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복을 받은 사람
(시 32:1-6)
(시 32:1) “[다윗의 마스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 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사람은 너 나를 막론하고 자신이 잘못한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드러내기 보다는 아무도 모르게 덮어버리고 싶은 것이 타락한 인간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설교도 죄를 지적하는 회개의 설교보다 축복에 대한 설교를 더 선호합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회중이 회개와 거리가 먼 정의로운 삶을 살기 때문에 회개의 설교가 할 필요 없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시편과 로마서에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3: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롬 3: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롬 3:12) “모두가 곁길로 나가 하나같이 쓸모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롬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혀로는 사람을 속인다.” “그들의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죄는 암세포와 같아서 처음 한 개의 암세포가 생겨나서 분열을 거듭하여 조기 발견이 가능한 1g 크기의 덩어리가 되기까지 대략 5 ~ 1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암 덩어리가 1G 이라고 하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 점점 급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조기 치료하지 않으면 급속히 진행하고 온 몸에 전이되게되면 치료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죄도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흔히 누구에게나 있는 탐욕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차단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무서운 죄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더불어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함께 있는 것이며,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사망에 이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를 마음에 품고서도 그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즐기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죄가 암 덩어리처럼 커져서 나중에는 파멸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 나를 막론하고 그와 같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게 하기 위해 성경을 주셨고 또한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그와 같은 죄를 조기 발견하게 하는 효능과 그 죄를 회개시켜 clfytls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오늘 성경 말씀이 그같은 말씀임을 깨닫고 우리 모두 말씀을 전하고 듣는 중에 우리의 감춰진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사죄함의 축복을 받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의 범죄
아담의 자손인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아담의 타락한 성품을 이어받은 죄인입니다. 그 증거는 십계명 앞에서 그 사람의 일평생을 저울질한다면 열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마치 건강 여부를 진단하기 위해 온 몸 구석구석 세포 하나까지 다 살피는 대형병원의 암 검사 진단기처럼 사람의 숨은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적 진단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은 상대적인 평가일 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세워 놓게 되면 죄없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일 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믿음의 사람입니다. 일평생 하나님만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철저하게 복종한 사람이고 온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성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오늘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을 가진 허물 많은 죄인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왕들은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래서 다윗은 봄이 오자, 자기 종인 요압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암몬 사람들을 무찌르고 랍바 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다윗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왕궁의 지붕 위를 거닐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자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다윗은 자기 종들을 보내어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한 종이 대답했습니다.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세바로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다윗은 사람들을 보내 밧세바를 데리고 오게 했습니다. 밧세바가 오자, 다윗은 그 여자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강퍅하여져서 간사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밧세바의 남편 헷 사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귀가시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잠을 자도록 특별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 밖에서 왕의 모든 신하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윗이 자기 의도와 달리 우리가 집에 가서 아내와 잠을 자지 않은 이유를 물었을 때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의 군인들이 장막에 머물고 요압과 그의 부하들도 들에서 잠을 자는데 어찌 자기 만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제 아내와 함께 잠자리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특별상을 주어야 충성스런 부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음모를 꾸몄습니다. 우리아를 왕궁에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며 취하게 만들었지만, 역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왕의 신하들과 함께 왕궁 문 밖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를 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보낸 다음 나중에 우리아만 혼자 남겨 두고 퇴각하여 우리아를 싸움터에서 죽게 하라”는 편지와 함께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었습니다.
아무런 영문을 모르는 요압은 다윗이 시키는대로 하여 마침내 우리아가 장렬하게 전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제 자신의 범죄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밧세바가 남편을 장사한 후에 왕궁으로 불러 그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다윗의 간사한 죄를 눈치 채지 못하는 완전범죄가 된 것입니다.
그 같은 다윗을 누구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회개는 고사하고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뻔뻔한 임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타락한 속성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범죄 과정을 다 지켜 보셨고 다 아셨지만 다윗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으나 다윗은 회개는 고사하고 티끌만큼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죄를 깨우쳐 책망하게 하셨습니다.
(삼하 12: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삼하 12: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심지어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이 하나님을 업신여겼다고 준엄한 책망을 하셨습니다.
(삼하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시편 기자 다윗의 범죄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나는 절대로 아닙니다’ 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암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윗과 같은 간사하고 파렴치한 죄를 이미 과거에 범했거나, 지금 범하고 있거나, 아니면 언젠가 범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다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2. 다윗의 회개
오늘 시편 기자 다윗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고 점차 대범해지면서 마침내 우리야를 전사하게 만드는 간접 살인죄까지도 서슴치 않은 파렴치한 죄를 범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단으로부터 죄를 지적받고 난 후에 비로소 죄에 대한 자각과 통증이 다윗의 영혼과 육신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시 6:6) “흐느껴 울다가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이 되면 밤마다 흘러 넘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여 침상은 흥건히 젖고 이부자리도 눈물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에 대해 징계의 채찍을 드셨습니다. 아들 암논 왕자가 이복누이 다말을 성폭행하고 아들 압살롬이 왕좌를 탐하여 반역을 하고 심지어 다윗의 후궁들을 왕궁 옥상에다 장막을 치고 온 이스라엘 무리가 보는 가운데 공공연하게 동침을 하는 패륜을 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뼛속 깊이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고 온종일 괴로워 신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가리지 않고 시편 기자를 손으로 짓누르시기 때문인데 마치 무더운 여름철에 과일을 쥬스기에 넣어 그 즙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짜내는 것처럼 압박하시기 때문에 진액이 빠져 탈진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시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여기서 뼈가 ‘쇠하였도다’라는 말(hl;B;, 발라) )은 ‘늙다, 닳아서 해어지다. 쇠약해지다‘라는 뜻으로 인체 중에 가장 단단 부위가 뼈인데 그 뼈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그러나 나단 선지자로부터 죄를 지적받고 자신의 죄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밤마다 눈물을 쏟으며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마침내 시편 기자 다윗의 눈물을 보시고 사죄를 선언하여 주셨습니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여기서 ‘사하셨나니’라는 말(rb'[;, 아바르))은 ‘지나가다, 사라지다, 소멸하다, 건너가다’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확정된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범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죄와 같고,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의 채찍은 마치 다윗을 버리신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한번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셨으면 설령 범죄하였기 때문에 채찍으로 치시고 질병으로 치실지라도 다시 싸매시고 고치셔서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불변적인 사랑입니다.
