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주의 백성의 기도/(시 20:1-5)

미션(cmc) 2014. 1. 14. 14:24

주의 백성의 기도

(시 20:1-5)

 (시 20: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시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 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시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 20:5)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물이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사람의 관계도

 1)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고,

 2) 부모가 자녀를 키우고,

 3) 선생님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고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백성은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고, 자녀는 자기 부모를 공경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같은 기도를 기뻐하시고, 또한 왕이나 부모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인간의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가정, 나라, 교회 안에 진정한 승리와 평화와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 성경에서 그 모델을 찾아보고 2014 년도에는 우리 가정과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위에 사람이 아래 사람을 ‘내리락’ 사랑하는 것은 물로 아래 사람이 위에 사람을 ‘오르락’ 사랑함으로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는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다윗 왕이 만난 위기

 시편은 시인이 시상이 떠올라서 기록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시인의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시에 담아 기도하고 노래한 체험적 고백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시편 20편 역시 그 중에 하나입니다. 표제를 보게 되면  (시 20: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이 아주 어려울 때 왕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구약 성경 삼상 11장과 대상 19장에 그 사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삼상 11, 대상 19)

 암몬 사람들의 왕 나하스가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 하눈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나하스는 나에게 잘해 주었다. 그러니 나도 그의 아들 하눈에게 잘해 주어야겠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신하들을 하눈에게 보내어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위로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사람들의 땅으로 갔습니다.

 암몬의 장관들이 자기 주인인 하눈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사람들을 보내어 왕을 위로하는 것이 정말로 왕의 아버지를 공경하려는 것인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성을 엿보게 하려고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성을 정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서 수염을 절반쯤 깎고 엉덩이 부분의 옷을 잘라 내어 그들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눈은 그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자, 다윗은 사신들을 보내어 수치스러워 하는 신하들을 맞이하게 하고 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때, 암몬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윗의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벧르홉과 소바에서 아람의 보병 이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또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 천 명, 그리고 돕에서 만 이천 명을 모았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을 비롯한 모든 용사들을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나와서 싸울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요압과 그의 부하들은 아람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아람 사람들이 도망쳤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아람 사람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아비새에게서 도망쳐 자기들의 성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암몬 사람들과 싸우기를 멈추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지고 나자 엄청난 군대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 때, 하닷에셀 왕이 사람들을 보내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 살고 있던 아람 사람들을 오게 했습니다. 이 아람 사람들은 헬람으로 갔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하닷에셀의 군대 지휘관인 소박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 군대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 헬람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아람 사람들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오늘 시편은 아람군대의 연합군에 비해 숫자적으로 열세인 다윗 왕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다윗이 직접 출정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과 왕의 기도 합주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이 그처럼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윗과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께 승리를 비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시 20: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여기서 '환란‘은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곤경, 궁핍, 고통, 재난‘등을 뜻하며, ’응답하시고, 높이 드시며’라는 말은 미완료 동사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를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이는 백성들이 얼마나 왕을 사랑하는지 그 진정성을 엿보게 하는 기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이 출전하기 전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제물을 드리고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제사를 받으시고 또한 왕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시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 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셀라)”  (시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도와주시고, 붙드시며, 기억하시며, 받아 주시고, 이루어 주시기를’이라는 모든 말씀이 다 미완료 동사로 하나님이 중단 없이 왕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 우리 왕이 어려울 때에 기도하면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답하여 주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왕을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주님의 성전에서 왕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시고, 시온 산에서 왕을 붙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왕이 바친 모든 예물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왕이 드린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를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셀라) 왕이 마음에 바라고 있는 것을 주님께서 베푸시고, 왕이 뜻하는 모든 일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왕이 승리하면 우리가 기뻐 소리칠 것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쳐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이 구하는 모든 것들을 다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기자 다윗이 출정을 앞두고 비장한 각오로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고 합십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다윗을 위해 기도하였을 때 다윗이 그 기도를 다 들었습니다.


 2) 다윗 왕의 화답 기도

(시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8)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다윗 왕의 화답의 기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세워 승리를 기뻐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임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하나님만 들으신 것이 아니라 다윗 왕도 번제를 드리면서 다 들었습니다.

 그 순간 시편 기자 다윗 왕의 마음에 감동이 큰 파도처럼 밀려 들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이제 아람 연합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출정하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켜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왜 출정을 하는 것인지 그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시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j'yvim; 마쉬아흐)은 메시아라는 말이 어근으로 예전에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세우심을 받은 자라는 증표로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이미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기 때문에 비천한 목동이 존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시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또한  ‘구원하시는 줄’이라는 말은 이미 이루어졌음을 뜻하는 완료형이고, ‘응답하시리로다’ 라는 말은 미완료 형으로 이미 자신을 여러 번 구원하여 주셨으며, 이번 전투에서도 분명히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왕에게 승리를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서 하늘에서 왕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오른 손으로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아람 대 연합군의 전차 군단과 맞서 싸우기 위해 출전하는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는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는 만군의 여호아 하나님의 이름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물론 전쟁은 장난이 아니며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군대와 최신 무기로 무장을 해야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해보지 않아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전쟁이었습니다.

