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하나님의 소원과 나의 소원 /시 67:1-7

미션(cmc) 2015. 9. 29. 09:17

하나님의 소원과 나의 소원
(시 67:1-7)

(시 67:1) “[시 곧 노래,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시 67: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시 67: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 67: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시 67: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 67: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 67: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사람마다 마음에 원하는 소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였습니까?
 오늘이 한 가위 추석입니다. 추석을 맞아 사람들이 귀성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석을 맞아 제사상을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대 보름 밝은 달에게, 또는 정월 초하루 동해안의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물론 죽은 조상이나 하늘의 해와 달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지만,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21:2)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 145:19)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시 145: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소원이 없으실까요? 물론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건강이나 물질과 같은 소원을 없으시지만 하나님 나름대로의 소원이 있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소원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가지고 계시는 소원을 인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이루어 가신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기서 ‘소원’이라는 말(qevlw, 델로)은 ‘바라다, 바라다, 원하다, ~하고자 하다, 좋아하다, 기뻐하다’ 라는 뜻의 현재 능동태로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마음에 소원을 두고 그것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의 소원이 그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한다면 우리의 소원도 가장 멋진 소원이 될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 소원이 무엇인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의 소원
 우리는 지난 시편 66편의 말씀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 유일하게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신 것을 인간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만일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처럼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처럼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경고를 무시하였을 때 마치 승용차가 철길 건널목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가다가 질주하는 기차와 충돌하는 것처럼 인간은 결국 파멸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도리어 그와 같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진행해 오신 것이 바로 여자 후손을 통해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죄와 고통과 죽음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 3:15의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신 것을 시작으로 구약 시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때가 되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세상에는 구세주를 자처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행과 선행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정인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신 구원의 조건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주 단순하고 쉬운 단 한 가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믿음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것은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가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소원은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아 변화되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믿어야 할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셨고, 누구든지 믿을 수밖에 없는 기적을 행하셨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믿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복음을 친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구원의 복음을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누가 전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상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자를 훈련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설령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그 사람 자신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전도를 교회의 존재이유요 구원 받은 성도의 사명으로 못 박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성도들의 태신자 기도와 사명감에 불타는 수 많은 전도자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진리를 믿어 구원을 얻기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1) 그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그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3)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실한 소원은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셨습니다.
 그래서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그같은 사랑을 깨닫고 너무나 감사해서 지은 찬송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lass)’ 이라는 찬양으로 신자는 물론 불신자들도 공감하는 불휴의 명곡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같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인지 오늘 시편 기자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2. 시편 기자의 소원
 각기 사람마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 소원들이 있다면 오늘 시편 기자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1) 자신에 관한 소원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인가? 를 알게 되면 그것이 곧 시편 기자가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소원일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시 67:1) 『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간절한 구한 소원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복을 주시고, 셋째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비쳐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는 시편 기자가 흔히 우리들이 구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구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단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관계가 불편하게 되면 제일 먼저 서로 얼굴 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성전을 완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드린 기도 가운데 오늘 시편 기자와 똑같은 기도를 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하 6:42)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마시옵고 주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더라』
 오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일 먼저 나 자신이 양심을 가책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억누른 채 형식적인 기도를 한다고 헸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시기 때문에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가 막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강단의 설교가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배에 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시험을 당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소소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큰 손해를 입히게 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임을 깨닫고 오늘 시편 기자처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무엇보다 최대의 소원을 삼고 구해야 합니다.

 2) 온 세상을 위한 소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유아독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일원이고 더 나아가서 세계속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조차 나 하나만 무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평안해야만 나도 평안할 수 있는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자신의 개인적인 소원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나라를 뛰어 넘어 모든 나라, 온 백성,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지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가) 모든 나라
(시 67: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편 기자가 모든 나라를 무조건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구원을 알리는 주의 도가 전파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도가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지기를 소원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위하는 민족 신처럼 생각을 하던 시대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요나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가 그 민족의 담을 뛰어넘어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도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하는 것은 선교적인 기도요,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입니다.
 VanGemerern 이라는 학자는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민족적 이기심이나 배타주의적 편견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계에 편만하게 되기를 바라는 탁월한 신앙적 통찰을 보여준다’라고 하였습니다.
 
