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넘을 수 있는 신앙
(시 18:21-29)
(시 18: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시 18:22)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시 18:23)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시 18: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시 18: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시 18: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시 18:27)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시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르들이 제 각기 다르지만 역사 대하드라마와 같은 것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이유가 우리의 실제의 삶에 유익한 교훈을 주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은 “사극은 많지만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연한, 이른바 전통 사극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넘쳐나는 사극 속에 "볼만한 사극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역사적인 고증은 쥐꼬리만 한 것이라면 그것을 시청자들의 흥미에 맞추어 현대판으로 꾸며낸 퓨전 사극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하게 역사를 기초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을 분류하는 가운데 흔히 문학서로 구부하고 있는 시편이나 잠언이나 전도서나 아가서와 같은 성경조차도 성경 기자가 꾸며낸 픽션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초한 논픽션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제의 삶에 교훈과 책망과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1.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시편은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영적인 비밀을 계시해 주신 말씀이 아니라, 인간인 시편 기자들이 각가지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 신앙고백을 성령께서 영광스럽게 성경 안에 편입 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성경본문의 시작은 마치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처럼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기서 ‘사랑하나이다’ 라는 말(!j'r; 7355, 라함)은 ‘깊이 사랑하다’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지속되고 있는 사랑을 뜻하는 말로, 시편 기자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현대 젊은이들만 사랑의 고백이나 청혼을 듣기를 고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사랑의 고백을 듣기 원하시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마 26: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소리를 예수님이 원수들에게 끌려가시면서 다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먼저 찾아가셔서 세 번이나 거듭 질문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요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곰곰이 생각하면 거룩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죄송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존재였기 때문에 설령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을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저도 이 사실을 말씀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에 설교 준비를 하다가 기도실에 들어가서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나의 성령님을’ 부르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 후 다시 설교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왜 그와 같은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되었는 오늘 시편 표제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시편 기자는 어느 누구보다 사울 왕에 많이 시달림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니 하나님이 사울 왕을 제거해 주시고 그 자리에 다윗을 세워 높여 주셨을 때 시편기자 다윗이 하나님에게 입을 열어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은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시편 기자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도 시편 기자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기자에게는 독생자를 보내 주신 적이 없지만 우리들을 위해서는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는 지나온 한 평생,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신다고 믿어진다면 우리들도 이 자리에서라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함께 시작!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멘!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까닭
사랑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사랑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사랑이 무엇 무엇 때문에 사랑한다는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은 시간이 가면 그 조건이 변하기 때문에 뜨겁게 사랑하였던 것만큼 배신감이 크게 느껴지게 되는 실망스런 사랑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어떤 조건을 전제로 하였다면 여기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성품이나 지금까지 행실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음을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조건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오늘 시편 기자를 통해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시편 기자가 사울 왕을 피해 유대의 동굴과 험준한 바위산에서 가슴 조리며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안전하게 지켜 주신 것을 여러 번 경험한바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러나 시편 기자의 사랑의 고백을 들어 보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매우 독특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시편 기자의 이 같은 사랑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 것보다 더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심을 더 기뻐했습니다.
2)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신다는 것보다 하나님이 그의 구원이 되신다는 것을 더 기뻐했습니다.
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요새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기 때문에 아무리 원수들이 자기를 제 아무리 겹겹이 에워싼다고 할지라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시 18: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시 18:5)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계실까요?
예 화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26일 오케네가 탑승하고 있던 나이지리아 선박 제이슨4호는 근해상에서 유조선을 예인하던 중 갑자기 선체가 기울어지면서 수심 30m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이 사고로 요리사였던 해리슨 오제그바 오케네(29)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출신 선장과 10명의 나이지리아 선원은 모두 숨졌다.
