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주의 종의 소원 /(시 19:11-14)

미션(cmc) 2014. 1. 9. 09:27

주의 종의 소원 

(시 19:11-14)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2014 년 새해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각 사람마다 공통된 소원이 있다면, 개인적인 건강, 가정의 화목, 국가의 평화, 교회의 부흥 등 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같은 소원을 갖는 이유는  그것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한계 때문입니다.
 그 같은 한계를 인식하는 사람이 다른데 찾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또한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전능자이심을 ale기 때문입니다.
(욥 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그것을 증거 해주는 두 가지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될 때 내가 지금까지 지나 온 것이 그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또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길에서 전능하신 도우심을 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소원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며, 그 소원조차도 내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소원을 두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임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기를 구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오늘 시편 기자입니다.

 1. 피조물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
 시편 기자는 흔히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말하는 우주 만물이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 19: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여기서 ‘선포하고’ 라는 말(rp's;(5608, 사파르) )은 ‘자세히 말하다, 수를 헤아리다’ 라는 뜻이고, ‘나타내는도다’ 라는 말(dg"n:(5046, 나가드)은 ‘말하다, 알리다, 선언하다’ 라는 뜻으로 둘 다 분사로 하늘이 만들어진 이래로 하나님의 영광을 지금까지 내내  선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늘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 자체가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무한하시고 전능하신 분인지 너희들은 알아야 해 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여기서 ‘알려졌나니’라는 말(noevw(3539, 노에오) )은 ‘알다, 인식하다, 생각하다’ 라는 뜻의 동 분사 현재 수동태로,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에 그 피조물을 보게 되면 어느 누구도 창조주는 없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그 우주만물 가운데 매일 교체되는 밤과 낮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 를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 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여기서 날은 밝은 낮을 뜻하고 밤은 해가 진 어두움을 뜻하는 것으로 밤과 낮이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가운데 하늘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밤은 고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밤은 만물이 잠을 자는 휴식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잠잠할 뿐이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은 밤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쳐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 19: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 화
 좀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만 제가 오래 전에 예배당 준공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선교지 페루를 방문하였다가 시간을 내어 아마존 밀림에 들어가서 하루 밤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아마존 밀림 지대에 가면 밤을 체험하는 코스가 있는데 한 밤중에 일어나서 손전등을 들고 밀림 안으로 들어가서 밤에만 볼 수 있는 곤충들과 뱀과 같은 것들을 관찰하는 코스입니다.
 밤에 밀림은 고요했을까요? 아니었을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나타나는 야행성 곤충과 각종 새 들이 각기 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하는데 좀 과장을 해서 마치 월드컵 경기장에 모인 군중들의 함성과도 같이 천지를 진동하듯이 크게 들렸습니다.
 하늘에는 바늘조차 들어갈 틈도 없다는 말처럼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덮었고 은하계라고 일컫는 별들의 강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유성이 네온사인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장관이었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밤이 없다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가 얼마나 크고 넒고 높고 먼가를 밝은 낮의 햇빛에 가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도 낮 못지않게 창조주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 같은 어두움도 여명이 가까워 오게 되면 점차 잦아들면서 아침에 먼동이 터 오르면 동편에서 붉은 태양이 힘차게 솟구치는 아침을 맞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그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밤을 만드신 까닭이 무엇인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해는 지구에서부터 일억 오천만 km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과학적인 상식으로 태양은 지구를 일 년에 한번 공전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그 태양은 단 한 순간도 쉼이 없이 그 달음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밤은 그와 같은 태양의 달음질을 쉬게 하기 위해 만든 장막이라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마치 신랑이 아침에 일어나 신방에서 나와서 낮이면  힘차게 다시 달려갈 길을 달음질하는 장사처럼 밝은 빛을 온 세상 구석구석에 골고루 비취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방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그 열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 19: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시 19: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이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아름답게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가 시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편 기자가 어린 시절에 베들레헴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며 양을 지킬 때 밤하늘을 보면서,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마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습니다.
 뜨거운 대낮에 양을 치기 위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아 들판을 헤매면서 견디기 힘든 더위를 없이 경험하면서 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체험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수많은 밤과 낮을 보내면서도 시편 기자와 같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시편 기자가 본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 만든 얄팍한 문명 속에서 깊이 갇혀서 자연을 접하는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휴가를 얻어서 자연을 찾아간다고 할지라도 마치 시력이 형편없는 사람처럼 자연이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영적인 안경보다 보다 더 근원적으로 개안 수술이 필요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거듭나서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성경이라는 안경을 쓰고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을 바라볼 때 비로소 오늘 시인과 같은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경 말씀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
 시편 기자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을 통해서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을 이해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마치 시각 장애자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감지할 수 있는 영적인 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은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는 특별한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만물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이 하신 일들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만물만으로 하나님을 다 이해하거나 온전히 믿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마치 중병을 앓고 난 후에 환자처럼 모든 영적인 기능들이 마비되어 설령 하나님이 지으신 그 아름다운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정신병자처럼 피조물을 가리켜 신이라고 부르면서 거기에 제사를 드리는 영적인 무지와 배은망덕한 죄에 빠져 살아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특별한 계시인 성경 말씀을 주셨는데 오늘 성경 본문은 그와 같은 특별한 계시를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 19:7)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시 19:8)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시 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도
