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증인/(눅 2:10-14)

미션(cmc) 2013. 12. 30. 09:53

증인
(눅 2:10-14)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선행을 많이 해야만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중에 기본적인 진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죄와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진리는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우리의 믿음이 맹신이 아님은 그와 같은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탄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로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와 같은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 견고하여질 뿐 아니라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증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기서 ‘의심하지 않고’라는 말(diakrivnw 디아크리노)은 ‘의심하다, 흔들리다, 주저하다’라는 뜻이고, ‘견고하여져서’라는 말(ejndunamovw 엔뒤나모오)은 그와 정반대로 ‘강하게 하다, 힘을 얻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불과 삼사일 앞둔 우리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더욱 굳건 믿음으로 무장하여 성탄의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이 동료들에게 널리 증거하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성탄에 대한 약속들
 우리가 평소에 어느 누가 신실한 사람인지를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이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는 여부로 결정합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의 책입니다.  성경을 가리켜 절대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 약속들이 이미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있고, 또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성탄의 약속들입니다.
1)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3장 15절에 모세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남자의 아들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75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라는 예언자를 통해서 이사야 7:14절에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시는 분이라고 하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3) 미가라는 예언자를 통해서는 미가서 5:2에는 베들레헴이라고 하였고,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4)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사 9:6에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평강의 왕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물론 그와 같은 약속들은 인간의 의지나 능력으로 쉽게 이루어질 없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예언을 하던 선지자들이 이미 다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시지 않을지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예언하신 말씀들이 다 이루어지면서 아무리 의심을 하려고 해도 의심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 아기가 하나님이 여러 명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구세주이신지 아닌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과연 그 아기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증인들을 세우시고 또한 그 증인들을 통해서 거짓을 이기는 참 진리를 전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증인으로 사용하셔서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로 이 땅에 오신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삼으셨을까요?

 2. 성령으로 잉태하심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중에 동정녀를 통해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가 과연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 증인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하는 때가 임박했을 때 구약 성경에 예언한 대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야 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만 성경대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네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내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고지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이 요셉과 약혼은 하였지만 아직 결혼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거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눅 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런데 난데없이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는 인사를 받고 화들짝 놀래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가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천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은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너를 덮으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고 하였을 때 마리아도 비로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승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증인은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입니다.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자기와 무관하게 잉태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 파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당시 율법으로는 그러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아시고 주의 사자를 요셉에게 보내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부정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을 때 오해가 풀려서 그 후로부터 요셉은 아기 예수가 잘 태어나실 수 있도록 마리아와 동행을 하면서 신변을 잘 지켜 주었습니다.
 (마 1: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이 파혼을 결심하였다는 것은 마리아의 잉태가 요셉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잉태되었음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증인입니다.

3. 성탄의 증인들
 아기 예수의 성탄이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은밀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놀라운 일은 반드시 온 세상에 알리는 증인이 절대로 필요하였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마리아나 요셉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베들레헴에서 태어 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전해주어야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 사실을 보고 듣고 믿고 그리고 자기가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감없이 그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증인 필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널리 전할 수 있는 증인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놀라운 사실을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유대인들 가운데서 하류 계층에 속하는 목자들을 증인으로 쓰셨음을 오늘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눅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여기서 ‘그 지역’이라는 말(cwvra 5561, 코라)은 예루살렘과 같은 도시와 대조가 되는 ‘시골, 밭, 들, 농장’이라는 뜻으로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동네에 인접해 있는 들판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여러 교회와 성도들이 후원하여 지금 건축 마무리 단계에 있는 베들레헴 선교 센터 건물에서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룻기의 보아스 들판이 바로 오늘 성경에 나오는 그 지역입니다. 
 또한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는 말은 ‘야경을 돌면서 망을 본다는 말(fulakhv 퓔라케)과 ’지키다, 보호하다, 경계하다, 보호하다‘는 말이 합쳐진 말(fulavssw 퓔랏소)로 동분사 현재 능동태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 계속해서 자원해서 그렇게 양떼들을 지키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로 쓰시는 천사를 보내어 그들에게 아기 예수 탄생의 첫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우리 모두 한번 이 말씀을 곰곰이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소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믿어지는 소리일까요?
 과연 그 것이 일평생 아니 자손 대대로 비천하게 살아가야 하는 목자들의 신분 상승이나 재산의 증식이나 만사형통과는 무관한 그 소식이 얼마나 호감이 가는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비록 그들의 외형적인 신분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야경을 하며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일지라도 지난 날 다윗도 자신들과 같은 목자였으며, 시편 23편에 여호와 하나님도 목자라고 하신 것처럼 언젠가 선한 목자되신 구세주가 오시기만을 고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면 그 소식은 천사의 말대로 일생일대 최고의 기쁜 소식이 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이 주의 사자인 천사에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것을 보면 과연 목자들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지금 마을로 가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아기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구세주라는 증거를 뜻하는 암호라는 것입니다.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과연 이것이 어떻게 구세주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메시아 오심이 왕궁의 황태자와 같이 떠들썩하고 화려하게 태어나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태어나 자라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매우 특별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령 그 밤에 베들레헴 동네에서 여러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어떤 아기가 메시아인지를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자들에게는 그와 같은 아기 예수의 탄생은 오히려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앞으로도 일부러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짐승의 우리인 마구간 구유 위에서 태어나는 아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한 아기를 밤중에 찾기 위해서 캄캄한 밤에 이집 저집을  수소문해야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이 밝으면 찾아보는 것이 더 확실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그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 천사들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내일로 미루지 않고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2) 천사들이 아니라 주께서 알려주신 믿기 어려운 소식이 현실로 이루어진 일을 보자고 믿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눅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3) 베들레헴으로 가되 빨리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천사가 전해준 대로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 만나 봄으로 천사의 말처럼 구세주의 탄생을 최초로 목격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눅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여기서 ‘빨리’라는 말(speuvdw, 스퓨도)은 ‘서둘다, 노력하다’ 라는 뜻이고     (ajneurivskw아뉴리스코) )은 ‘수색하다, 찾다’라는 뜻의 단번에 찾은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4)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이 전해 준 소식을 다 전함으로 확신과 위로가 되게 하였습니다.
(눅 2: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눅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5) 무엇보다도 목자들은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 들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자기들에게 그와 같은 축복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다시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눅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자들은 그 후로 일평생 그 놀라운 소식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고 들은 사실 그대로 가감없이 전하는 증인이 되어 마침내 그 사실이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에게까지 전해져서 오늘 성경 말씀이 기록되어지게 하는 증인의 사명을 끝까지 완벽하게 감당하였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번 성탄의 기쁜 소식이 목자들을 통해서 전파되었다면,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하는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성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 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 바로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을 증인으로 삼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아무리 전제 조건이 없는 것이지만 증인은 달리 증인이 되기에 합당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준 목자와 같은 증인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1)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 시대가 혼탁하고 영적으로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된다면 더욱 깨어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2)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깨어있는 목자들에게 미션을 주셨을 때 목자들이 그것을 설령 이해가 안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였을지라도 궁극적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이 아무리 성탄을 최초로 목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거기서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자들은 그 자리를 떠나 다시 들판으로 돌아가서 충실하게 양떼를 돌보면서 풀과 물을 찾아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 평생 주님의 성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일 목자가 그렇게 증인의 사명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오늘 성경에 목자들을 성탄의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목자들처럼 삶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날 구원하시기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정으로 돌아가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고 또 직장으로 돌아가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신실한 삶을 통해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들로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주께 영광돌리는 복된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