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서서평 이야기

미션(cmc) 2016. 12. 17. 20:48

서서평 이야기



엘리자베스 쉐핑(1880-1934). 이 사람은 독일인 여성으로 자선과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였다. 이 나라가 일제에 의하여 병합된 직후인 1912년. 빛고을 광주에 와서 제중원의 간호사로 선교사역을 22년간 했던 그녀는 1934년 54세라는 나이로 이 땅에 뼈를 묻은 사랑의 사도였다. 그녀는 32살 되던 1912년 미국 남장로교 외국 선교부가 파송하는 간호 선교사로 선발되어 한국에 왔다. 한 때 군산 예수병원에서 사역을 하였고 그 뒤 서울의 세브란스 병원 간호학교의 교사를 거쳐 지금의 광주 기독병원의 간호사가 된 그녀는 이 땅에 와서 맨 먼저 한국말과 한국풍습을 익힌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서서평으로 개명한다. 천천히 할 서(徐)자와 모난 성격을 평평하게 한다는 뜻에서 평평할 평(平)자를 붙여 서서평(徐徐平)이라고 했는데 자신의 이름 쉐핑을 한국식으로 살린 것이기도 하였다.

한국 땅에서 22년을 사역한 그녀, 언제나 굶주린 사람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고 그가 죽을 때 그의 거처에는 밀가루 두 홉밖에 없었던 청빈의 사람이었다.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태어나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32살의 나이에 조선에 와서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묻힐 때까지 빈민의 어머니로 살다 간 선교사였다. 서서평은 수양딸 13명과 나환자의 아들 1명 등 14명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길렀고 38명의 불쌍한 과부들을 돌본 조선의 어머니였다. 소천하기 1년 전인 1933년. 50여명의 나환자들을 이끌고 서울로 행진하여 조선 총독부 앞에 이르렀을 때 동참한 나환자들의 수가 530명에 달했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거세 등으로 나환자의 씨를 말리려던 총독부는 결국 두 손을 들었고 서서평의 이 일은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병원과 요양시설로 이어졌다.

조선간호부의 초대 회장을 지낸 서서평은 1934년 6월 26일 새벽 4시 “천국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남긴 채 영면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장기는 모두 의학 실천을 위해 기증되었다. 장례식은 12일장으로 1934년 7월 7일 양림동 오웬기념각에서 광주시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자선과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친 빈민의 어머니 서서평양. 서거”라는 제목과 부제로 “재생한 예수”라고 대서 특필하였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서 영면한 그의 묘역에는 오늘도 그를 흠모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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