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명령, 인간의 도리
(엡 6:1-3)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를 기념하여 특별히 감사하는 주일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부모 없이 혼자 힘으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부모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또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은 기독교만의 윤리가 아니라 모든 종교의 근간이 되는 만인의 윤리 도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부모 공경하라 하는 것과 다른 종교나 일반윤리에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기독교가 말하는 부모 공경이 다른 종교나 윤리에서 가르치는 효도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 참된 효도를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자녀들이 되어 복된 가정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
참된 종교에는 거기에 걸 맞는 참된 윤리와 도덕과 규범이 부교재처럼 반드시 따르게 마련입니다. 잘못된 종교는 반드시 잘못된 윤리를 만들어 내고 또 무조건 그 윤리에 복종할 것을 강요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탄테러를 일으켜 수많은 살상자를 내는 주범들은 이슬람 종교를 믿는 과격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알라를 위해서 자살 테러를 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늘나라에 가서 후한 상을 받는 것을 순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근 나이지리아에서는 과격 이슬람 무장 단체가 여학교에 총을 쏘며 난입해 16~18세 여학생 수백 명을 강제로 트럭에 태워 성폭행한 뒤 1인당 2000나이라(약 1만4000원)에 팔려 강제 결혼을 당했다고 영국 신문인 더 타임스가 지난 30일 보도했습니다. 그들의 여자들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대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잘못된 종교를 믿는 불신앙의 시대는 그 윤리와 도덕도 부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살이하던 에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왕은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가운데 애굽의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번성하는 것을 보고 우려한 나머지 사내아이를 낳게 되면 무조건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할 만큼 포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출 1: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구원하신 후 홍해를 건너 시내산 아래에 이르게 하신 후에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올리셔서 새로운 나라의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새로운 나라의 왕은 애굽의 바로왕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1) 그 분의 이름은 스스로 계시다는 뜻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2) 그 분의 백성은 이스라엘이고,
3) 그 나라의 땅은 가나안이고,
4) 그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은 ‘계명과 율례와 법도’ 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대표하는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 돌비를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법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의 신들과 차별화된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그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과 차별화된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 구체적인 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1- 4 계명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며, 5-10 게명까지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입니다.
그 중에 5계명이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명령하신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되게 하기 위해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라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만 경외하고 자기를 낳아 기르신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임에도 타락한 인간은 불신앙에 빠져 부모에게 불효하는 부도덕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5 계명을 준행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셨고, 침략에서부터 지켜주셨고, 가나안 땅에서 오래 오래 살면서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하고 인간을 왕으로 세우고 나중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을 망각했을 때 존재의 가치를 상실함으로 결국 멸망을 자초하게 된 것이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역사입니다.
2.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이방 사람들과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신 계획이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혈통적인 벽을 깨뜨리시고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지키는 자는 약속하신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실린 이방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인 룻을 꼽을 수 있습니다.
1) 엘리멜렉의 이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암흑시대라고 할 수 있는 사사시대에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가정이 흉년을 만나게 되자 베들레헴 땅을 떠나 이방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라’는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을 떠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압 땅으로 떠난다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모압 땅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2) 모압 땅의 저주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이주한 엘리멜렉의 가정은 모압 땅에 들어가서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장 엘리멜렉이 죽고 뒤를 이어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의 부인 나오미와 모압 땅에서 얻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빈손이 아니었으나 이제 모압 땅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3) 룻의 결심
그제야 나오미는 떠났던 고국과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귀국을 결심하고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나오미의 설득에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1) 함께 가고, 2) 함께 유숙하고 3) 함께 믿고 4) 함께 살고 5) 함께 죽겠노라고 목숨을 걸고 다짐하였습니다.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물론 룻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오미를 버리고 모압에 남아 재혼을 해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나오미가 전해준 하나님을 믿기 위해 불쌍한 나오미를 공경하기 위해 모압대신 베들레헴을 택하였습니다.