(삼하 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여기서 ‘여디디야’라는 말(hy:d]ydiy, 예디데야)은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이라는 뜻의 고유명사이고 ‘하시니’라는 말(ar;q, 카라) )은 '부르다, 선포하다‘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미완료로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범죄 한 다윗을 미워하셨다면 회개의 기회조차 없이 하나님께서 즉각 죽게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고난의 형벌을 통해서 결국 회개하게 하신 것은 회개하기만 하면 그의 죄를 사하시고 그를 통해 계획하셨던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죄에 대한 징계가 아무리 엄중하다고 할지라도 그 때문에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우리가 이 문제를 상의해 보자! 너희가 아무리 죄악에 찌들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너희의 죄악을 씻어 주리라. 금방 떨어진 눈송이보다도 더 희게 하리라. 너희가 진홍같이 붉게 물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너희를 양털처럼 희게 씻어 주리라.”
3. 다윗의 행복
오늘 시편기자를 보면 죄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고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으며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다윗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죄에 성품까지 죽이는 항암치료를 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시편에 보면 다윗의 회개를 담은 시가 일곱 편이 있는데(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 매 시편 구절마다 절절한 회개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를 보면 죄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고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으며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시 32: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실패가 아니라 죄로 인해서 심적으로 육적으로 영적으로 혹독한 고통을 맛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케 하시고 눈물 뿌려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의 그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하는 마음과 회개한 자에게 내리시는 사죄의 은총임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죄함을 받는 길인 회개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회개는 자기 죄 때문에 슬퍼하며 우는 것일까요? 그 죄 때문에 일부러 자신을 학대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요?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갖 죄를 용서함 받는 회개가 무엇일까요?
오늘 시편 기자는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그 죄를 자복하고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여기서 ‘자복’이라는 말(rm'a: 아마르)은 ‘말하다, 이야기 하다, 마음으로 말하다, 기도하다, 선언하다. 약속하다’라는 뜻의 미 완료형으로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와서 낱낱이 아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낱낱이 말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연이어 ‘죄를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단 한번이 아니라 일평생 중단하지 말고 죄를 범할 때마다 자복하고 아뢰고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의 기도입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회개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회개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너무 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를 이론대로 결코 회개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회개는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케 하시는 성령께서 내 양심을 두드리시고, 내 숨은 죄를 드러내어 보여 주시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는지를 깨닫게 하여 주실 때 죄를 미워하고, 죄를 끊어버리는 회개가 가능합니다.
그와 같은 회개에는 반드시 사죄의 확신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참된 회개가 아니라면 그와 같은 사죄의 확신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죄의 확신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시편 기자가 경험한 하나님은 내 죄를 덮어 버려 주셨다. 그래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서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확신으로 말미암은 마음에 기쁨입니다.
(시 32:1) “[다윗의 마스길]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정작 인간의 이성이나 의지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게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마음을 주심으로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의 표현입니다. 범죄는 마음에 고통과 육신의 죽음과 영원한 심판을 가져다주지만 회개는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며 마음에 사죄의 기쁨과 감사를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말이 마치 구약의 도피성처럼 범죄하고 회개치 아니하다가 멸망하지 않도록 신구약 성경 곳곳에 회개라는 말을 여러 번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시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겔 18: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범죄 했거든 회개를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시 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회개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이며 축복인 까닭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첫째, 홍수 즉 예기치 못한 재난이 그에게 덮쳐 오지 않을 것이고 둘째, 하나님께서 은신처가 되어 주시어 그를 환난에서 보호하실 것이며 셋째, 그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32: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주께서 회개하는 자에게 갈 길을 가르쳐 보여주시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훈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 32: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회개의 축복을 불신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마치 고집센 당나귀와 같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재갈과 굴레와 같은 고통으로 다루신다는 것입니다.
(시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평생 살아가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만큼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죄를 먹기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일평생 단 한 가지도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죽음이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는 멀리하고, 지은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에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남을 정죄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남의 코는 고사하고 내 코가 석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회개가 필요한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보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고,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비참한 종말을 내어다 보면서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누가 악인이고 누가 의인일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죄를 지은 사람은 악인이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의인일까요?
아닙니다.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악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의인은 죄를 범했지만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는 슬픔과 고통이 따르지만 회개하는 의인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좋은 것들을 빼앗아 가는 도둑놈이고 사기꾼입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그 도둑놈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영적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만일 말씀과 기도를 멀리한다면 그것은 죄를 초청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와 같은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회개라는 치유와 회복과 사죄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은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범죄한 죄인이 사죄함을 받는 길은 나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어린양처럼 십자가에 달려 대신 피 흘려 죽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숨은 죄를 자복하고 주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깨끗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것이 바로 오늘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며 또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가장 귀한 주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주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복입니다.
(시 32:10) “악인들에게는 슬픔이 많겠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변함없는 사랑이 그를 감쌀 것입니다.” (시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음이 정직한 너희 모든 사람들아, 기뻐 외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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