 그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부르신 사람들을 통해서 예언하여 준 것으로 인간의 말처럼 한 번 뱉으면 공중에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는 진리로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고 순종하는 자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의 율법인 성경 말씀은 완전하여 인간의 영혼을 살아나게 하기에 충족한 영혼의 양식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로 돌이키는데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증거인 성경 말씀은 확실하기 때문에 겸손히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기 때문에 선악을 분별하여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3)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무와 인생의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하여 정직한 삶을 살게 하여 줍니다.
 4) 여호와의 계명은 깨끗하여 영적인 눈을 뜨게 하여 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죄에서 멀리하게 됩니다.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거룩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게 하고 썩지 않게 하여 줍니다.
 6)  여호와의 법도는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이기 때문에 의로우며 그 목적이 선하며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인 성경은 세상에 어떤 재물보다 가치있고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큰 유익을 주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시 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여기서 ‘더 사모할 것이며’라는 말(dm'j, 하마드)은 ‘몹시 바라다, 탐을 내다’ 라는 뜻의 분사형으로 지금 현재 그렇게 살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금을 사모하는 것보다 성경 말씀을 더 사모하고, 그것을 읽고 듣는 자는 송이 꿀보다 더 단 것을 체험하게 되고, 그것을 지켜 사는 자에게는 하늘에 상급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 금은 땅에서 인간이 파낸 것이지만 성경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 금은 인간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는 달리 그 자체에 강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가는 순간 사라지고 말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스스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 이유는 성경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생명의 언어로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가 거듭나 예수를 믿게 하였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선하게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3. 주의 종의 소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 큰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고 나약한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결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며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설령 자신이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일개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종의 사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여기서 ‘주의 종’이라는 말(db,[, 에베드)은 ‘주님의 노예’라는 뜻입니다. 지난 번 시 18 편 표제가 “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로 시작을 해서 오늘 시편 19편에 두 번 그리고 27, 31,34, 35, 36, 69 등 마지막 시편 144편 까지 수 없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킴으로’라는 말(rm'v;(8104, 샤마르) )은 ‘감시하다, 준수하다, 보존하다, 주의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자주 경험하고 있는 일이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지라도 죄가 개입이 되면 그 모든 결심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시편 기자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인정하고 드러내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자신이 주의 종이라는 영적 신분 때문에 솔직하게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본문에서 참으로 진지하고도 성결 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라고 자신의 심성까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 다윗은 자신의 숨은 허물까지도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시편이 지난 날 다윗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지른 후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결심을 하면 다 될까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 모든 마음의 결심과 소원을 담아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신 반석 되신 여호와, 자신의 죄를 속해주시는 유일한 구속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드리는 기도와 마음의 묵상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습니다.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마치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고 물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새해에 소원을 물으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시편 기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멀리 널리 오래 선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주의 종들임을 믿으십니까?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오늘 주의 종인 시편 기자의 소원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어야 할까요?
 새해를 맞이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마치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새해에 소원을 물으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1)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하는 정금보다 더 가치 있고, 즐기는 쾌락보다 더 즐거운 송이 꿀보다 더 단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은혜를 소원하자는 것입니다.
 (시 19: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2)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최고 가치는 그 말씀을 읽고 듣기만 하지 않고 그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 때이기 때문에 새해에는 우리도 주의 종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소원하자는 것입니다.
 (시 19: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세속 교육에만 매달리고 있는데 이는 진정 자녀가 바르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자녀에게 성경 과외 공부를 시킬 정도의 열정을 가진 부모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그 미래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3)  오늘 우리도 주의 종 다윗을 보면서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설령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자주 넘어졌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아담이 범한 부패한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의 종 시편 기자처럼 숨은 죄와 고의로 짓는 죄와 원죄까지 속죄하여 주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소원하자는 것입니다.
(시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열납되기를 소원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나 구역이나 가정을 막론하고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우리의 기도와 묵상과 찬양과 예배를 주께서 열납 하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한 방에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신년 첫 주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의 예배를 하나님이 열납하시고 시편 기자아 같은 소원을 품는 모든 성도들의 소원을 하나님이 일년 내내 들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시 19: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