서 성막을 배우고 오늘 성경을 통해서 솔로몬의 제사를 배우는 의의가 무엇일까요?

3. 이 시대의 교회와 예배
오늘 우리는 솔로몬 시대처럼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성막이나 성전이나 제사 제도는 모두가 다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그림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니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가 예표하였던 실물이 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하나님의 신성이 함께하시는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새 언약이 되실 것과 더불어 이 지상에 성령을 보내어 몸된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교회요, 이단을 제외한 이 지구상의 모든 교회는 어느 교파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번식된 지교회입니다.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방방곡곡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사를 드렸을 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기도를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성전이 기능이 제사에서 예배로 바뀌어져야 할 것을 본보여 주셨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이면 성전에 모여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 말씀과 기도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전통을 따라 지구상의 모든 교회는 구약 시대와 같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 건물 양식부터 예배의 순서와 절차가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과 존재하는 이유와 사명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운 것과 크게 달라진 것과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제물을 몽땅 불살라 드리는 번제의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교회에 모여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마치 번제를 드리는 것처럼 영광을 돌려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여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속제물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성실하게 드린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축도를 받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조상 대대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왕상 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오늘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축도를 받고 예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피값을 지불하심으로 내가 속죄함을 받아 구원받은 것을 번제처럼 매일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와 가정과 나라와 민족과 교회에 베풀어 주신 여러 가지 은혜를 꼼꼼히 짚어가며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마음 깊이 감사하며, 또한 변함없이 때를 따라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실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매일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그것이 진정한 전도자의 모습이고 설령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라고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그처럼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들을 볼 때 비로소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고 전도자의 전도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치유와 회복과 변화를 경험하자는 주제를 걸고 한 주간 동안 준비하는 특별 새벽기도회와 삼일간의 부흥회를 통해서 각기 나름대로 때를 따라 좋은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1)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오직 아담이 범한 죄를 속죄하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까지 담당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각종 병자를 치료하신 것처럼 어떤 질병과 마음에 걱정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든지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은혜를 받기만 하면, 마치 불로 쓰레기를 태우듯이 내 영혼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쓰레기들을 불살라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2) 결코 병원이나 약국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병이 심해지지 않았는지 정기적인 검진과 의사의 처방을 잘 따라야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미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내적인 치유와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야만 의학적인 치료도 회복이 빠르고 부작용이 없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3) 물론 의학적인 치료를 받지 않고서 오직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로 치유함으로 받는 것도 기적이겠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기적은 온갖 병균과 스트레스로 오염된 환경에서 살면서도 아직까지 병원 약국 신세를 지지 않고서도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4) 지속적인 치유와 회복과 변화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 놓으신 생명력과 면역력을 말씀과 성령으로 강화시켜 주시도록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예배의 생활을 힘쓰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합니다.
5) 물론 육신을 가진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의 날을 피할 수 없지만 그 날이 오기 전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 위에 강하게 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한 평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왕상 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