4) 룻의 효심
물론 그 뜻은 아름답지만 그 길은 험난하였습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으나 아비멜렉이 고향을 떠날 때 토지를 다 팔아 버렸기 때문에 나오미에게는 땅 한 평이 없었고,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들판에 나가서 이삭을 줍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를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삭줍기를 하면서 심지어 이삭을 주우면서 주인에게 점심을 얻어먹으면서 남긴 것을 싸가지고 와서 종일토록 룻만을 기다리는 나오미에게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룻 2: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룻 2: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5) 룻이 받은 축복
모압 여인인 룻이 베들레헴에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와 같은 성실함과 시모에 대한 극진 효성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룻이 이삭을 줍던 땅 주인 부자 보아스에게 감동을 주어 결국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먹고 마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리멜렉이 팔아먹은 땅을 되찾았고 엘리멜렉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대가 끊겨진 가문의 맥을 다시 이어 다윗의 고조모가 되었습니다.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여인인 룻의 그와 같은 효심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메시아의 족보에 이방 여인인 룻의 이름이 들어가는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룻이 그처럼 영육간에 큰 축복을 받은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경외하고 불쌍한 시모를 공경한 룻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 내리신 상급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이방 여인 룻의 모습은 장차 이방인에게 구원의 복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 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그와 같은 이방 여인 룻의 모습은 장차 이방인에게 구원의 복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효도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유행을 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거룩하시며,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대신 오늘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은 오늘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세상 어떤 신과도 구별된 것처럼 그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도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도 룻처럼 묵묵히 순종하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의 아들 딸들이 부모는 버리고 오직 자식 사랑에만 집착할지라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참된 도리임을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물론 그 길이 룻이 간 길처럼 힘들고 어려운 길처럼 생각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반드시 받게 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제는 교회만 잘 다니는 것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증거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불신자들까지도 인간의 도리라고 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일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잘 공경할 뿐 아니라 가정으로 돌아가서 육신의 부모님도 잘 공경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레]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부모를 공경치 않는 죄 부모만을 거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는 교훈입니다.
성경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이 주신권위라는 점에서 자녀들이 그 앞에 굴복하고 순종하며 공경함으로서 부모를 섬기며 또 그 일로 하나님의 권위와 부모의 권위를 동시에 인정해 드리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엡 6:2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는 말씀 중에 ‘공경’이라는 말은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 라는 뜻으로 함축적으로 “존경하다, 공경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요 5:23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단어와 동일어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책임을 잃어버린 가정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나를 나으시고 기르신 육신의 부모를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게 되면 첫째, 아픈 데가 많아집니다. 둘째, 괜히 외로움을 잘 타게 됩니다. 셋째,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많이 먹지는 않지만 자주 시장함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병원을 자주 가시게 하고, 사소한 말도 신경을 써야 하고, 용돈과 간식이 떨어지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 마디로 부모를 근심하게 하지 말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를 가장 잘 공경하는 것입니다.
잠 15:20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잠 23:24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잠 23:25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부모를 늘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즐겁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중에 최고의 방법이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즐겁게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오해
우리 어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첫사랑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몸은 절대 아프지 않는 어떤 특별한 몸인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 꿈도 품은 적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드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한 가지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짧은 파마 머리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고와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전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단 하루라도 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웃는 걸 모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마냥 기뻐만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외에 아는 여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배가 빨리 불러 와 좋은 음식 앞에서 먼저 일어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것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안주머니에는 늘 돈이 얼마쯤은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운동도 취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깊고 험한 길을 걸어가도 조금도 두려워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한 방울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를 오랫동안 해왔던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자녀로서 진정 어버이의 즐거움을 위해 후회 없는 효도를 다짐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결 론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점차 세월이 갈수록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할 수 있는 경계선이 무너질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누가 신자이고 누가 불신자인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일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우리에게 날마다 은혜를 내려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친히 제정하신 법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우리의 처지나 기분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신다는 기복주의는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잘못된 사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구태여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 없다는 무신론적인 발상 역시 더 더욱 경계해야 할 불신앙적인 사고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한번 우리 주변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종교의 종말이 어떤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만 구원받겠다고 부모도 가족도 버리라는 잘못된 윤리는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
설령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신앙 양심까지 다 버리고 내 힘으로 잘 살아보겠노라고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한 순간에 물속에 처박는 것이 인간의 탐욕임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볼 때 룻은 어리석은 것 같고 잘못 믿는 것 같고 손해보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 길이 바른 길이었고 그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묵묵히 실천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하나님은 그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난 중에 그냥 버려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룻처럼 반드시 잘되고 하실 것이고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 증거 중에 하나는 세계에서 지상낙원이라고 일컫는 북 유럽이나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무엇보다 절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복지가 잘 된 나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잘 내고 노인이 된 후에는 복지가 잘 되었기 때문에 노후를 걱정하지 않고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많이 낳을수록 정부에서 양육 보조금이 나오고 공부만 잘하면 무상으로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돈을 모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에 불의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나라를 가보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광지에 나이 많은 노부모들과 심지어 휠체어를 탄 장애 부모를 모시고 외출을 하고 여행을 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늙고 병들어도 버리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어려서 부모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어떻게 효도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자기들도 그 효도를 대물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늙어도 돈이 있어야만 의료와 요양 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에 매월 많은 돈을 주고 입원하여 여생을 편안히 보내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 되어 버린 한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요 인간의 도리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보다 더 완벽한 노후준비가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젊어서 자녀들 앞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투자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 축복’의 비결임을 믿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엡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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