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해방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히 11:23-26)

미션(cmc) 2015. 8. 23. 07:06
해방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히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하나님은 한 개인이나, 나라만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개인과 교회와 민족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고 믿는 사상을 흔히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해방감사 주일입니다. 그 이유는  8. 15 해방은 인위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특별은총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신 해방 사건은 비단 8.15 해방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흑인 해방을 비롯한 세계 여러 약소국들이 독립을 이미 경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사물이지만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듯이 하나님의 역사 통치를 믿는 우리는  8. 15 해방을 정치적인 측면으로만 아니라 성경적인 측면에서 보게 되면 놀랍게도 ‘해방’이라는 주제가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8. 15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8. 15 해방을 어떻게 주도하셨는가를 돌이켜 보면서,  어느 때보다 남북통일의 염원이 강하게 불타오르는 시점에서 우리 민족과 교회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성경 말씀을 통해서 조명하여 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부르짖는 이스라엘
  오늘 우리 민족에게 8. 15 해방은 그 어떤 명절보다 우리 민족을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한 희망의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아무리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할지라도 만일 8. 15 해방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은 우리 민족의 8. 15 해방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자손대대로 기념하여 지키는 대 명절입니다.
 개인과 교회와 나라를 막론하고 역사의 굴곡이 있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 애굽에서 번성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이 우여곡절 끝에 당대 최강국인 애굽 제국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애굽 땅 전역에 흉년이 몰아 닥쳤지만 하나님이 요셉에게 미리 칠년 풍년 후에 칠년 흉년이 있을 것을 꿈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 요셉은 칠년의 풍년 기간 동안 양식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칠년 풍년 후에 예언대로 칠년 흉년이 들었을 때 총리 요셉은 비축한 양식을 돈을 받고 팔고 심지어 땅을 저당 잡아 양식을 팔았기 때문에 애굽의 바로 왕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갔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저당을 잡힐 것이 없게 되자  노예가 되기를 자원할 정도로 요셉이 주도하는 애굽은 막강한 제국이 되었습니다.
 열두 아들 중 나머지 열한 아들들과 그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애굽 만이 아니라 널리 근동 지방에 몰아닥친 흉년으로 인해 야곱의 가족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 야곱이 전 가족이 바로의 초청을 받아 온 가족이 애굽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창 46: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야곱의 가족은 요셉의 공로로 말미암아 배로 왕의 환대를 받게 되었고 애굽에서 가장 비옥한 삼각주 평야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 애굽에서의 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오래 머무르는 동안 번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애굽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요셉이 애굽의 제국에 끼친 공로가 잊혀 지게 되었고 마침내 요셉의 치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등극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번성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 사람들에게 우려의 대상에서 박해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여기서 ‘괴롭게’라는 말(hn:[ 아나)은 ‘억지로 무엇을 시키다, 무엇을 하기에 바쁘다, 괴롭히다, 압제하다, 천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많은 고통을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 일은 구체적으로 성을 쌓기 위해 필요한 벽돌을 만들고 그것을 나르고 쌓는 일을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린 것입니다.
(출 1: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가 바라던 대로 약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게 중노동에 시달리게 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치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더욱 번성하기 때문에 애굽왕 바로를 더더욱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출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여기서 ‘근심하여’라는 말($Wq, 쿠츠)은 ‘몹시 싫어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싫어하다’는 뜻의 와우 계속법으로 바로 왕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했는가를 단적으로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절정이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아들이 태어나면 무조건 다 죽여 버리는 이스라엘 말살 정책입니다.
(출 1: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출 1: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씨가 마르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중에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여기서 ‘상달된지라’는 말(hl;[, 알라)은 ‘올라가다, 무엇무엇에 달라다, 바치다’라는 와우 계속법 미완료 동사로 하나님께서 들으셨음을 뜻합니다. 
