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 62:1-8)

미션(cmc) 2015. 7. 27. 06:16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 62:1-8)

 

(시 62: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시 62: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사람은 누구나 다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마다 얼굴 모습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의 성품도 제각기 다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마다 성품이 각기 다를지라도 그 성품을 크게 둘로 나누면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으로 구별되어집니다. 
 신앙의 형태도 그 성격 여하에 따라 각기 특색이 다릅니다.
 1)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은 말씀과 기도보다는 사람들앞에 드러나는 봉사나 섬김에 적극적인 특징을 보이는가 하면,
 2)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은 예배 참석이나 기도 생활이나 성경 연구와 같은 개인적인 신앙 향상에 더 관심을 보입니다.
 물론 둘 중에 어떤 성격이 어떤 스타일의 신앙이 더 좋은 성품이고 잘 믿는 믿음인가 하는 것을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이 주신 천성적인 것이며, 두 성품이 각기 다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좋은 성품은 자기가 외향적이라면 정적인 신앙의 훈련에도 힘쓰고, 내향적인 성품이라면 좀 더 동적인 신앙 훈련에도 힘써서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기자는 어떤 성품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 고요한 영혼
 오늘 시편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가 아주 평온한 상태로 말씀을 시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 62: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여기서 ‘잠잠히’라는 말(hY'mIWD, 두미야)은 ‘침묵, 고요함, 조용히 기다림’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시편 기자가 조금 전까지도 원수들의 공격으로 인해 구원이 절실치 요청되는 상황이었음을 암시한다고 칼빈은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라고 고백한 것처럼 시편 기자의 영혼이 아주 평온해진 상태를 뜻합니다.
(시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라는 말(f/m, 모트)은 ‘미끄러지다, 요동하다, 전복되다’라는 뜻으로 역시 미완료 상태의 부정사로 시편 기자의 마음이 평온한 상태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수도사가 깊은 영적 경지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평정되고 안정한 상태에 이른 것처럼 시편 기자의 영혼이 아주 평온한 상태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 경험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서 마음에 걱정과 염려와 불안에 휩싸이게 될 때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내색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음까지 평온하게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해결된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씨가 남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평온한 것 같이 보이지만 마음까지 평안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 기자처럼 ‘나의 영혼히 잠잠하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으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또한 불씨까지 완전히 잠재운 상태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예 화
 소방대원들을 보면 화재 현장에 출동하여 이미 불길을 다 잡아 놓았는데도 계속 해서 화재 현장에 물을 뿌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불씨를 아예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살이는 마치 그와 같습니다. 아무리 걱정과 염려꺼리가 해결된 듯싶어도 아직도 일상생활에 불씨와 같은 문제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걱정과 염려가 없는 상태였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시 62: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또한 죽이려고 라는 말(jx'r: 라차흐)은 살인을 뜻하는 것으로 아직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미완료 상태입니다.
 여기서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라는 말은 종종 건축현장에서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압사를 당하는 경우처럼 원수들이 시편 기자를 죽이려고 일제히 공격해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2)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시 62: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여기서 높은 자리는 다윗의 왕위를 뜻하는 것이며 원수들이 다윗을 그 자리에서 떨어뜨리려고 이중 플레이를 하는데 입으로는 듣기 좋은 축복을 하지만 속으로는 칼을 가는 것처럼 시편 기자를 저주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노라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마음에 평정을 잃고 불안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경우는 오늘 시편 기자처럼 누군가와 불편한 상태일 때 겉으로는 아무리 평온한 척 해도 마음에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는 것입니다.
 (시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럴 때 쉽게 불면증과 식욕부진과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시편 기자는 도리어 마음이 아니라 그 영혼에까지 고요한 평안을 맛보고 또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육체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수월해졌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사소한 일조차도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기 보다는 쉽게 분노하고 또한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서 폭력과 보복과 살인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편 기자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불안한 현실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마음에 평정과 고요한 영혼의 상태에서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비결이 무엇 때문인지를 배워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어떤 현실에서도 마음에 평안과 영혼의 고요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 오직 하나님만
 시편 기자의 마음에 평안과 영혼의 고요와 흔들림이 없는 믿음은 혼란스러운 현실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기자의 선척적인 성품이나 수도사와 같은 후천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결과라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하나님만 바라라’는 말이 두 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시 62: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여기서 ‘하나님만 바라라’는 말(&a" 아크)은 ‘확실히, 오직, 그러나, 바로 지금’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위기를 만났을 때 이것 저것 바라 보는 중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하나님만 꾸준히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시편 기자를 죽이려고 원수들이 난리를 치는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리 저리 고민하고 나름대로 대응하였다면 시편 기자의 마음에 평안은 고사하고 불안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안한 환경이지만 마치 볼록렌즈로 태양빛을 모아 불씨를 만드는 것처럼 시편 기자가 오로지 하나님만을 확실히 붙잡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을 때 시편 기자의 마음에 평안함과 영혼에 고요함과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성경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신 적이 있는데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의 마음을 다시 완악하게 하셨을 때 선발된 병거 육백대와 정예부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는 넘실거리는 홍해와 뒤에는 추격해오는 바로의 군대 사이에서 마치 독안에 든 쥐처럼 꼼짝 달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바라 본 것이 아니라 원망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출 14: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출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애굽에서 하나님이 바로에게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을 목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령 진퇴양난의 위기를 만났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능히 자기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든 사실들을 까맣게 잊은 채 오로지 당면한 현실만을 보고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한 것은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기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바로와 싸우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기서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말씀이 바로 오늘 성경에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가 불안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너 다윗아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라‘ 라고 명령을 하면서 시편 기자는 혼란스런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추슬렀다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이나 원수들 앞에 시편 기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도 각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때로는 불안하게 하고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될 때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일수록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고민이 깊어지게 되고 시름이 깊어지게 될 때 점점 더 절망감에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호수 면과도 같습니다. 한 밤에 고요했던 수면이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기온이 변하면서 잔잔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거울같이 맑고 잔잔했던 수면이 파문이 일어나게 되고 바람의 강도가 점점 거세지면 큰 풍랑이 일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우리 마음에 자주 파문이 일어나고 파도가 거세가 일어나면서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의 파도에 우리의 마음이 휩쓸려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느냐고 원망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평안한 마음 고요한 영혼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오늘 시편 기자처럼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도 좋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는 동안에 영혼에 고요함을 얻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단계를 뛰어 넘어 예수님께 요동치는 갈릴리 호수안에서 배의 고물을 베고 단잠을 주무신 것처럼 고난의 현실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과 고요함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오늘 시편 기자처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성숙한 믿음인 것입니다.
(사 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3. 주시는 은혜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불안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까닭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기자는 어떤 믿음과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바랐을까요? 오늘 성경에 보면 크게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에게만 구원이 있다.
 (시 62:1)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 62: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자기를 그 위기에 건져내 주실 수 있는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2) 하나님에게만 소망이 있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사람은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내일에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인간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본 것은 그 하나님이 곧 시편 기자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시편 기자의 믿음과 바램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니 마침내 시편 기자를 구원하여 주셨고, 그의 믿음대로 마침내 영광스럽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마음에 일어나는 풍랑을 잠재워 주시고 고요함과 평온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경에는 이처럼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와 같은 구원과 소망을 경험하지 못하고 시편 기자와 같은 평온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왜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성경에 약속된 구원과 소망과 평온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종교적인 활동을 열심히 하지만 오늘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만을 집중해야 하는데 마음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라
(시 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여기서 ‘시시로’라는 말은 모든 경우에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토하라’는 말은 마치 물을 길어 독에 쏟아 붓듯이 하나님께 형식이 아니라 마음까지 다 쏟으라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진정성이 없는 대화, 영양가가 없는 대화는 오히려 후회스러운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기도가 진정성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집중하는지, 마음으로 쏟는지 다 아시는 분입니다.

