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하나님이 꿈을 주신 가정 / (창 22:6-12)

미션(cmc) 2014. 5. 30. 10:19

  • 하나님이 꿈을 주신 가정  

     (창 22:6-12)

    (창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유성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송이버섯처럼 땅에서 솟아나지 않고 다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는 본래 남남이었으나 서로 사랑하므로 가정을 이룸으로 자녀들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가정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가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게 보시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지어 아담의 돕는 배필인 아내가 되게 하여 주심으로 지상에 최초의 가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성격 차이가 있고 삶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불화하거나 이혼하거나 해체하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오늘 온 가족 예배에 참석한 어린이들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엄마 아빠는 우리 어린이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아기는 이 다음에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한번 엄마 아빠에게 물어 보세요. 아빠 나에 대한 꿈이 무엇이어요? 엄마 나에 대한 꿈이 무엇이어요? 

     엄마 아빠는 여러 어린이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엄마 아빠는 여러 분들을 키우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여러 어린이들이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물어 보세요. 정말 내가 꿈을 이룰 때까지 엄마 아빠가 있는 힘을 다해 도와 주실거에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으럼!’화알짝 웃으면서 대답하실 것입니다.

     한번 실습해 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엄마 아빠! 나에 대한 꿈이 무엇이에요? 두 번 째 질문 제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껏 도와 주실거예요? 라고 말입니다.

     우리 어린들이 너무너무 사랑하시고 우리 어린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도와주시겠다는 엄마 아빠의 그 사랑은 누가 주었을 까요? 어디서 왔을까요? 

     그 사랑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고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워 가정을 이루신 다음 그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꿈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창 1:26)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어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27)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창 1:28)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해 땅에 가득하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기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과연 그 꿈을 이루어드렸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마치 술주정뱅이가 길가에 예쁘게 만들어 놓은 화단을 짓밟고 화분을 집어 던져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사단이 하나님의 만드신 가정을 죄로 짓밟아 뭉개버림으로 지상에 모든 가정에는 꿈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학교를 보내나? 사소한 것 때문에 부부가 싸움을 하고 형제가 싸움을 하고, 사소한 문제로 가정이 깨어지고 그 때문에 자녀들의 미래의 꿈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불행을 대물림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가정들을 보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셨고 가정들을 통해서 인류가 번성하지만 번성하면 할수록 인간들의 죄악은 더욱 집단화되고 조직적이 되고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꿈과 희망은 어느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노아 홍수 심판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하나님이 바벨탑을 무너뜨리셨고, 그 때문에 서로 분열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강아지도 자기 주인을 아는 법인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지구상에 흩어져 살면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지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에 절하며 복을 달라고 비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세상을 보시면서 얼마나 속상해 하셨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너무 너무 실망하셔서 그러한 가정들을 포기해 버리셨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치 홍수로 인해 논밭이 쓸려 지나갔지만 농부는 그 들판에 가서 쓰러진 곡식을 일으켜 세우고 무너지 뚝을 다시 돋우고 다시 씨를 뿌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악으로 무너진 인생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작하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의 주인공인 아브람의 가정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새로운 꿈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1.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꿈

     지구상에 모든 가정들이 사단의 지배아래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죄와 고통 속에 죽을 향해 나아가는 행진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아브람이라는 사람의 가정을 불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가정을 불러내어 장차 아브람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꿈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 꿈은 다른 가정들은 불행하게 살지라도 아브람의 가정만은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창 12:2)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의 가정도 이미 조상대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그것을 팔아 장사를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75년 동안 살아왔지만 대를 이을 자녀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의 가정은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가정이었고 설령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갈지라도 결코 그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더욱 없어지고 마는 불행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아브람의 가정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셔서 아브람의 가정만 복을 받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가정을 통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복을 받고 잘되게 하는 복의 근원, 복의 종자 씨가 되게 하시겠다는 꿈이었습니다.