 당시 애굽의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온 세계 관광객들을 감탄하게 하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와 같은 거대한 유적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와 같은 초대형의 구조물들은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백년 동안 애굽 땅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막강한 권력을 쥔 애굽의 바로 왕이 갑이라고 하면 그 채찍아래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져 죽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삶은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비극적인 삶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약자였기 때문에 슈퍼 갑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굽을 향해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시키는 대로 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둘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살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영원한 약자였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약자처럼 보였지만 사라질 수 없었고 또한 사라지면 안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바로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와 같은 고난을 겪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일찍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애굽에서 고난 받는 이스라엘 민족은 일찍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1) 아브람의 후손의 고난의 예언
 창세기 15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에게 두려워말라고 하시면서  이런 약속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여기서 ‘괴롭히리니’라는 말(hn:[, 아나)은 ‘무엇하기에 바쁘다, 압제하다, 천하게 여기다’ 라는 뜻의 와우 계속법 완료형으로 반드시 겪게 될 미래의 고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후일에 바로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것은 바로 그 예언의 성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여기서 ‘괴롭게 하여’라는 단어가 앞서 ‘괴롭히리니'라는 예언과 똑같은 단어로 와우계속법  미완료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람에게 그 후손이 이방 땅에서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자손이 애굽 땅에서 사백년간 바로 왕에게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은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아브람 후손의 해방의 예언
 창세기 15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사백년간 고난 받게 될 것만을 아브람에게 예언하신 것이 아니라 사백년 후에 해방될 것도 예언하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자유는 무력이나 정치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강대국을 친히 징벌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창 15: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여기서 ‘징벌할지며’ 라는 말(@yD, 딘)은 ‘심판하다, 다투다’라는 뜻이며, ‘나오리라’는 말(ax;y 야차)은 ‘떠나다, 이끌어내게 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자유와 해방을 얻되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해방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증거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이 단순히 힘이 없기 때문에 슈퍼 갑에게 당하는 약자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서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언대로 사백년간 고난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아무리 자력으로 자유와 해방을 이루어낼 만한 힘이 없는 영원한 약자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운명처럼 체념해서는 안 되고 우리 민족은 반드시 때가 되면 겨우가 아니라 많은 재물을 이끌고 이 땅을 떠나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함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비록 어렵고 힘들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3. 모세를 준비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역사의 주권자가 되실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죽었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 중심으로 성경의 역사가 기록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노아 홍수 심판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심판의 대상이 되었으나 믿음의 사람 노아는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예언하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고난을 받다가 사백년이라는 약속하신 해방의 때가 되었을 때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모세의 부모가 아들을 낳면 다 죽여라고 하는 바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믿음으로 모세를 살린 이야기입니다.

 1) 믿음의 부모
(히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물론 당시에 모세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눈에 보이는 우상이 가득한 애굽 땅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갓 태어난 모세를 볼 때 여느 부모들처럼 모성애의 눈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민 26:59)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만일 모성애나 부성애의 눈으로만 모세를 보았다면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모세를 보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 뿐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세를 사랑했다고 할지라도 거역할 수 없는 바로 왕의 명령 때문에 어린 모세를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 다른 부모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슬픔으로 가득찬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로 왕이 아이를 죽이라고 했지만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를 살리는 것은 부모가 죽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달동안 모세를 숨겨 키웠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모세의 부모가 하나님보다 바로 왕을 두려워했다면 석 달은 고사하고 너무 불안해서 단 삼일도 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그만 치 석 달 동안을 숨겨 키웠을 때 하나님은 그 부모들의 믿음을 어여삐 보시고 애굽의 딸 공주의 양아들이 되게하시고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의 유모가 되어 석달이 아니라 일년 이상 젖을 뗄 때까지 친부모의 슬하에서 잘자라게 하셨습니다.

 2) 믿음의 모세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여기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라는 말은 모세의 어머니는 단순히 모세를 유모로서 젖만 먹인 것이 아니라 믿음을 먹였기 때문에 모세는 믿음으로 장성하였던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이 없는 부모들은 바로 왕이 무서워서 아들이 태어나면 다 나일 강에 던졌지만 바로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모세의 부모는 어린 모세를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띄운 것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 모세를 강에서 건져내어 살릴 것이라는 믿음이 마침내 바로의 딸 공주의 손에 건져 진 것입니다. 