나) 모든 민족
(시 67: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편 기자의 소원은 단지 하나님의 도가 모든 나라에 전파되어 사람들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기를 소원한 것만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민족들이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 66편에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이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어 그것을 깨달은 민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기를 소원하였다는 말입니다.
(시 67: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과 동일한 위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종 차별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시편 기자의 놀라운 통찰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삼천
여년 전에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편 기자의 꿈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민족 속에 오늘 우리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시편 기자의 기도와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3) 하나님의 나라 구현의 소원
(시 67: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시편 기자는 단순히 모든 나라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를 이해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모든 백성이 되어지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만도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는 선교지향적인 믿음의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온 세상에 미치는 하나님 나라가 조속히 구현되어지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시편 기자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가 필요한 것일까요? 이 세상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완벽하게 정의가 구현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기쁘고 즐거워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나라는 단 한곳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공의가 하수처럼 흘러넘치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고 악한 사람들이 없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기쁘고 즐거워하며 사는 천국과 같은 나라가 오기를 소원한다면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인가를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서두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리고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기도입니다.
 
3. 나의 소원
오늘 시편 기자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전 시대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실을 깨닫고 오늘 시편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시편 기자를 가장 높이 가장 복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렇다면 그 시편 기자가 누구였을까요? 물론 오늘 시편의 표지에 다윗이라는 말이 없지만 과연 다윗이 아니고 누가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하는 기도를 드릴 사람이 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소원하는 것일까요?

 1) 우리도 내 소원만 이루려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도리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며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구원을 얻게 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고전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물론 전도가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겁먹고 핑계대고 망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나쁜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신의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 즐겁게 신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때로는 지치고 병이 들도록 힘들어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묵묵히 참고 견디지 않습닉가?
 하물며 내 속에서 소원을 두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하는 일을  스스로 마음에 우러나올 때까지 미룬다면 마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평생 단 한 영혼도 주께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전도가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겁먹고 핑계대고 망설이기 쉽습니다.   육신의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 즐겁게 신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때로는 지치고 병이 들도록 힘들어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묵묵히 참고 견디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분발해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해서라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2. 우리 민족과 온 세계를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구원과 행복만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고 자기 민족만 구원받는 것을 구하지 않고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백성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한 것이 때가 되는 오늘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실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제라도 오늘 시편 기자를 닮고 본받아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가 되는 기도가 필요하고 또한 그것을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삶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도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태신자 기도입니다. 세계 열방을 품는 선교적인 기도입니다.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그것이 바로 시편 기자와 같은 선교적인 기도와 더불어 우리의 삶의 초고 가치를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인 구언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예배의 자리로 이끌어 우리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에 사는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삶인 것입니다.

 3) 핑계하지 말고 자신을 채찍질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뒤늦게 예수 그리스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후에 이전에 그렇게도 소원했던 세상의 부귀권세를 분토처럼 여기고 그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때로는 자지 못하고 때로는 먹지 못하고 때로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도 티끌만큼도 후회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물론 바울도 그 일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을 채찍질 하여 억지로라도 그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그것은 사도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자신을 통해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막상 죽음이 임박해왔을 때 후회하거나,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도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선진들이 앞서간 것처럼 우리들도 곧 뒤따라 갈 것입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주님 앞에 서서 우리의 한평생을 계산해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심판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1) 하나는 다섯달란틀 받아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처럼 충성스런 삶을 산 제자,
 2) 또 하나는 두달란트를 받아 두 달란트를 남긴 종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 제자,
 3) 마지막으로는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파묻어 두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악하고 게으르다고 책망 받은 제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하신 소원을 독생자 예수께서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 은혜로 이렇게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소원하여야 할까요?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에게도 전도의 영을 불어 넣으셔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도할 수 있는 전도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골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2) 하나님은 나 혼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아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를 무엇보다 간절히 소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시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시 117: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언젠가 우리도 내 주변에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이 자리로 인도하여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정말 그것을 기뻐하신다면 반드시 내게 능력 주실 것이고 사람을 붙여 주실 것이고 내게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겨자씨처럼 심겨져서 반드시 나를 통해서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 복은 그 사람도 나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내가 하나님께 반드시 받아야 할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시 67: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 67: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