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부활을 믿는 사람들/(마 28:16-20)

미션(cmc) 2016. 4. 1. 13:20

부활을 믿는 사람들
(마 28:16-20)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전제로 하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게 되면 지상에서의 삶이 아무리 풍요로울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제일 첫 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바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의 비결은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질병이나 죽음을 원천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어떻게 당하셨는지에 새벽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펴보고 또 합당치 못한 삶을 살았던 지난날을 회개하고 새롭게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무덤에 장사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공자나 석가모니처럼 아직도 그 무덤에 계시다면 우리의 죄 문제는 해결되었는지 모르지만 인간 최대의 난적인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 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 기독교마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낱 도덕적인 종교 윤리적인 종교 사회적인 종교 기복적인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종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절망이 변하여 희망을, 죽음이 변하여 영생을,  슬픔이 변하 기쁨을 주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처럼 부활과 영생을 축복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까?
오늘 증거되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우리에게 언제 죽음이 닥쳐오든지 부활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1. 부활을 불신하는 사람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만 하면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은 우리의 이성이나 경험만으로는 쉽게 믿기 어려운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이천 여년 전 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부활을 믿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에 안과 염려와 미움과 욕심에 사로 잡힌 채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예수님 당시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적극적으로 숨기려고 획책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소위,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잘못된 삶을 살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그 잘못을 지적해주셨을 때 즉시 회개하고 돌이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 수호와 아집과 독선과 교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시기하고 미워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 증인들까지 동원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더욱 불안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님이 살아나시게 되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몰래 훔쳐다가 감추었기 때문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게 한 것입니다.
(마 28: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종교자들은 그 사실이 헛소문이라고 역으로 헛소문을 퍼뜨렸으니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입니까?
그와 같은 비 신앙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배척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형이 되었습니다.

2) 돈에 매수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운명하시고 그 상태로 무덤에 삼일 동안 장사되었다면 어떻게 기절한 사람이 깨어나는 것처럼 다시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우려했다는 것은 그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밤새도록 지키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제일 먼저 목격한 파수꾼들의 입을 막기 위해 돈으로 그들을 매수하여 제자들이 도적질 해갔다고 거짓 증언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파수꾼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목격하고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갔다고 거짓증인 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권력이나 돈의 권세 앞에 굴복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고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거하였다면 마치 예수 탄생때 베들레헴 들판의 양치기들처럼 영광스러운 복음전도의 증인들이 되었을 것인데 돈 때문에 그 기회를 차버린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양심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더럽히는 힘이 있지만 정반대로 사람을 살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힘은 없습니다.
물론 신불신을 막론하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절대로 필요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을 노예로 삼아야 하고, 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돈을 선한 일에 노예처럼 부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3. 믿음 없는 제자들

예수의 부활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것으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십자가 고난과 더불어 부활을 예고하셨음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면 그 다음 수순은 부활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당연히 부활을 맞이할 만반의 대비를 했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도 전에 채찍질 당하시는 것만 보고도 겁을 먹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주님을 뒤로 하고 줄행랑의 처 버리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친히 찾아와 보이셨을 때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의심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눅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심지어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자랑을 하고 있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제자답지 않은 매우 심각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1) 보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친히 동행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 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눅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증거물이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막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눅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3)  여러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위증한 파수꾼들도 있었지만 도저히 거짓말 할 수 없는 천사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천사를 믿지 못하면 하나님도 못믿습니다.
(마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요 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왜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왜 믿지 않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딱 하나 성경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의 영광입니다.
성경은 그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자기들이 듣고 보고 체험한 사실들을 성경에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많은 증거와 증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 20: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불신앙에 가득찬 우리들에게 믿음을 더해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20:31) “그런데도 이 책에 있는 표적들을 기록한 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오시기도 전에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약속하신 성경, 예수님께서 그 성경대로 오셔서 성경 말씀대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허다한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한 성경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도마처럼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 부활의 증인들

세상에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오늘 나만이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해야 하는 까닭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세상에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믿지 않고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상에는 이전에 나처럼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못함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장차 영원한 죽음과 심판에 이르게 될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해 주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되겠다고 약속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전에 고향 땅에서 우상을 숭배했을 때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고 또 그로 말미암아 다른사람까지 복되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고 또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아야 할 원천적인 복이 무엇이며,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가장 귀한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돈도 건강도 권력도 아닌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새생명으로만 가능합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죄의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했지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성경에서 죄와 질고와 죽음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인생들이 사는 모든 나라 모든 백성에게 가서 이 복을 전하고 나누는 제자들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마 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일을 위해 주님은 제자들을 통해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 영생을 얻는 구원의 축복입니다.
누군가가 가서 전해주지 않으면 들려 주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수도 들을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과거에는 불신앙의 사람이요 우상숭배자들이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듣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그 빚을 갚는 일은 우리에게 누군가 복음을 전해주고 가르쳐 준것처럼 우리도 가서 전하고 가르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들었다고 가르침 받았다고 저절로 다 믿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상 전도를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고서도 직접 말씀을 듣고서도 부활을 체험하고서도 믿지 못했다면 하물며 보지 못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조건 가서 전하라고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깨달아지게 하고 믿어지도록 가정 교사처럼 우리 곁에서 도우신 지혜의 성령 능력의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는 듣고 보고서도 믿지 못했으나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이해되어지고 깨달아지고 믿어지게 된 것이며, 그 때부터 사랑의 사람으로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했을 때 회개하며 가슴을 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도운동을 벌리고 있지만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 바로 믿어지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들 그 위에 성령의 임재와 충만이 동시적으로 일어날 때 마치 로켓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들의 변화요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이요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에까지 복음이 확산되어진 원동력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겁쟁이 제자들이 부활을 경험한 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복음을 증거 하는 순교자가 되었다. 베드로는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고 담대히 외치게 되었다.  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1) 무엇보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웠는데 우리 서로 원망하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2) 자만하지 말고 지속적인 신앙의 성장과 전진이 있어야 합니다.
(빌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3) 입으로만 아니라 변화된 삶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것이 바로 매일 매순간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매사에 겸손하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신실하게 충성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