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시 65:1-5

미션(cmc) 2015. 8. 31. 09:55
  •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시 65:1-5)


    (시 65: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시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시 65: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65: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우리가 늘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비춰보는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자연이 전지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과 추함이 잘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고나 지적을 듣지 않고서도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때 하나님은 더더욱 크신 분으로 느껴지는 반면에 정반대로 나의 죄인 됨과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3)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 지극히 높으시고,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여기서 ‘들으시는’이라는 말([m'v;, 샤마)은 지금 현재 기도를 듣고 계시는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시편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편 기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1) 시온에서 응답하셨고(시 3:4),
     2)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시 20:1)
     3) 사자의 입과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고(시 22:21),
     4) 두려움에서 건지셨다고(시 34:4)
    기도 응답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분명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주께 나아가 기도하면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여기서 ‘모든 육체’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수 밖 에 없음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기도하지 않을 것이며, 또 하나님을 믿는다지만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믿음의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그 믿음이 기도를 통해서 입증되어짐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가고 오는 시대를 막론하고 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와서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할까요?

     1. 내 힘으로 죄악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은 어떤 유혹과 시험이 와도 그것을 잘 이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긍휼히 여기기보다는 정죄하기 쉽고, 자기가 범죄 하였을 때는 다른 사람들 앞에 양심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시편 기자만큼 믿음이 좋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라고 말할 만큼 시편 기자는 믿음이 매우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에 보면 시편 기자는 혼자 숨겨야 할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 65: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여기서 ‘이겼사오니’ 라는 말(rb'G;, 가바르)은 ‘강하다, 이기다, 우세하다, 굳게 하다’라는 뜻의 완료형으로 이미 패배가 확정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결심이나 의지보다는 죄악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죄와 싸웠을 때마다 완패를 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시편 기자와 달리 ‘나는 죄악을 이겼다’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한  ‘사하시리이다’라는 말(rp'K; 카파르)은 ‘덮다, 속죄하다, 화해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한번 만이 아니라 죄를 범할 때마다 속죄해 주시리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시시때때로 세상의 죄악이 유혹할 때 내 의지나 결심으로 이겨내기가 얼마나 벅찬 상대라는 사실을 자주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처럼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서 죄악을 이기신 승리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설령 시편 기자처럼 죄악이 나를 이기었을 지라도 낙심치 말고 주께 나와서 회개하는 사람은 모든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행 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 시대 성도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무엇을 가지고 나와야 할까요? 구약 시대 성도들처럼 내 죄 값이 상응하는 값비싼 제물을 가지고 나와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제물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제물이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리가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죄악이 나를 이겼다고 할지라도 그 넘어진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면 주님이 십자가에 보혈로 사해주시되 양털과 같이 희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을 신구약 성경에 동일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해야 하는지 두 번째 이유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음 주간에 에스더 전체를 다루는 가을맞이 에스더 캠페인이 시작됩니다. 에스더를 금주간 미리 통독을 한 다음 에스더 캠페인에 모두 참여하기 바랍니다. 분명히 약속하신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일개 제국의 왕도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자의로 왕 앞에 나오면 죽이는 것이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4: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감히 죄악을 범한 죄인이 어찌 자발적으로 나아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폭하는 일입니다.
    (출 19: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 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왕이 먼저 부르시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부르시면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내가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으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갈지라도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복을 받게 된다고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여기서 ‘택하시고’라는 말(rj'B;, 바하르)은 무엇 무엇에서부터 쪼개내기로 ‘결심하다, 선택하다’라는 뜻입니다.
     또 ‘가까이 오게 하사’라는 말(br'q;, 카라브)은 ‘접근하다, 가까이 끓어 당기다’라는 뜻으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라는 말이 둘 다 미완료 동사로 주님 앞에 나아올 때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악을 이기 못한 죄인이기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영원히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택하시고, 가까이 불러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주의 뜰에 살게 하시고 주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마다 주의 아름다운 것으로 만족한 삶을 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 하나님께 나아와 드릴 것을 찾는 다면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 만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와 같은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기도밖에 드린 것이 없습니다.
    (시 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여기서 ‘만족하리이다’라는 말()은 ‘실컷 배불리 먹어 만족하다’ 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그렇게 예배할 때마다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뜻합니다.
     세상에 부패한 인간은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여 이미 치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뇌물과 선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감사해서 단지 찬송과 기도밖에 드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최상의 선물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니 더욱 힘써야 할 일 중에 일입니다.

