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수 24:14-18)

미션(cmc) 2014. 1. 9. 09:25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
(수 24:14-18)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수 24: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세월이 갈수록 전도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조차 믿음이 점점 더 성숙해지기 보다는 믿음을 지켜나가기조차 어려워져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 교회의 부흥을 자랑하고 서구 교회의 침체를 동정하였으나 이제는 한국 교회가 그 전철을 밟아 가고 있습니다.
 만일 지금부터라도 그 대안을 찾지 않으면 한국 교회 그리고 우리의 영적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안이 무엇일까요?
 예  화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건설될 때 가까운 김포 공항에 비해 너무나 멀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인천대교가 완공이 되면서 가까운 김포공항을 가는 것보다 먼 인천공항을 가는 시간이 덜 걸리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인천 송도국제 도시와 영종도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중간을 연결하는 인천 대교의 길이가 18.38 km 로 1993.11월에 착공하여 2000년 11월에 개통한 역사적인 대공사였습니다.
 총공사비가 자그만 치 6777억원, 연인원 220만, 철근 12만톤, 시멘트32만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인력과 재료가 투입이 되어 강풍과 지진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다리가 길고 짧고를 막론하고 어떤 다리이든지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기 위해서 중간 중간에 높은 교각을 세우고 그 교각 사이를 상판으로 이어서 교각과 교각을 튼튼하게 연결하면 배를 타지 않고 그 다리 위로 차가 달리고, 사람이 지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마치 다리와 같다고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영원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의 여정에서 교회에 나와 드리는 예배는 다리 중간 중간에 세워진 교각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각을 이어주는 상판은 무엇과 같을까요?
 그것은 주일과 주일 사이 엿새 동안 가정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신앙을 지켜나가는 믿음이 바로 다리를 잇는 상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전쟁을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전을 주셨을 때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졌을 때입니다.
(수 23: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재판관들과 관리들을 다 모아놓고 지난 날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고, 싸우셨는지를 회고하며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였습니다.

