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주의 선하심을 맛 본 사람/(시 34:4-10)

미션(cmc) 2014. 6. 30. 16:07

주의 선하심을 맛 본 사람

(시 34:4-10)


(시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시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께서 천국을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실 때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짝밭에, 어떤 씨는 가시떨기에 떨어져서 결실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좋은 밭에 뿌려진 씨만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밭에 뿌려진 씨가 왜 모두 다 백배의 결실을 하지 못하고 어떤 씨는 불과 삼십 배의 결실 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씨를 땅에 심는다고 해서 다 싹이 나서 자라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며 어떤 씨는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로 죽어버리고, 어떤 씨는 싹이 나서 가뭄과 홍수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리기도 합니다.

 풍성한 결실은 자연적으로나 우연으로가 아니라 반드시 이겨내야만 하는 가뭄이나 홍수나 병충해와 같은 자연이 주는 혹독한 고난을 잘 이겨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라 성숙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을 잘 이겨내야만 합니다. 

복음을 위해 누구보다 혹독한 고난을 많이 겪은 사도 바울이 바나바에 함께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들어가서 제자들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필수과정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며, 왜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같은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남다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1. 고난 속에 감추신 은혜

 오늘 시편은 머리에서 나온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신앙고백이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시 임을 오늘 성경 1절 표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절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라고 한 표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자기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윗을 정적으로 알고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신기한 것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시 34:1)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사울왕은 다윗이 자기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인기가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윗을 정적으로 알고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신기한 것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사울 왕의 사위인 다윗이 사울왕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 불참하였을 때 사울이 요나단에게 그 까닭을 물었을 때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에 가서 온 가족과 더불어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허락하였다’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을 하였습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그래 난 네가 이새의 아들 다윗의 편인 줄 알고 있었다. 너는 너뿐만 아니라 너를 낳아 준 네 어미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새의 아들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고, 나라를 가질 수도 없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을 보내어 다윗을 끌고 오너라. 다윗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요나단이 그 말을 듣고 사울 왕에게 “다윗이 왜 죽어야 합니까? 다윗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라고 반문을 하자 너무나 화가 난 사울 왕이 단창을 던져 요나단을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자이기 때문에 사울보다 더 다윗을 미워해야만 g함에도 불구하고 미워하기는 고사하고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정말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다윗에게 알려 눈물의 이별을 한 후 다윗은 사울을 피해 멀리 도망하였습니다.

 다윗은 멀리 놉 땅으로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떡 다섯덩이를 구했으나 없자 제사장이나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인 진설병과, 보관 중인 과거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었던 칼을 받아 가지고 이방 나라 가드 왕 아기스에게 찾아갔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고 두려워하자 다윗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대문짝에 낙서를 하고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며 미친체하였을 때 아기스와 부하들이 꼼짝없이 속으면서 다윗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되었습니다.

(삼상 21: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다윗은 무사히 위험한 고비들을 넘기고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였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사백여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죽음의 고비를 겪으면서 캐낸 보화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본 것입니다.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기서 ‘맛보아’라는 말(!['f;, 타암)은 ‘맛보다, 먹다, 지각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음식의 간을 보는 것과 같은 뜻이고, ‘알지어다’라는 말(ha;r, 라아)은 ‘조사하다’ 라는 뜻으로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관찰하고 경험하여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화

 제가 나이가 들면서 견과류 종류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 호두의 효능을 보니까 1) 동맥경화예방, 피부노화개선, 뇌기능강화, 폐기능강화에 좋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호두는 칼슘과 철분이 함유되어 체력을 강화해주고, 생선에만 있는 줄 알고 있는 오메가 3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종양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호두가 그렇게 좋다고 하지만 호두는 돌처럼 딱딱한 껍질에 쌓여 있기 때문에 알맹이를 까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기계로 껍질을 다 제거하기 때문에 포장된 것을 언제든지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껍질을 까는 것이 번거로웠지만 그 속에 고소한 알맹이의 맛을 알기 때문에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경험하게 하신 고난이라는 두꺼운 껍질 속에 하나님이 감춰 놓으신 맛있는 알맹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은 하나마나 한 고난이나 쓸데없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잘 이긴 자에게 호두 알맹이처럼 맛있는 것을 맛보게 하시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2. 시편 기자가 맛본 은혜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그처럼 아무도 돕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한 없이 약자처럼 보였고 사울 왕은 대적이 없는 강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우심을 구하였을 때마다 건지셨다는 말이 세 번 반복됨으로 완벽한 구원을 뜻하고 있습니다.