 2) 세상 것을 의지하지 말라
(시 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헛된 것은 세상 권력이나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노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도 믿어보자는 식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런 힘도 없이 아무런 소유도 없이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설령 남보다 더 많은 권세나 물질을 소유하고 있다면 설령 그 사람이 성실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게 노력해서 그와 같은 성공을 하였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독이 바로 교만이고 끝없는 욕심이고 집착에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점점 더 해질수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겸손히 선한 사업에 그 것들을 선용할 때 그 모든 것들은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보약이 됩니다. 부패한 영국을 건져낸 감리교회 창시자 존 웨슬리는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재물을 모으는 재능을 주시고, 선을 행할 능력을 주신 분께 감사하라. 그러나 이 재물로 인해서 즐거워하지 말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라. 이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 재물에 집착하면 거기에 얽혀 결국에는 멸망하리라. 돈을 당신의 최종 목표로 삼지 말라. 이것으로 당신의 즐거움, 당신의 행복, 당신의 신을 만들지 말라! 돈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킨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설교(On the Danger of Increasing Richesa).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요란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많습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와 같은 성도들을 아예 망하게 하고자 달려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시편기자처럼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다면 거친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처럼 우리의 영혼도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영혼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1)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성경을 읽든지 기도를 하든지 설교를 듣든지 우리가 평소 신앙생활을 할 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은 매순간마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교훈하시고, 무슨 깨우침을 주시고, 무슨 은혜를 주시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시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여기서 ‘들었나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을 수 없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내게 교훈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답이 될 것이고 위로가 될 것이 소망이 될 것이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2) 맡기신 직분에 충성하라
(시 62: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충성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등돌리는 식의 충성이 아니라 오늘 시편 기자가 어떤 경우에서도 변함없이 충성했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직분과 사명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요동함이 없는 담대한 믿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실 수 있지만 때로는 오늘 시편기자처럼 혼란스런 현실에 처하게도 하실 때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이 올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흔들림이 없이 구원이요 소망이신 주님을 잠잠히 바라볼 뿐 아니라, 그 주님이 내게 주신 직분과 사명을 어떤 환경에서도 묵묵히 충성 다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이 오늘 시편 기자의 믿음처럼 흔들림이 없는 평온한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참고 인내하며 잠잠하라
너의 슬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어느 때든 너를 구하실 수 있다.
 -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