(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여기서 ‘병거’는 말을 동원하여 철로 만든 전차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없는 당시 최신예 무기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그와 같은 기병부대가 없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대들이 무장한 것처럼 말의 힘을 의지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신 17:16)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장은 아람 연합군에 비해 열세였지만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능히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 때 시편 기자 다윗은 이미 과거 목동 시절 블레셋의 괴물 장군 골리앗이 블레셋의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며 나아 올 때 그와 대적할 때 골리앗을 향해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3. 하나님의 승리, 이스라엘의 승리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의지하여 전쟁을 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다윗이 패배를 하게 되면 그 피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구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고 있으면서 마치 목동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다윗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의 승리는 숫자나 무기가 아니라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시 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 연합군보다 숫자적으로나 무장으로나 열세라고 생각이 될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하나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합심하여 부르짖되 승리를 확신하는 믿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시 20: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시 20: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그 결과 이스라엘의 군대가 대승을 하고 아람 연합군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의 기도처럼 대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대상 19: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여기서 ‘도망한지라’ 라는 말(sWn 누스 )은 와우 계속법 미완료 동사로 완전한 패배를 뜻합니다.

   (대상 19: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서 ‘화친하여’라는 말(!l'v 샬람)은 우리가 잘 아는 평화를 뜻하는 ‘살롬’에서 왔고 또한 ‘섬기고’ 라는 말(db'[; 아바드)은 ‘봉사하다, 시중들다’라는 뜻의 와우계속법 미완료형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 다시 연합군을 조직하여 이스라엘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아람군대가 암몬 족속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역사 상 다윗이 통치하던 시대가 역대 왕 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일 왕국을 이루고 강성했던 시절이 바로 다윗 왕국 때입니다.

 오늘 시편의 배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경계를 가장 넓게 확장하게 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상 큰 획을 긋는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중대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것은 다윗의 지략이나 용맹 때문이 아니라 왕과 백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합십하여 기도한 믿음의 승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승리를 가져다 준 오늘 시편 20편은 원래 다윗이 승리한 후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공로로 미화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위해 기도한 것을 길이 기념하기 위해 시 형태로 찬양을 포함한 기도문을 작성해서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미래의 왕이나 회중이 사용하게 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개인적인 위기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서로 책임론만 가지고 따지고 분쟁하고 분열하고 대립하는 자중지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 사단 마귀이고 그것을 가장 슬퍼하시는 분이 하나 되기를 힘쓰라고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예 화

 저는 얼마 전 교도소에 가서 5년에서 무기까지 실형을 언도를 받고 차디찬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는 수형자들에게 6시간까지 인성교육을 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겉으로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살인자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순간을 참지 못해서 중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실직을 하고 방을 구하기 위해 이집 저집 다니다가 부인이 남편이 오직 못 낫으면 전세꺼리도 없게 만드냐?고 남편을 무시하는 소리에 왈칵 분노를 폭발하여 아내와 아이를 그 자리에서 목졸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1) 오늘 성경의 배경은 어쩌면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이 처한 형편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 다윗 왕의 예배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심 기도가 가져다 준 승리가 오늘 우리의 승리가 되게 하여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성소와 시온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를 가리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교회에서 도와주시고 교회에서 붙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도우실 때 교회에 나아와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백성들을 통해 도우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힘써 돕는 자를 힘써 도와주십니다. 

     (막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교회와 예배와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얼마나 사모하는지의 여부는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영적 건강 진단과도 같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예배는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할 때, 하나님만 높아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덩달아 복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2014년도에는 그와 같은 예배와 기도가 일주일 단 한번 교회에서 단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가정이라는 교회에서 일주일 내내 온 가족이 합심하여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얼마나 그 가정이 복된 가정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사람들이 보기에 복된 가정입니다.

 2) 2014년 우리는 교회와 가정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이해 기도하고 육신의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와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오르막 기도를 함으로 분열대신 화합을 미움대신 사랑을 실천하는 강력한 국가 강력한 교회 강력한 가정을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목사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성경 시 20:5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을 위해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한 것처럼 이제부터는 이제 우리도 나라와 직장과 교회와 가정에서 오늘 성경의 다윗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위아래가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함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전환하고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여러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여러 명의 자녀를 둔 부모처럼 그 들을 위해 기도하고 염려하고 끊임없는 사랑으로 격려하고, 권고하고, 교훈하고, 책망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신약의 1/3에 해당하는 바울 서신들을 기록하여 보낸 일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여 위로의 사절과 편지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엡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살후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