     종자씨라는 말은 농부가 가을에 거둔 곡식을 겨울 동안 다 까먹을지라도 봄이 오면 들판에 뿌리는 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씨가 얼마되지 않지만 가을이 되면 그것이 자라서 온 들판을 곡식으로 뒤덮게 하는 작은 씨를 종자씨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가정을 축복의 종자씨가 되게 하셔서 어느 가정이든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번역한 성경을 보니 (갈 3:8) “성경은 이방인일지라도 그들이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미리 내다보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너처럼 나를 의지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릴 것이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2. 아브라함의 가정에 축복의 첫 열매

     온 세상의 가정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 때 아브람의 가정을 택하시고 불러내어 온 세상의 가정들이 행복하겠다는 꿈을 주신 아브람의 가정에는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창 12:2)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가정에 약속하신 1) 큰 나라를 만들고 2) 이름이 온 세상에 퍼지고 3) 모든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된다는 꿈이 얼마나 거창합니까?  그러나 아브람의 가정의 현실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전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아브람의 나이가 비록 75 세라고 할지라도 아브람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나야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무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 희망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에게는 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사래 부부는 하나님이 그 가정에 주신 꿈을 믿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말씀대로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창 12:4) “그리하여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갔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창 12:5) “그는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그들이 모은 모든 재산과 하란에서 그들이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람의 부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꿈이 더디 이루어질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오래 참는 중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 살이고, 사라의 나이가 구십 살 되어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꿈의 첫 열매인 이삭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창 21: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하나님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가정에 크고 놀라운 꿈을 약속하셨을지라도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꿈은 말짱 헛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꿈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첫 열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한 알의 밀을 땅에 심는 이유는 그 한 알의 밀이 백배 육십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귤나무입니다. 예전에 제주도 사람들은 그 귤나무 한 그루가 자녀들의 등록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키워 열매를 따서 팔아가지고 자녀들을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바다 건너 육지로 유학을 보내어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을 통해서 이루기를 바라는 꿈나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여러분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꿈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이 “먹다 일하다 자다, 먹다 일하다 자다“ 라는 다람쥐 쳇 바퀴 돌리는 것과 같은 삶을 한 평생 살다가 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이웃에게 복을 나누고 생명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나에게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에게 보내주셔서 나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시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살게 되고, 행복하게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그러한 꿈을 이루는 일을 혼자서가 아니라 부부가 힘을 합해서 부부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힘을 합해서 이루게 하시려고 가정을 주신 것입니다.

     그 가정에 꿈나무가 바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태어나게 하신 이삭과 같은 우리 가정의 꿈을 이루는 첫 열매인 우리 어린이들인 것입니다. 비록 엄마 아빠는 유명하지 못하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겨우 우리 어린이들만을 키우고 학교를 보내고 교회를 함께 다니는 것 밖에 할 수 없을지라도 이삭과 같은 꿈의 첫 열매인 우리 어린이들을 통해서 이웃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 가정을 주셨고 우리 자녀들을 주신 것입니다. 


     (시 127:3) “자녀는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며 상급으로 주신 그의 축복이다.” (시 127:4) “젊었을 때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 안에 있는 화살 같아서” (시 127:5) “그런 화살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가 법정에서 자기 원수를 만나도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


     3. 꿈을 이루기 위해 시험을 극복하는 가정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반드시 이겨야 할 것은 각종 질병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기가 태어나서 맞아야 할 주사는 페구균, 뇌수막염, 로타 장염 등으로 주사 비용만 29만원이 드는데 그 중에 페구균 주사는 4차까지 맞아야 한다고 하며 한번 맞는데 십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 예방접종은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약한 균입니다. 그것을 맞아서 아기가 저항력을 키워 진짜 강한 균이 몸에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과 가정에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시험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인 아담의 가정을 넘어뜨린 사단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이기게 하기 위해 마치 영적 예방주사와 같은 시험을 직접하십니다. 그래서 그 시험을 극복함으로 장차 올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게하시겠다고 하신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같은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꿈을 주신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시험은 다름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꿈나무의 첫 열매인 이삭을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마치 짐승을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그것을 전부 태워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는 것처럼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그같은 시험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이 순종하면 되는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순종한다고 할지라도 다 큰 아들 이삭이 몸부림을 치거나 늙은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치거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길길이 날뛰면서 당신 나이가 늙어서 치매 걸렸느냐?고  미쳤느냐?고 하나님이 절대로 그런 명령을 하실 분이 아니라고 거부하면 할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더불어 시험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그와 같은 고난도의 시험을 온 가족이 힘을 합해 무사회 통과하여 승리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꿈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가문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복된 가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순종으로 잘 이겼습니다.


