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행복한 신앙인의 노래/(시 23:1-6)

미션(cmc) 2014. 2. 11. 17:39

행복한 신앙인의 노래

(시 23:1-6)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우리는 지난 시편 22편에서 시편 기자가 경험한 고난은 마치 종합 선물세트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 온갖 멸시와 조롱과 고통이 시편 기자를 에워싸서 시편 기자를 괴롭혔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시편 기자는 그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나 하나님은 침묵하신 채 아무런 응답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시편 기자가 생각하기는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고 멀리 떠나신 것처럼 생각이 들 정도의 극복하기 힘든 고난도의 고난이었습니다. 

 (시 22:1, 2)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의 처지는 마치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체감 온도를 더욱 떨어뜨리는 한 겨울처럼 시편 기자를 더욱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시편 23편은 그와는 너무나 대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생각될 정도로 시편 22편과는 상반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기서 ‘부족함’이라는 말(rsej;(2637, 하세르))은 ‘필요하다, 감소하다’ 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많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지속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시편 기자는 22편의 처지와 23편의 처지가 전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상황에서 그 현실을 느끼는 느낌이 달라진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많다’는 뜻이 아니라 ‘모자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신 8: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많은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것을 깨닫는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다"고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마다 새로운 만나를 내려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욕심을 부릴 필요 없이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어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구태여 욕심을 부리면서 더 많이 거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족함이 없다’는 말의 뜻입니다.

(출 16: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출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지난 시편 22편은 부족한 것만 너무 많은 불행한 사람의 노래라면, 오늘 시편 23편은 그와 대조적으로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는 행복한 사람의 노래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22편과 23편은 제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오늘 성경은 둘 다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시편 23편의 평화는, 시편 22편의 고난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시편 22편의 삶을 살고 있다면  절망하지 말고 오늘 시편 23편과 같은 행복한 미래를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심을 믿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시편 23편의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 중에 하나는 세상 정치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은 불신앙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시편 기자 다윗은 지난 날 목동시절에 자기가 경험했던 양들이 어떤 동물인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곰곰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자신은 영락없는 한 마리의 양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양을 치는 자신의 직업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부정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자를 천직으로 여기고 양떼들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깨닫는 거울로 삼았습니다. 

 1) 첫째로 양은 방향 감각이 없는 동물입니다. 양은 자기들끼리만 놔두면 집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2) 둘째 양은 무력합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어느 정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책이 있지만 양은 날카로운 뿔이나 이빨과 같은 방어무기가 전혀 없는 동물입니다. 

 3) 마지막으로 양은 더러움에 쉽게 오염됩니다. 양은 흰털을 갖고 있어서 깨끗해 보이지만 사실 흰털은 오염되기 쉽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오염을 제거할 능력도 없습니다.

 4) 양은 먹을 물을 찾다가, 기생충이나 여러 가지 병균으로 오염된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거나 악어나 맹수가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 쉽습니다. 

 5) 양은 눈이 나빠서 5~10m 밖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푸른 풀밭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반드시 목자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목자는 양떼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양이 사는 길은 오직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 이동할 때는 반드시 목자가 앞에서 양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그와 같은 양떼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자기보다 연약한 자만 보면 자신이 잘났다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거울이 아니라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아무리 자연을 본다고 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울을 주신 것이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처 볼 때만이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2. 하나님이 누구인가?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양떼들을 통해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바로 아는 거울로 삼았다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반드시 목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피조물처럼 누구에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세상을 단 엿새 동안 생명과 빛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시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그 하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하나님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양들처럼 무지하고 무능력한 자신의 목자가 되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그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신다고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 23: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 자신이 목자였던 시절 선한 목자가 자기 양떼를 향하여 가지고 있는 관심과 부드러운 애정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양떼들이 목자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를 기억하고,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하여 생명까지 무릅썼던 지난 날을 회상하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왜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고 고백을 하게 된 배경은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양을 치는 목자 노릇을 하였기 때문에 목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3.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은혜

 시편 기자가 베들레헴 들판에서 경험한 연약한 양과 같은 자신의 모습만을 깨닫기만 했다면 행복하기 보다는 오히려 낙심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와 같이 연약한 나를 사랑하시는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덧붙여 깨닫게 되었을 때 오히려 행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기자가 목동 시절 양을 돌보았던 것처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서 지금까지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 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시편 기자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1) 절대 필요의 충족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무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풀은 다 억세고 질기기 때문에 양이 먹을 수 없는 풀이 대부분인데 여기서  푸른 풀이라는 말(av,D,(1877, 데셰))은 비온 후에 저습지나 들판에 돋아나 어리고 연한 새로 돋아난 풀을 뜻합니다. 양의 생존을 위해 절대 필요한 두 가지가 풀과 물입니다. 

