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를 경외하는 자인가?
(시 22:22-28)
(시 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시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시 22: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시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시 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시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여러 스포츠 경기는 우승을 결정하는 방법이 제 각기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1) 어떤 경기는 딱 한 번의 경기로 채점하기 때문에 실수하게 되면 끝이고,
2) 어떤 경기는 세 번을 통해서 채점을 하여 평균점수를 내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다음번에 잘하여 만회를 하면 되고,
3) 어떤 경기는 전 후반의 경기를 통해 득실점의 차이를 비교하여 우승을 가리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인생살이와 신앙을 운동경기로 비유하여 말씀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 어떤 경기와 같을까요?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갈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만약에 우리의 인생살이와 신앙생활이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전 후반의 경기와 같다면 어느 한 부분만 보고 속단하지 말고 전 후반을 다 살펴야만 올바른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시편 22편 전반부를 통해서 시편 기자가 그와같은 고통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고난의 예표하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22편 후반부는 그 고난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에 대한 예언이어야 할 것입니다.
1. 시편 기자의 절망
오늘 성경 말씀인 시편 22편의 기자의 인생 전반은 어느 누구보다 불행하게 생각되는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공통점은 사람을 의지하는 대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깊은 절망감에 몸부림을 칠 정도였습니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여기서 시편기자는 극심한 고통 중에 처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1) 버리셨으며. 2) 돕지 않으시며, 3) 듣지 않으신다고 속단을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를 대적하는 원수들이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께서도 시편 기자를 외면하신다는 사실을 알고는 시편 기자를 넘어뜨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사방에서 집단적으로 공격하므로 시편 기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함으로 더욱 깊은 절망감에 빠져 몸부림을 쳤습니다.
(시 22:6) “그러나 나는 사람도 아닌 벌레요, 사람들의 비방거리, 백성의 모욕거리일 뿐입니다.” (시 22:7)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빗대어서 조롱하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얄밉게 빈정댑니다.” (시 22:8) “"그가 주님께 그토록 의지하였다면, 주님이 그를 구하여 주시겠지. 그의 주님이 그토록 그를 사랑하신다니, 주님이 그를 건져 주시겠지" 합니다.”
그것은 마치 현대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면역결핍증처럼 시편 기자를 영적으로 가장 무기력한 상태에서 사방으로 공격을 당하지만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1) 원수들이 마치 힘센 황소 떼나, 으르렁 거리는 사자나, 헐떡거리는 들개 떼처럼 시편 기자를 사방으로 에워쌌습니다.
2)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극심해서 신음소리가 마치 쏟아지는 물소리처럼 그치지 않았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지는 고통에 마음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깊은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당하는 그와 같은 고통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인류의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당하게 될 고통에 대한 예언으로 훗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시편 기자가 부르짖었던 탄식을 그대로 다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1) 우리 중에 아무리 고통이 극심하다고 할지라도 오늘 시편 기자보다 더 고통이 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변에는 나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면서 염려하며 기도해주는 위로의 사람들이 있지만 시편 기자에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 우리가 때로 고통을 당하게 될지라도 때를 따라 도우시는 말씀과 성령의 위로가 있지만 시편 기자는 하나님마저 외면하시는 처절한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3)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이런 경우에는 좌절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고 오직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간혹 주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보고 ‘자살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사람이 죽을 결심을 하면 무엇인들 못견디겠느냐?’고 비난과 정죄의 말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더 이상 내일에 소망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절망감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바로 오늘 시편 기자처럼 주를 경외하는 신앙뿐 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면 누구나 절망하기 쉽고 그 때를 마귀가 노리고 쉽게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2. 시편 기자의 반전
우리가 이른 아침 높은 산에 오르게 되면 어두움의 커튼을 걷어 젖히고 아침 해가 마치 용광로에서 건져 올린 광궤처럼 빨갛게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렇게 되면 온 대지를 덮고 있던 어두움은 썰물처럼 물러가고 찬란한 아침 태양이 온 세상 구석구석을 환하게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찬란한 태양 빛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버틸 수 있는 어두움은 세상에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시편 기자가 바로 그 태양빛과 같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둠 속에서 절규하던 탄식이 환희의 찬송으로 원망과 불평이 감사와 기쁨으로 불신과 회의가 견고한 믿음으로 반전되었습니다.
