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세상에서 복을 받을 사람/(시 41:1-13)

미션(cmc) 2015. 4. 14. 20:39

세상에서 복을 받을 사람
(시 41:1-13)


(시 41: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시 41: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시 41: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시 41: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시 41: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시 41: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시 41: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시 41: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시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 41: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시 41: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시 41: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시 41: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신불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행복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복 주심의 결과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복주심을 불신하고 인간의 수단방법으로 행복을 쟁취하려는 인본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오로지 복 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 채 오로지 복 받기만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복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 주심을 약속한 계약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성경 여러 곳에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최초의 복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에는 인간이 무엇 무엇을 해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어떤 조건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오로지 복을 받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2) 최후의 복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 보면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켜야 함을 뜻하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66 권의 성경 안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무려 4,14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지에 대해서 잘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들
 우리가 믿음이 없을 때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세상에는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보다 돈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결과적으로 복되게 해주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복이 어떤 것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축복들이 약속되어져 있는데 마치 평소에 들었던 보험을 어려울 때 타는 것과도 같은 축복입니다. 

 첫째로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1절 하)’
 여기서 ‘건지시리로다’라는 말(fl'm;, 말라트)은 재앙을 ‘피하게 하신다.  구출하여 주신다’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한두 번만이 아니라 매번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으로 얼마나 큰 은혜와 복입니까?

 둘째로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는 복을 받을 것이다(2절 상)’
 여기서 ‘지키사’라는 말(rm'v; 샤마르)은 ‘보존하다, 감시하다’라는 뜻으로 마치 눈동자처럼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유지되고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의 병을 고쳐주신다(3절)’
 언젠가는 병든자를 보살피던 사람도 질병으로 자리에 눕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가난한 사람을 돌아 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그 병을 고쳐 주심으로 수심이 기쁨으로 나쁜 것이 좋은 것으로 변하는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종합하면 한 평생 동안에 만사형통하게 하신다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에 걸려 자리에 누울 때가 때로는 원치 않는 어려움을 만나 흔들리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러한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붙잡아 주심으로 결국 잘되게 하시고 결국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서게 하시겠다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성경 여러 곳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가? 하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사람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는 삶일까요? 그  대표적인 말씀이 시편 1 편 입니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오늘 성경 말씀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복 받는 삶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무슨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무시하기 쉬언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2.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
(시 41: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오늘 성경에서 ‘가난한 자’라는 말(lD, 달)은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가난과 질병, 실패와 절망 등으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보살피는’이라는 말(lk'c, 사칼)은 물질적으로 돕는 것만이 아니라, ‘지혜롭고 신중하게 살펴서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가난한 자’란 말은 가난과 질병, 실패와 절망 등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는 자’를 가리키며 이러한 상태에 처해 있는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육 간에 가난한 이웃에게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남을 물질적으로 돕는 다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남을 도울 때 신중하고 지혜롭지 못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굴욕감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적으로 남을 돕는 다는 것이 때로는 자기 명예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도움을 받는 상대방은 고마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이용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분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아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에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많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약자들을 등치고, 무자비하게 짓밟고, 돈 때문에 죽이기까지 하는 몰인정한 세상입니다.
 흔히 나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그만이라고 이웃의 고통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거나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알고 보면 내게 화를 재촉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반대로 나도 힘들게 살아가지만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보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남이 아닌 내가 세상에서 복을 받는 삶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평소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나 밀알부 장애자를 섬기는 일과 같은 것이 바로 세상에서 복을 받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9:13)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누가 강요하거나 교회가 광고해서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봉사와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꾸준히 추적하여 지켜보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 주심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들인 것입니다.

 3. 낙심하기 쉬운 세상
 우리 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가난한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선행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실천하지 못하는 원인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져가기 때문에 선하게 사는 것은 마치 바보 같은 삶인 것처럼 허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남의 고통에 대해서 자기 고통처럼 마음 아파하기 보다는 정반대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보살피기 보다는 오히려 시편 기자의 고통을 즐기는 원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들의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악담하는 사람들
(시 41: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시편 기자의 고통에 대해서 위로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주는 사람보다 악담하는 사람들입니다.

 2) 거짓말 하는 사람들
(시 41: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시편 기자가 고통스러울 때 찾아와서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하지만 그 중심에는 시편 기자의 고통으로 고소해 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문안을 와서 하는 위로 말이 진심이 아니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나쁜 소문을 내는 것이 진심이라는 것입니다.

 3) 수군거리는 사람들
(시 41: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시 41: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시편 기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자기가 겪는 질고가 아니라 그것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입방아를 찌어대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병중 자리에서 떨고 일어설 것이라는 긍정적인 말보다 아마다 죽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시편 기자를 가장 힘들게 하였습니다.
(시 41: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시편 기자를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시편 기자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시편 기자와 매우 가까운 친구들이었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시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것이 인간 세상의 비극입니다. 믿었던 친구, 함께 어울려 다니며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사람,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배신하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어떻게 그 친구가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 세상이고 현실입니다. 아마도 질병이나 사업의 실패로 인해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은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인 기피증에 빠지고 낙담하기 쉬우나 시편 기자는 인간적인 실망이 크면 클수록 더욱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1) 자기를 돌아보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삶(4절).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사 하였나니다”(4절)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복을 받을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용서와 치료를 갈망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억울한 환경에서도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하는 삶(10절).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10절)
 그렇습니다. 악한 자들의 악담과 수근거림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앉아 있지 않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3)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송하는 삶(13절).
(시 41: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은 시간적인 영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가난한 자를 보살피며,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시하나님께서 는  가장 귀한 복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어느 누구도 가난이나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고통스럽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세상 그 어느 곳도 가난과 질고와 불의의 사고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예  화
 지난 번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갔을 때 오랫동안 백인들이 지배했던 나라였기 때문에 흑인들만 가난하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자기 이름과 실직을 해서 며칠 동안 먹지 못했다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을 적은 큰 간판을 목에 걸고 정체 중인 운전자에게 구걸하는 사람은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일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까?  그 때 도움을 준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서 일꾼을 세울 때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만 세우라고 말씀하지 않고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증거가 있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딤전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골고루 잘살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요한자, 유식한 자와 무식한자, 믿음이 좋은 자와 연약자가 더불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중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살피는 그 사실을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기억하시고 그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오늘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1) 재앙의 날에 건져주시는 복
 (시 41:1)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병들었을 때 붙드시고 고쳐주시는 복
(시 41:3)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집을 팔아서 많은 구제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소한 일에 대해서 선한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복주심의 약속입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가난한 자를 보살피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구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실천하므로 재앙의 날에 건져주시고 병에 걸렸을 때 고쳐주시는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