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들
(시 33:1-5)
(시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시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시 33: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오늘 성경 말씀은 저와 같은 설교자에게 찬양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으로 지상 교회에서 힘써 강조해야 할 것은 기도나 설교 말씀 못지않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아무리 자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평소에 설교 말씀과 기도의 중요성은 자주 강조하면서도 찬송을 강조하는 것은 자주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설교나 기도는 지상 교회에서만 필요한 것이지 정작 천상 교회에 가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지만 찬송은 지상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천상교회에서도 영원히 필요하다는 것을 요한 계시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상교회에 가서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설교와 기도는 필요 없게 되고 크고 작은 자를 막론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만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 19: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목적도,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도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 나라 백성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함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엡 1:4)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일을 정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친히 보시기에 한 점 흠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는 그분의 사랑 속에 싸여 있는 것입니다.” (엡 1:5)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 대신 죽게 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이 계획을 실천하셨습니다.” (엡 1:6) “놀라운 은총과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의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그 노래를 전문적으로 부르는 찬양대를 만들었고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여 왔습니다.
또한 성경 여러 곳에 찬양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값없이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양대만이 아니라 온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예배 시간만이 아니라 마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노래를 즐겨 듣고 즐겨 부르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일상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것이 생활화되고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한한 인간이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시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qyDIx' 찻디크 )은 결코 행위가 완전한 자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범죄한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완전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롬 3:10).
다만 의인이 있다면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부패한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노아를 가리켜 당대 의인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는 결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일컬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시대나 오늘이나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로 오늘 우리가 바로 그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마땅히 할 바’ 라는 말(hw
예 화
세계적인 명곡 사랑의 기쁨이라는 노래를 바이올린으로 탁월하게 연주한 세계적인 바이오린 연주자를 손꼽는 다면 오스트리아의 클라이스러일 것입니다.
불과 일곱 살의 나이에 그 유명한 빈 음악원에 들어갈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알파벳을 알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악보부터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 교만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게 됨은 결코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새들이 그 대가를 요구하는 걸 보셨나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재능을 내 명예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나는 항상 새로운 소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적합하게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시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여기서 ‘진실하시도다’라는 말(hn:Wma>, 에무나 )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아멘이라는 말로 ‘확고부동, 신실, 성실’을 뜻하는 말입니다.
과연 누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인가? 의 여부는 그 사람의 언행이 일치한가? 의 여부로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언행이 100 프로 일치하는 사람은 만나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 말씀이 올바를 뿐 아니라 그 하신 일과 행하시는 일과 행하실 일이 모두 다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며 아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 중에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실한 말씀인가를 증거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 전의 세상은 아무런 가능성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흑암과 공허와 혼돈이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세상을 향해 단지 말씀만 하셨을 뿐인데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말씀대로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창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 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세상에서 창조주 하나님 외에 또 어느 누가 그렇게 하였으며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오직 창조주 하나님뿐이라면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일을 신실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처럼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일이 일치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시 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셋째, 대자연의 성전 앞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고 보니 무한한 감사가 제 마음에 들어찼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저를 있게 하신 것에 감사했고, 그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한 번의 고귀한 인생을 허락하셨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마련하셔서 그것을 보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향해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도 나를 아신다니,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창조자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에 그분 안에서 우리의 존재도 영원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즐겁게 기쁘게
(시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여기서 ‘수금’(r/NK, 킨노르)은 구약 시대에 모든 악기 중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겨졌던 현악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되었던 예배용 악기였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오늘날 찬양대와 같이 노래라는 자들과 여러 악기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되었던 악기입니다. 다윗은 특별히 조직된 찬양대에 명령하기를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고 하였습니다.
(대상 15: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여기서 ‘즐거운 소리’라는 말(hj;m]c, 쉬므하)은 ‘기쁨, 즐거움, 유쾌함’의 소리라는 뜻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성가대와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 웅장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와 같은 다윗의 찬양이 오늘 날까지 그대로 전수되어 교회마다 찬양대를 세워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되 소리 높여 웅장하게 찬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찬양의 가사까지 새 노래로 노래하고, 즐거운 소리로 노래하고, 아름답게 연주하라고 구체적으로 찬양하는 방법까지 명시하였습니다.
(시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여기서 ‘새 노래’라는 말(vd;j, 하다쉬 )은 새로 작곡한 노래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 노래와 달리 때 묻지 않은 신선한 노래 즉 영원히 새로우신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기를 연주할 때는 아름답게 연주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아름답게’라는 말(bf'y:, 야타브)은 ‘잘하다, 적절하다, 즐겁게 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마음으로 연주를 해야 할 것인가? 를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완벽한 악기입니다. 또한 목소리는 어느 곳이든 들고 갈 수 있는 악기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되 무엇보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걸어가고 머무는 일상에서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성도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어떤 악기로 얼마나 잘 연주하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은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감사함으로 즐겁게 부르는 찬양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항상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것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우리의 마음을 함몰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일 일상생활이 즐겁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때만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몰아가는 근심과 염려가 밀려올 때 그것을 물리치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설령 가난하여 드릴 예물이 없고, 육신이 연약하여 몸을 들여 충성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길도 찬양하는 입니다.
설령 가난하여 드릴 예물이 없고, 육신이 연약하여 몸을 들여 충성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길도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을 즐겁게 찬양해야 한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을 사노라면, 때로는 하나도 기쁘지 않고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를 침몰시키려고 몰려오던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썰물처럼 우리를 떠나게 하는 능력이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무수히 채찍질을 당하여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신 감사하며, 한숨대신 찬송을 불렀을 때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과 더불어 간수의 얼어붙었던 마음까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은 크고 작고, 생명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기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답니다.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는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당을 문을 열고 나가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라는 대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영생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값없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악기를 동원해서라도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실천에 옳기기를 축원합니다.
(시 113: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1. 주님과 함께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나이다.
2. 나 염려하잖아도 내 쓸 것 아시나니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 오리라.
후렴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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