    (창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여기서 ‘아침에 일찍이’라는 말(rq,B, 보케르)은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을 뜻하는 말이고, ‘일어나’라는 말(!k'v, 샤캄)은 와우 계속법 미완료로 일찍 이러나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같은 아브라함의 행위가 진심이라는 증거는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고 갔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삼일 길이나 걸리는 모리아 산을 지정하신 것은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아브라함이 얼마든지 변심할 수 있는 기간이었으나 아브라함은 끝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백점 만점을 주심으로 시험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 이삭도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순종으로 잘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시험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만 주신 시험이 아니라 온 가족이 풀어야 할 공동 과제였습니다. 그 때 이삭의 나이는 장작을 지고 모리아산으로 올라갈 정도로 성숙한 상태였습니다.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여기서 내가 ‘아이’와 함께 라고 한 아이라는 말(r['n", 나아르)은 ‘아이, 소년, 젊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늙은 아브라함을 밀쳐 낼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를 묶든, 제단에 올려놓든지, 칼을 들어 목을 치려고 하든지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창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우리는 그와 같은 이삭의 모습에 장차 오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입니다.


     3) 사라도 하나님이 주신 시험을 순종으로 잘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아브라함에게만 말씀하셨습니다. 맨 처음 고향을 떠나는 일도, 그리고 오늘 성경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시험도 아브라함에게만 말씀하신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사라는 얼마든지 자기의 생각을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이삭을 주신 하나님이 절대로 그렇게 무자비한 명령을 하실이가 없다고 당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당신이 미쳤다고, 치매에 걸린 것이라고, 사단의 시험에 빠진 것이라고 반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자식만이 아니라 사라의 자식도 되기 때문에 사라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면 아무리 아브라함이 순종을 하고 싶어도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사라의 침묵만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하는 행위에 대해서 아무런 사라의 반응을 볼 수 없습니다. 만일 사라가 그렇게 했다면 아브라함은 더욱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라가 침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지금까지 사라는 아브라함의 하는 일에 절대 순종을 하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라를 가리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uJpakouvw, 휘파쿠오)은 ‘듣다, 대답하다, 복종하다, 따르다, 열다’라는 뜻으로 지체하지 않고 단번에 순종한 것을 뜻하는 과거 능동형으로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원하여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명령에 복종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시험은,  어느 한 식구에게 하신 시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온 가족에게 하신 시험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그 시험을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아내는 아내의 위치에서, 자식은 자식의 위치에서 순종이라는 미덕으로 잘 감당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백점 만점을 주셨습니다.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그와 같이 시험을 잘 이긴 가정에게 더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22:16)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나에게 바치려 했으므로, 맹세코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겠노라.” (창 22:17) “내가 분명히 너에게 복을 주고 또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 네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며, 네 자손은 원수의 성들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창 22: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므로, 네 자손을 통해 땅 위의 모든 나라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의 족보의 시작인 (마 1:1)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라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맨 처음 기록되는 영광스럽고 복된 가문이 된 것입니다.  

     그 비결은 딱 하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삭은 아버지께, 사라는 남편에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온 가족이 순종하였을 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아무리 아브라함의 가정을 넘어뜨리려고 했으나 예수님이 오실 따까지 아브라함의 가문은 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아브라함의 가정처럼 시험을 믿음과 순종으로 이겨 승리함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