 1) 두려움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그러나 시편기자는 그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시편 기자를 고난 중에 밀물 듯이 밀려드는 두려움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시 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여기서 ‘두려움’ 이라는 말(hr;Wgm], 메구라)은 마치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일 밤낮 동안 갇혀 있는 것처럼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였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간구’‘라는 말(vr'D, 다라쉬)과 ’응답‘이라는 말(hn:[;, 아나)과 ’건지셨도다‘ 라는 말(lx'n, 나찰)은 모두 다 완료형으로 확고 불변한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와 함께 하실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고난을 경험할 때 마다 하나님이 시편 기자를 두려움에서 건지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시편 기자의 마음속에 요동치는 두려운 마음이 없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제거하여 주시고, 구출하여 주심으로 상황이 종료되거나 역전되게 하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2) 환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시 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편 기자가 경험한 단 한 건의 고통이나 환난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인데 시편 기자는 마치 불꽃놀이처럼 거듭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으로 고난을 당할 때 매번 모든 두려움, 모든 환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총체적인 고난을 겪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환난’이라는 말(hr;x; 차라))은 ‘곤난, 고통, 고난’ 재난‘이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앞서 간구라는 표현이 '부르짖음‘이라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시편 기자를 환난 중에서 완벽하게 구출하여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 둘러 지키시며 건지시는 하나님

(시 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여기서 '진치고‘라는 말(hn;j, 하나)은 ’장막을 치거나, 전쟁시에 방어진을 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건지시는도다’라는 말($l'j, 할라츠))은 ‘끌어내다, 구원하다’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미 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구원하여 주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시편기자 다윗은 가드 왕 앞에서 꼼짝없이 죽을 위기였습니다. 그에게 구원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기스 왕이 미친체한 그의 연기를 진실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자기 앞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간구를 들으시고 아기스의 눈과 판단을 어둡게 하심으로 다윗을 위기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아기스에게서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의 도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그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맛본 시편 기자는 오늘 성경 본문에 거듭하여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시편 기자는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전도입니다.

(시 34: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2) 시편 기자는 다른 사람들도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기를 권하였습니다.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다른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양육입니다.

(시 34: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자의 삶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야 할 두 가지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또 하나는 이웃과의 대인관계입니다.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본 보여준 사람이 바로 오늘 시편 기자 다윗입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주의 선하심을 맛본 시편 기자의 삶은 한 마디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은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송축하자고 감격적인 어조로 소리 높이 외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 만이 아닙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만을 자랑하며 여호와를 광대하신 그 이름을 자기와 함께 찬양하자고 다른 사람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시편 기자 다윗이 경험하지 못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선하심을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은총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히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2) 이웃과의 관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 균형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이웃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를 아울러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시 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왜냐하면 입으로 나오는 모든 것들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거짓이 있으면 입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마음이 정직하면 입술에 거짓을 멀리하게 되고,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평화를 도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미워하시며 여호와의 눈과 귀는 항상 여호와의 은혜를 맛본 사람을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시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우리는 우리 주님 안에서 선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고 선한 일에 열심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악한 말을 금하는 것이며, 둘째는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좇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 17:20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겨자씨만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1) 생명력이 있는 믿음 곧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항상 성장하고 변화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는 믿음입니다.

 2) 남에게 유익을 주는 믿음 입니다. 막4:32에 "겨자씨가 싹이 나서 새들이 깃들일 만큼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새들이 깃들일 수 있다는 것은 새들에게 유익을 준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나에게만 유익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유익이 되는 덕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쓸모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이지만 자라나서 유익하게 되는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생명력이 있어서 자라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경외하는가 하는 것은 바른 인간관계를 통해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바른 인간관계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의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입술에 거짓을 버리고 죄악을 버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어지는 것도 역시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많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시편 기자처럼 여러 가지 고난과 위기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그 위기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사는 동안 감기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러나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우는 소리를 들은 엄마는 만사를 제쳐 놓고 아이에게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다면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고자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구할 때 나를 지켜보시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심으로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도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여 주십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위험 속에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둘러 진 치게 하심으로 보호하여 주십니다.

 3)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기에 무엇이 부족한 지를 다 아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십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고난을 통해서 한 단계 더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1) 반신반의하는 단계에서 확신의 단계로, 

 2) 확신하는 단계에서 선하심을 체험하는 단계로, 

 3) 나 혼자 잘 믿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자랑하는 단계로 더더욱 자라가야 합니다. 

 4) 예배 시간만 하나님을 잘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특히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단계로 보다 더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5)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답게 이웃과의 관계도  

 가) 거짓을 버리고 

 나) 악을 미워하고 

 다) 선을 좋아하고 

 라) 화평을 도모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의지로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면서 그렇게 살라고 명령하심은 우리가 그렇게 살고자 할 때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시 34:18) “여호와께서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 곁에 계시고 뉘우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시 34:19) “의인들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내십니다.” (시 34:20) “그분이 의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시리니 그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 34:21) “악은 악인들을 죽일 것이며 의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버림받을 것입니다.”(시 34:2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니 그분께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