 또 일조량이 너무 적기 때문에 늘 물이 부족함을 목자가 알고 이른 아침 양을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서 초롱초롱 맺혀있는 아침 이슬을 먹이고, 낮에는 깊은 물이 아니라 얕은 물가로 인도하여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는 양은 푸른 풀밭에서 편안이 누어 되새김질을 하면서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치료와 회복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인도하시도다’ 라는 말(hj;n:(5148, 나하) )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내한다’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인 아픔도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영혼이 병이 들었을 때 그것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것은 양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선한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치료의 광선을 발하셔서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고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셔서 사망에 이르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생명에 이르는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만일 길을 잃지 않고 옳은 길, 의의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3) 두려움에서 해방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푸른 풀밭과 평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여기 저기 많이 있기 때문에 양이 자력으로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푸른 초장이 있고 어디에 시원한 오아시스가 있는지를 잘 아는 목자는 더 빨리 그리로 인도하기 위해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할지라도 양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한 목자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한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앞서 가기 때문에 양은 목자를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오직 선한 목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어떤 사람에게는 암 일수도, 어떤 사람에게 사업의 실패일 수도, 어떤 사람에게는 불의의 사고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람녀 그 모든 것들을 통과한 후에는 더욱 신앙의 담력이 생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치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4) 넘치는 은혜

 우리는 앞서 시 22편에서 시편 기자를 둘러 싸고 있는 원수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시편기자를 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사방에서 에워싸서 시편 기자를 죽이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시 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시 22: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시 22: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시편 기자의 부르짖음에 계속해서 침묵하시기 때문에 시편 기자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절망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보니 하나님이 왜 침묵을 하고 계셨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 받는 시편 기자를 원수들 앞에서 위로하고 높여 주시려고 잔치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서 ‘상’이라는 말(@j;l]vu(7979, 슐한))은 잘 차려놓은 잔치 상을 뜻하는 말이고 ‘차려주시고’라는 말(&r'[;(6186, 아라크))은 잘 배열해 놓는다는 미완료 동사입니다.

 그 때문에 시편 기자는 지난 시 22편에서 목이 마르는 필요에서 오늘 시 23편 잔이 넘치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5) 영원한 승리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여기서 ‘따르리니’라는 말(#d'r;(7291, 라다프) )은 ‘추격하다, 괴롭히다’라는 뜻의 미완료로 설령 행복을 거절해도 행복이 주인을 끝까지 따르는 보호견처럼 주님의 양을 뒤 따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종종 하나님을 가리켜 산성이라고 자주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산성이라면 그 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산성에 오르게 되면 평생을 넘어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소망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나의 선한 목자로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때로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은 종착역이 아니라 여호와의 집에 이르는 여정이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예 화

크리소스톰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갔을 때 “주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복음화하라고 이곳에 저를 파송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감옥에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 때 그는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에 중지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때도 그는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았다는 것입니까? 죽도록 충성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성도를 사탄이 어떻게 넘어뜨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또 이런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항상 행복한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신앙인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나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1) 지금까지 어떻게 인도하여 주셨으며, 2) 앞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나의 목자라고 믿었다면 오늘 우리들의 선한 목자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선한 목자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께서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길 잃은 양과 같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인생살이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릅니까? 선한목자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요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신령한 꼴과 신령한 생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 값주고 사신 목장입니다. 그래서 목사라고 하는 것이고 목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장에는 항상 영적으로 야들 야들한 새로 돋은 풀과 반석에 솟구치는 미네랄 생수를 늘  준비해 놓으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양인 우리들은 이 목장에 나와서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쉼과 치유와 회복과 승리를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사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나는 주님의 양이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행복해야 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는 노래를 부르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선한 목자되신 주님이 약속해 놓으셨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겔 34: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