(시 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기서 ‘선포하고’ 라는 말(rp's; 5608, 사파르)은 대충 얼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셈을 세듯이 자세히 말하다’는 뜻이고, 또 ‘찬송하리이다’라는 말(ll'h 1984, 할랄)은 단지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내다, 자랑하다’라는 뜻으로 둘 다 미완료 형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기쁨과 감격을 자기 혼자서만 누릴 수 없어서 자기를 비웃고 조롱하던 사람들에게 자기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자고 당당히 외치는 신앙의 대반전을 볼 수 있습니다.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하다’라는 말(rWG1481, 구르)은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는 의미로 강하거나 우월한 사람이나 사물 앞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리켜 경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동시에 품게 되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쉽게 어떤 예를 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매운 맛으로 비유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찾는 매운 음식 중에는 국내산 청양 고추에다 베트남 고추와 마늘과 생강 등을 범벅 하여 만든 “매운 냉면, 매운 돈까스, 불 짜장면, 떡볶이 킬러, 레드 크림 파스타, 핫도그, 해물짬뽕, 심지어 족발과 닭 날개”까지 한 조각만 입에 넣어도 불이 나는 음식들입니다.
사람들이 그 매운 음식들을 찾는 이유는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운 중에 맛이 있고 그것을 먹다가 보면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자꾸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도 그와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맛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시편 기자는 그 맛을 이해하고 오늘 성경에서도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그를 찬송 할지어다, 그에게 영광을 돌릴 지어다, 그를 경외 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경외하는’이라는 말(arey: 야레)은 성경에 다섯 가지 의미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1) 두려운 감정 2) 악에 대한 대비 3) 존경하는 감정 4) 의로운 행동이나 경건 5) 예배의 형식 등을 뜻하는 현재형입니다.
시편 기자가 시편 전반부에서는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깊은 절망에 빠져서 하나님이 시편 기자를 멀리하고 떠났다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편 후반부에 와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의 사람으로 대반전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3. 시편 기자의 소망
시편 기자가 안팎으로 몰아닥치는 고난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시편 기자를 떠나시고, 버리신 줄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보여 주셨을 때 그동안 시편기자를 억누르고 있던 절망과 회의가 사라지고 찬란한 태양 빛을 보게 되었을 때 신앙의 대반전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시편 기자가 곤고한 자리에 처하였을 때 곤고한 자를 멸시하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르짖음에 이미 귀를 기울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여기서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라는 말($q'v; 8262, 샤카츠)과 ‘들으셨도다’ 라는 말([m'v; 8085샤마 )은 이미 싫어하지 않으시고 이미 들으셨다는 완료형입니다.
시편 기자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회의하던 그 입술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외자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22: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기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받는 겸손한 사람은 마침내 배부르게 되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여기서 ‘먹다, 배부르다, 살지어다’라는 세 마디 말( lk'a; 아칼, [b'c 사바, hy:j 하야) 은 모두가 다 인생의 후반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뜻하는 미완료형입니다.
3) 인생의 전반전에서 악한 자들에게 박해를 당하고 밀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반전에는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이 다 하나님에게 속하여 예배하게 되는 날이 도래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 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시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4) 자자후손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대대로 온 세상 만민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미래의 선교 비전을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 22: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시 22: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여기서 ‘행하셨다’는 말(hc;[; 아사)은 ‘일을 행하다, 만들다, 이루다’는 듯의 완료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일천년 전에 시편 22편 전반부를 통해서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하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 성경 시편 22편 후반부를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자자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과 우리의 자녀들까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속에서 이루어진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미리 기록한 시나리오처럼 오늘 시편 22편에 ‘십자가와 부활’을 다 보여주는 구속사의 시나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렘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인생의 전반전이 비록 캄캄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후반전을 기대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이 범하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은 단순히 윤리적인 죄만 아니라 마치 말라기 시대처럼 갈수록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우습게 여기고 비웃고 조롱하는 불경죄를 즐기는 것입니다.
(말 3: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은 후반전에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고 복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시145:19) "저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힘쓰는 자
1)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는 삶은 살며,
2)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더 철저하고,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관용하며,
3)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미워하며 그것을 쌓아두지 말고 날마다 회개하고,
4)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5) 이미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사람입니다.
예 화
유태영 박사는 가난한 농촌의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가정 형편 때문에 교육시킬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유 박사는 어릴 때 동네 사람들로부터 똑똑하다는 인정을 받아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5학년 때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 는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대로 중학교를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통신중학교를 다닌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낮에는 구두닦이를 하면서 저녁에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여러 번 굶어 보았으며 남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하고, 한강이 얼어붙은 추운 겨울에는 내의도 없이 냉방에서 너무 추워 잠을 못 자고 방안을 돌아다니다가 새벽에는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햇볕이 나면 교회 담 밑에서 몸을 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도 유학을 갈 수 있다. 돈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유학을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덴마크 국왕에게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고 싶으니 유학초청을 해달라고 편지를 했을 때 비행기 표와 등록금 일체를 지원받고 미국, 이스라엘, 덴마크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건국대학교 부총장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유 박사는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꿈을 가지고 기도에 힘쓴 것이 형통의 비결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1)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고, 2) 예배하고, 3) 영광을 돌리고, 4) 사람 앞에서도 정직하고, 5)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이요, 인생의 본분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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