 1. 지난 날을 기억하고 감사하라-과거
 모세가 출애굽을 성공시켰을지라도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하지 못했다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수고는 모세의 수고를 더욱 값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항상 겸손했으며 모세 못지않게 수고와 좋은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수 23:9)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여기서 ‘쫓아내셨다’는 말(vr'y: 야라쉬)은 ‘점유하다, 상속권을 박탈하다’라는 뜻의 와우 게속법 미완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당 천의 승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수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볼 때는 여호수아가 항상 그 모든 전쟁터에서 선두에서서 승리를 하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쫓아내셨고,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이다” 라고 오로지 여호와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치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이 가나안 사람들 천명을 쫓아낸 것처럼 승리를 하게 하셨다고 승리의 원인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수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과 교회와 가정의 지난날을 회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오늘의 대한민국과, 수원제일교회와 우리가 가정과 나의 오늘이 있게 되었을까요? 누가 열심히 잘 하였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였을까요?
 이제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오늘의 평안과 행복이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이고, 복을 주셨기 때문이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주님만 자랑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받은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현재
 우리의 오늘은 지난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임에 틀림이 없지만 문제는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잘 지켜 나갈 것인가? 하는 현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처럼 지난날을 회고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현재 배은망덕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땅히 가나안 땅에서 다 쫓아내야 할 가나안 사람들의 일부가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에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민족들을 가가이 하여 혼인하거나 왕래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을 사랑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수 23: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서 ‘스스로 조심하여’라는 말(rm'v 샤마르)은 살아있는 동안 그것을 ‘지키고 준수하고. 보존하고. 감시하고. 주의하라’는 와우계속법 완료형으로 가나안 문화와 종교를 받아드리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노력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것은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출애굽과, 홍해 통과와, 광야 여정과, 요단강 통과와, 가나안 정복을 성공하게 된 것이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인 금송아지를 사랑하다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광야에서 출애굽 한 60만 명이 여호수아와 갈렙 만을 남겨 놓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평안할 것을 불순종하다가 구태여 불필요한 고난을 자초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십년간 모진 고난과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과 피나는 전투였습니다.
 그렇다면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인 60만명은 얼마나 달랐을까요? 아닙니다. 그들도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경고하신 가나안의 다신론 문화와 종교를 야금야금 맛보면서 점차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잊어버리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사랑하는 대신에 우상 숭배하는 가나안 여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왕래하고, 결혼하게 되면 결국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어 결국은 멸망하게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수 23: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다시 말해서 아무리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을지라도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까지 정복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모두 헛되이 되고 말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 교회와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예언이요, 경고인 것입니다.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3. 오는 미래를 대비하라-미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경고를 한 것은 결코 노파심이나 괜한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모세도 그 같은 우려를 한 적이 있습니다(신 31장).
 그 후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 말기에 그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가나안의 우상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확실하게 여호와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너희 마음에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내키지 않으면  과거 조상들이 강 건너에서 섬겼던 신들이든지 현재 가나안 땅의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이든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오늘 성경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그와 같은 여호수아의 강력한 메시지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느 하나를 분명히 택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쪽을 택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그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택하였습니다.
(수 24: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그러나 (삿 2: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라는 말씀처럼,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기서 ‘여호와를 버리고’ 라는 말(bz"[, 아자브)은  ‘떠나다, 놓아주다, 해방시키다’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미완료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라는 말(db'[; 아바드)은 ‘봉사하다, 시중들다, 예배하다, 순종하다’라는 뜻의 와우계속법 미완료입니다.
 그와 같은 불신앙의 역사가 자손대대로 거듭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힘을 잃어 마침내 영적 흑암기인 사사시대를 맞았습니다.
 그 원인은 그의 부모 세대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부모세대는 나름대로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을 때 그 자식들이 점점 자라가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대신 신속하게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면서 ‘정작 섬겨야 할 여호와 하나님은 헌신짝처럼 내 버리고, 그 대신 섬기지 말아야 할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김’으로 점점 이스라엘은 쇠약해져 갔습니다.
(삿 2: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우리나라가 조상 대대로 우상을 열심히 섬기고, 심히 가난하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칫밥을 먹고 양다리를 걸쳐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약소국 중에도 약소국이었습니다.
 1884년 4월 5일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온 후 우리 조상들이 우상을 버리고, 신실하게 예수를 믿고,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고, 주일을 성수하고, 마을마다 교회를 세우고, 이웃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는 그와 같은 열정이 점차 식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 기독교는 영국 교회는 선교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국 교회는 기독교 대신 무슬림이 활개를 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신앙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가정에서 소홀히 하면서 그 자녀들이 반기독교적인 세속의 문화에 오염되면서 교회를 떠나면서 교회가 점차  노령화되어 버렸습니다.
 그와 같은 서구 교회의 전철을 오늘의 한국 교회가 밟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를 가장 적대시하는 북한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삼대 세습을 완성했습니다.
 갈수록 안티 기독교가 많아져가고, 전도가 안 되고, 주일학교, 청소년, 대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모두가 걱정을 하는 것이 현실 교회입니다.
 과연 그 대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의 하나님, 내 아들 딸의 하나님, 손자 손녀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신앙의 삼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목사 가정에서 목사가, 선교사 가정에서 선교사가, 성도의 가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분야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모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창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교회를 세우갰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지상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에베소 5장에는 예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래로 비유하였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 하나입니다. 교회와 가정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와 같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 생활을 잘할지라도 가정으로 돌아가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으면, 우리 가정의 미래는 사사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불신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서 예수를 믿겠습니까? 설령 예수를 믿을지라도 어떻게 헌신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신학을 지원하여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지원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2014년 표어를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라고 정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표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1) 온 가족이 가정에서 예배하고, 서로 사랑을 실천하고  2) 토요일마다 가족이 함께 교회에 모여 성경을 나누고  3) 온 가족들이 각각 자기 세대의 이웃에게 전도하는 가족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 교회에 어떤 위기가 몰아닥칠지라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정들이 모인 행복한 교회가 바로 우리 수원제일교회가 될 것입니다.
 
 2014년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
 1)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가정
 2)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
 3)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