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
(시 18:46-50)
(시 18: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시 18: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시 18: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시 18: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시 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오늘 2013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각자가 흘려버린 한 해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구보다 많이 받았다는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그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돌이켜 보면 주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면서 깨닫고 돌이키는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시편 18편을 크게 둘로 나누어 지난번에 다 나누지 못한 후반의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많은 원수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도우심을 구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가야만 하는 길에 흑암과 담이 가로 막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길에 빛을 비춰주실 것이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고 담을 뛰어넘겠다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우리도 본받아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18편 후반부를 통해서 그와 같은 믿음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 시편 기자가 과연 승리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은 믿음으로 승리를 했다면 오늘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무리 캄캄하고 장애물이 많을 지라도 시편 기자와 같은 믿음으로 도전한다면 우리들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완전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시편기자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기 전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나 오늘 우리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시편 기자의 그와 같은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기서 ‘완전하고’라는 말(!ymiT, 타밈)은 ‘흠없는, 정직한, 온전한’ 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100 %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은 사람도 물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비교적인 흠이 적을 뿐입니다.
그러나 천지와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티끌만큼도 흠이 없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이 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수하니’ 라는 말(#r'x;(6884, 차라프) )은 ‘정련하다, 시험하다,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마치 용광로 속에 여러번 제련을 해서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순금과도 같다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순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처럼 순수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기 때문에 그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본래 이방 땅에서 우상숭배하며 칠십 오년이나 살아오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를 부르셨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랐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그와 같은 아브라함의 자세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모세나 여호수아나 사무엘이나 다윗과 같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과연 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사람이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자들인 천사나 주의 사자나 선지자나 사도나 설교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여 주실 때 그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 말씀이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이고 국가를 막론하고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순종할 때 놀라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또한 그 약속하셨습니다.
(신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정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멸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 28: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모세와 바로가 똑같이 애굽 땅에서 살았지만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지만, 바로는 모세가 전해주는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애굽 사람들이 재앙을 받아 죽게 하였습니다.
사울도 다윗도 똑같이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사울은 사무엘이 전해준 여호와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이 전해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죄함을 받고 버림을 당하지 않고 끝까지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 다윗은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충성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본보여주었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도 성경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전하고 순수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임을 믿고, 사랑하고, 시편 기자처럼 존귀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청종하고 주야로 묵상할 때, 고난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금보다 더 존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2.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
(시 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시편 기자 다윗의 시대는 이스라엘 주변에 블레셋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빙둘러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스라엘 보다 강한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침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들로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때면 자기들이 믿는 신상을 앞세우고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곧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그들이 믿는 우상이 더 강하다고 믿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삼상 5: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면 그와 같이 우상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나라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을 백전백승하게 하셨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자주 이스라엘이 패배하도록 내 버려두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요, 앗수르와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하기까지 한 일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방나라의 기를 살리고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도구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돌이켜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이 강한 줄로 착각하고 위기를 당할 때 회개하는 대신 이방신을 섬기는 배은망덕한 죄를 범하여 더 큰 재앙과 징계를 자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서나 왕이 되고 난 후나 일편단심 변함없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겼으며, 이방신상을 철저하게 배격하였습니다.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서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고 반문한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와 같은 다윗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와 같은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이었을 때는 패배의 연속이었고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굴욕을 당하기까지 하였으나, 다윗이 왕이 되고 난 후에는 그와 같은 수치를 보복하여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시 18: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 상 다윗의 통치 기간에 통일왕국을 이루고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되었고 온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였습니다.
물론 전쟁에는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고 때로는 이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만은 그와 같이 백전백승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3. 여호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믿음
시편 기자가 하나님이 비록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혀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대적을 향해 나아갔을 때 대승을 경험하였습니다.
1) 원수들을 끊어 버리게 하셨습니다.
(시 18: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2) 티끌같이, 진흙같이 부수고 쏟아 버리게 하셨습니다..
(시 18:4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3) 원수들과의 다툼에서 건져내셔서 마침내 모든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 18: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오늘 성경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승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위험에서 무사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모든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가 승리할 수밖에 없도록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능력으로 띠 띠우시고, 길을 완전케 하시고(32,39절)
2) 암사슴의 발처럼 발걸음을 민첩하게 하시고(33절)
3) 활을 잘 쏠수 있도록 손을 훈련시키시고(34절)
4) 구원의 방패를 주시고 오른손으로 붙드시고(35절)
5) 걸음을 넓혀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36절)
시편 기자는 매사를 주께서 나를, 주께서 나를 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자기를 이기게 된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 18: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시 18: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시 18: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시 18: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라는 말씀처럼 그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찬양하고,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시 18: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시 18: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시 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본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편 기자처럼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무사히 살아오고 믿음을 지켜 온 것이 알고 보면 시편 기자처럼 주께서 나를 붙드시고 훈련시키시고 여건을 마련해주시고 승리케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감사하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UN 반기문 총장 2013년 송년사에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일까요?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 L. Moody)는 말하기를 ①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②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③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④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형통할 때는 물론 고난 중에서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대상 16:10)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시 105: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오늘 시편 기자만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도 동일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이후 죽을 고비를 수 없이 겪으면서도 복음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이켰습니다. 많은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열두 사도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어느 사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전파하는 일에 충성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를 낮추고 한결 같이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은 그러한 사도 바울을 끝까지 귀하게 들어 쓰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울왕은 자기를 높이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배은망덕하다가 결국 버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사도 바울처럼
1) 내가 구원을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2) 한 해 동안 가족들이 무사한 것도 한결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 바랍니다.
'설 교 > 이규왕목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의 종의 소원 /(시 19:11-14) (0) | 2014.01.09 |
---|---|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수 24:14-18) (0) | 2014.01.09 |
증인/(눅 2:10-14) (0) | 2013.12.30 |
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사 40:3-8) (0) | 2013.12.18 |
•뛰어 넘을 수 있는 신앙/(시 18:21-29) (0) | 201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