 모세가 그와 같은 믿음의 부모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모세의 속에 믿음의 씨가 심겨져서 그것이 자람으로 모세도 바로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고 애굽백성보다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함으로 얼마든지 호의호식할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자처한 것은 그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은 믿음의 힘 때문이었음을 뜻합니다.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는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를 믿음으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일찍이 어린시절을 신앙으로 자랐음을 칭찬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3) 모세의 비전
 사람의 일생이 어린 시절에는 꿈을 품고 젊은 시절에는 꿈을 키우고 성인이 되면 그 꿈을 이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장성한 후에 그가 이루고자 한 꿈은 바로 왕의 대권을 이어 받아 애굽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꿈은 누구나 꾸는 꿈이지만 믿음의 사람 모세가 꾼 꿈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고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기서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태어나게 될 이스라엘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신약 시대뿐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그러한 의미에서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애굽의 모든 보화’라는 말은 바로왕의 권력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로의 딸 공주의 아들이 된 모세는 얼마든지 그 권력을 계승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굽의 보화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모세는 그 모든 것들을 쟁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전은 애굽의 보화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비전으로 삼고 살아갔습니다.
 물론 그 길이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 길 끝에 모세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값진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 모세를 통해 일찍이 아브람에게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침내 애굽에서 구원하여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셨습니다. 
(창 15: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애굽에서 많은 재물을 이끌고 마침내 출애굽이라는 자유와 해방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출 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 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모세는 창과 칼과 군대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칼과 창대신에 믿음의 지팡이를 들려 주셨습니다.
 만일 모세가 창과 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려고 하였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자유와 해방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바로 왕의 종이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어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해방이 창과 칼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특별한 은총이었으나, 만일 모세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설령 열 가지 재앙이 아니라 스무 가지 재앙이 일어났다고 해도 출애굽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36년 동안 일제의 굴욕의 사슬을 끊고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광복 70주년을 감사하는 해방 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면서 바로 왕에게 당한 온갖 박해를 통해서 일제 36년간 우리 민족이 일제에 겪은 만행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열사의 마지막 유언-

 우리 민족의 해방도 마찬가지입니다. 1945년 해방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아무리 해방을 맞이했다고 할지라도 김구, 조만식, 이승만과 같은 민족의 지도자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소련이 키운 가짜 김일성에 의해서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해방시키시기 전에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애국자들을 키워서 이 나라가 공산화되지 못하도록 신실한 민족 지도자들을 준비시키신 일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6. 25 사변에서도 이 나라는 공산화되지 않았고, 가난하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소를 팔고 땅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뜨거운 교육열이 이 나라의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해외 유학을 통해서 길러진 인재들로 말미암아 이 나라가 세계인들이 주목할 정도로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사람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 나라는 사람을 키우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잡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데오르기의 갈등으로 좌우가 갈라지고 손바닥만한 나라를 두고 지역이기 주의,  정치적으로는 정파와 계파간 이기주의, 경제 양극화로 인한 계층간에 갈등으로 나라보다 개인을 더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어떻게든지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땅에 지도자가 키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통령감, 총리감, 심지어 장관감조차 찾기가 어려운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나라가 달라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너 나를 막논하고 통일 통일하는데 정작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 과연 누가 주변의 열강의 야욕을 극복하고 이 나라를 선진강국에 진입시킬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를 이 나라가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해방을 하나님이 주도하셨다면 우리나라의 통일도 하나님이 주도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민족이 되려면 일본을 성토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은 정치적인 제도 개선으로 될 일이 아니고 일본이 무시할 수 없는 힘 있는 대한민국, 북한의 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는 정신무장을 한 힘 있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길러내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우리 교회가 장학부를 만들고 장학회원을 모집하고 매월 한번씩 헌금을 하고 특별히 8. 15 광복절 헌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사용하는 목적이 바로 민족과 교회의 일꾼을 키워내는 일을 위해서입니다. 
 해방이나 통일은 우리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세의 부모처럼 해방과 통일의 지도자를 길러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 성도들의 가정과 교회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제부터 우리는 이 나라의 경제를 회복해 주시고, 이 나라의 통일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 나라에 모세와 같은 일꾼을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할 때임을 알고 모세와 같은 신앙인재를 키워내는 교회가 되고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