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길
(사 40:3-8)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사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 40: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고, 미래로 추월해 나갈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과 달리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 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이 그토록 영원하시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었고, 그가 만드신 피조물이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드러내어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와 같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중에 최고의 걸 작품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기대도 매우 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설령 겉으로 죄가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속까지도 깨끗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들조차 죄를 미워하고 죄를 억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법입니다.
신문 지상에 보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불의한 돈과 부도덕한 죄에 연루가 되어 추악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자주 보면서 세상에 그 어떤 신분의 사람도 결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에게 불순종이라는 죄를 범하게 되면 ‘정녕 죽으리라’고 인간이 범죄 하기 전에 미리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조상이 그 말씀에 대해서 불순종을 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형벌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해아래서 모든 인간은 일생동안 갖가지 죄를 범하며 살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숙명처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불만스러울지라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뒤바꾸어 놓을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존재일까요? 그와 같은 인간이 다시 살고 영원히 살고 죄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죄와 죽음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는 인간을 가두고 있는 죄와 죽음이라는 감옥 문을 열어 제킬 수 있는 마스터키가 있으십니다. 그 마스터키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와 긍휼이라는 사랑의 열쇠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열쇠를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바로 깨닫고 올바르게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위로
오늘 성경 말씀은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고난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과 몸으로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일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경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오늘 성경 이사야선지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사 40: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기서 ‘위로하라’는 말(!j'n: 5162, 나함 )은 '위로하다‘는 뜻과 더불어 ’후회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로하신다는 말씀만으로 감사한 일인데 하나님의 위로는 좀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사 40: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처럼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즉시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여러 명의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 죄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고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수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될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선지자들 가운데 대표자가 바로 웃시야 왕의 시대에 활동을 한 오늘 성경의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처럼 살았기 때문에 그들을 멸망시키고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초한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과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은 그와 같은 포로 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고 또한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을 배나 받은 것으로 간주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예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기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예언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그 예언을 귀 기울여 듣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불순종하므로 이방나라에 포로가 될지라도 때가 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모든 길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길을 준비하게 하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이 임하시는 길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셨을 때 예루살렘과 성전이 황폐하게 될 것과,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다시 임재하실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사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사 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기서 “광야나 사막이나 골짜기나 언덕이나 험한 곳”은 하나님을 불순종함으로 황폐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이 상태가 얼마나 황폐하고 무미건조하고 오만불손한가 하는 것을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평탄하게 하라, 낮아지며, 평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은 회개하고 돌이켜 낮아진 영적인 상태를 뜻하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 떠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사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여기서 ‘나타나고’ 라는 말(hl;G: 1540, 갈라)은 ‘덮개를 벗기다, 폭로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추고 계셨던 것들을 밝히 드러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때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보리라’는 말(ha;r 7200, 라아)은 ‘바라보다, 조사하’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으로 두고두고 보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유다 백성들은 주전 606년에 바벨론으로 잡혀 갔고,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는 일들이 이사야가 예언한지 100 년에서 160년 사이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다 백성들은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들의 예언처럼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옴으로 다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자유와 해방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후일에 메데 파사 헬라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말씀에 효력은 끝이 난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한시적인 예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세계 만민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설령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가고 오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히 유효한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가리켜 영원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3. 회개에 합당한 열매
오늘 성경 (사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요한복음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예수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오늘 성경 말씀 그대로 예언을 하면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눅 3: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눅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눅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눅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치 이사야와 세례 요한이 시간이라는 감옥을 초월하여 마치 한 사람처럼 예언하고 때가 되니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영원함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아기 예수가 내 마음에 임하실 수 있는 평탄한 길을 오늘 우리도 예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여섯 달 전에 세례요한을 보내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구원은 고사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찍어 불에 던지는 것처럼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눅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그렇다면 주의 길을 준비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물었을 때 세례요한은 어떻게 대답을 하였습니까?
1) `옷 두 벌을 가지고 있거든 한 벌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먹을 것이 있거든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 먹어라'고 하였습니다.
2) 부패했다고 소문이 난 세리들에게는 `정직하게 살아라. 로마 정부가 정한 것 이상으로 세금을 징수하지 말아라'고 하였습니다.
3) 군인들에게는 `남을 위협하거나 폭력을 써서 돈을 빼앗지 말아라. 너희들이 받는 봉급으로 만족해하여라!' 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그와 같은 외침은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외침대로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였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침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맞이하는 성탄절이 이처럼 큰 의미가 있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캐럴을 부르는 것으로 다가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돌이켜 보면서 잘 못된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얽어매는 죄악의 쇠사슬이요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를 둘둘 감고 있는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그 감옥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오신 날입니다.
물론 그것이 내 의지로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와 같은 주의 은혜가 내게 임하시기 위해서 이사야와 세례 요한의 외침처럼 내 마음에 오만과 불신과 불순종의 산과 골짜기와 언덕을 뭉개버리는 회개가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나의 마음에 오시도록 나의 마음도 겸손히 낮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로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나도,
1)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못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2) 죄를 미워하고, 버리고, 떠나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3) 주님을 사랑하며, 주를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4) 이웃을 사랑하며 화목케 하는 자가 됩니다.
5) 마음에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6)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7)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예비하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성탄절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잘못된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온전히 주님께로 돌이켜 성탄의 주님이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임마누엘하시는 복된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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