     3. 시편 기자와 같은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 매일 죄에게 패배를 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믿게 하시고, 더나아가서 회개하기만 하면 그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고, 의롭다고 까지 일컬어 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태어났으나, 하나님께서 평생토록 굶기거나 맛없는 것을 억지로 먹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내일에 대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을지라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과연 우리가 그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권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값없는 은혜와 축복이라면 우리가 그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이 있습니까?
     우리도 오늘 시편 기자를 닮아 하나님께 나아와서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존 파이퍼(Jhon Piper) 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책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즐거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어린 아기가 하는 옹알이를 엄마가 잘 이해하지 못해도 세상에서 무엇보다 즐거운 소리인 것처럼, 유치원에 갔다 와서 무엇을 배웠는지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해도 귀엽기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인간이 기도를 잘한다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찬양을 잘한다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비록 어눌할지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윌리엄 템플(Willian Temple) “기도하면 동시에 놀라운 일이 생긴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은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2) 기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신앙생활에 필요한 신령한 지혜와 총명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통로입니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3)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화
     금번 말레시아 선교대회 인도차 갔다가 그곳에서 26년 동안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므슬림 선교를 하고 있는 임모 선교사님으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2004년도 인도네시아 아체지역을 휩쓸어 버린 쓰나미로 인해 32만 여명이 순식간에 몰살을 당한 사건을 여러분들이 어렴풋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체라는 말은 아랍, 유럽, 중국, 힌두라는 영어 첫 글자를 모아서 만든 도시 이름입니다.   무려 150년 동안 극단주의 정글 므슬림이 장악을 하고 있어서 정부군조차 접근이 어려웠던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단 한곳도 없는 극단주의 므슬림이 판을 치는 곳이었습니다.
     그것을 안타깝게 여긴 인도네시아의 1200며명 선교사가 나머지 800명의 주변국 선교사들이 의기투합하여 성탄절에 집회를 같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2004년 12월 24일 아체에 집결했지만 이 정보를 므슬림이 알고 2천명의 선교사들을 그 밤에 해체시키고 날이 밝으면 다 추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천명의 선교사들은 몸을 피하여 아체 부끼띵기(높은산)라는 산으로 올라가서 아체의 복음화를 위해 밤을 지새우며 합심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어났는데 새벽 1:20분에 아체에 전무한 쓰나미가 아체를 덮치면서 순식간에 세시간만에 32만명의 무슬림과 사원들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물론 산위에 모여 기도하던 선교사들은 단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어마어마한 피해 복구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여러 단체가 아체에 들어와서 구호활동을 벌렸는데 그 기회를 타서 15명의 선교사가 아체에 들어와서 구호활동을 펼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150년 말에 처음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 때 산에 올라 기도했던 선교사들은 아체의 쓰나미가 우연히 일어난 천재지변이라고 보지 않고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때 6톤의 거대한 배가 해안에서 6 km나 멀리 떨어진 도심 한 복판에 밀려가서 멈추는 바람에 지금 그 배가 기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선교사님이 직접 가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제게 보내왔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딱 일주일 전 한국 땅은 전쟁 일보 직전의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북한은 남한을 기습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고 남한도 이에 모든 대비를 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적대관계에서 화해단계로 역전이 되어 남북이 합의한 사항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는 단계입니다.
     과연 누가 남북 간의 불신과 극한의 대치 상태를 한순간에 이처럼 화해시킬 수 있습니까?
     (대하 20:15)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물론 이일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전역을 미룰 정도로 애국심에 불탔던 국군 장병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해 무드가 무르익어가는 지금은 긴장을 풀지 말고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도하는 성도들의 부르짖음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말이 아니고 오늘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하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시 65:5)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여기서 ‘응답하시리이다’라는 말(hn:[;, 아나)은 ‘대답하다, 응수하다, 증거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로 구약 성경에 약 330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2) 삶의 순간마다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오는 강도 같은 죄악의 도전 앞에 번번이 패배했던 내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기도로 그 권능을 받아 나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사는 기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3) 삶의 순간마다 가뭄 뒤에 소나비처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는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한해 메르스와 가믐과 무더위와 태풍과 더불어 여름이 가고, 다시 한국의 찾는 관광객의 물결이 공항과 명동 거리를 북적이고, 이러다가 전쟁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불안은 남북의 화해로 반전하는 기회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 결실의 가을이 박두해 옴을 알리는 9월 첫 주부 우리 모두 이 모든 것들이 마른장마가 되지 않고 축복의 장마비가 되도록 온 교우들이 함께 교회에 모여 ‘죽으면 죽으리라’ 기도하던 에스더서처럼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가정과 자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라는 주제로 기도회를 갖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주님의 응답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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