사고 지점에서 약 120㎞ 떨어진 유전에서 작업하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한 네덜란드 업체 'DCN다이빙' 소속의 한 잠수부는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하던 중 시신 한 구를 발견하고 손을 내밀었는데 갑자기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 깜짝 놀랐다. DCN다이빙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토니 워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잠수부들은 생존자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침몰 당시 화장실에 있었던 오케네는 선실로 대피했고 약간의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에서 콜라 한 병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조 당시 오케네가 있던 공간은 산소가 거의 바닥난 탓에 잠수부들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더라면 오케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팬티 차림으로 바닷속 추위를 견뎌낸 오케네는 "아내가 전에 나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줬던 성경의 시편 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했다"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셨다"고 기쁨을 전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과 요새와 산성이 되셔서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온갖 위험 중에서와 사단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건져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진솔하게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만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시고 또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까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 구원의 반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처럼 반석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그 기초가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것처럼 하나님은 반석처럼 우리를 굳건하게 보호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눅 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2) 보호의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단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요새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여기 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3)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나의 건강, 나의 가정, 우리 교회와 나라를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지켜 주셨기 때문에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전쟁의 위협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
오늘 시편 기자가 감히 하나님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사랑을 고백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를 “반석, 요새,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 18:6)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여기서 ‘부르짖었더니’ 라는 말( [m'v]yI)과 ‘귀에 들렸도다’ 라는 말(a/bT)이 둘다 미완료형으로 부르짖을 때마다 하나님이 들으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을 때 마치 119 소방대원처럼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즉시 출동하는 것처럼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에 대해서 응답하시는 모습들을 실감나게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쉬운 번역입니다.
(시 18:7) “땅이 떨리고 뒤흔들리며, 산들의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노하셨기 때문입니다.”(시 18:8) “코에서는 연기를 뿜어 내시고, 입으로는 타오르는 불길을 토해 내셨습니다. 불타는 숯불이 주님의 입으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시 18:9) “저가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셔서 검은 구름을 발로 밟고 계셨습니다.”(시 18:10) “날개 달린 생물인 그룹을 타고 날아오셨습니다. 바람 날개를 타고 내려오셨습니다.”
(시 18:18) “내가 재난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이 내게 달려들었지만 여호와는 나를 붙잡아 주셨습니다.”(시 18:19) “여호와께서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시편 기자를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고난의 험한 산골짜기를 통과하여 시온의 대로처럼 넒은 길로 인도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18:19)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시 18:20)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내게 갚으셨으니”(시 18:21)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시 18:22) “그의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시 18:23)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
그 좋은 예가 시편 기자가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 그가운데 대 원수인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참고 견디었을 때 이미 왕이 되기로 기름을 받은 사람이지만 비로소 사울을 제치고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악을 범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이요, 가장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부도가 없습니다. 불경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산기는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시 18:2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시 18:25)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시 18:26)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
물론 그렇게 살지라도 때로는 마치 일식을 하는 것처럼 대낮에도 캄캄한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때마다 하나님은 흑암을 밝히는 등불을 밝혀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왕 예수를 믿을 바에야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의 잣대와 저울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여 주시고 정반대로 못된 사람들에게는 못되게 갚아 주시며, 겸손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만, 거만한 눈을 가진 사람들은 초라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나 또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오늘 시편 기자처럼 성숙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시 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여기서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 이라는 말은 막다른 장애물인 벽과 담을 뜻하는 것이고, 뛰어넘는다는 말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미완료 형으로 이전에 부르짖기만 하던 소극적인 모습과는 매우 적극적이고 성숙한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위기에 벗어난 후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그의 고백을 실천에 옮겨 가는 곳마다 담을 뛰어넘어 적군의 방어진지를 깨뜨리고 요새와 성을 점령하고 백전백승 승리하여 과거에는 조공을 바치던 이스라엘 나라를 이후로는 조공을 받는 강국이 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시편 기자 다윗은 비록 용맹스러운 전사였으며 싸움에 있어서 뛰어났지만 아무것도 자신의 것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오늘 성경 말씀은 다윗이 그와 같은 승리를 체험하고 나서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를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이 2013년 12월 둘째 주일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우리 각자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믿음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엄청나게 잘 자라가고 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 중에 생명이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자라지만 생명이 없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화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앙은 생명이 있는 것일까요? 생명이 없는 것일까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믿음은 매우 미약한 상태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성경에 일반서적과 무엇이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성경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면서 우리가 신앙의 걸음마를 하게 됩니다.
1) 신앙이 미성숙할 때는 어린아이와 같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부르짖는 단계입니다.
2) 신앙이 점차 성장을 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을 점차 이해하게 되고 종교적인 형식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인한 고난을 원치 않습니다. 쉬운 것만 좋아합니다. 좋은 것만 하려고 합니다.
3) 신앙이 점점 자라서 성숙하게 되면 믿음의 여정을 가로 막는 담이나 낙망하기 쉬운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의뢰하고 도전을 하게 되고 선한 싸움을 하게 되고 담을 뛰어 넘게 됩니다,
(미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2013 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는 2014년에는 우리의 신앙이 미숙과 성장을 뛰어넘는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준비하는 남은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