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연수과/백향목

겨자씨 모임 이야기

미션(cmc) 2016. 12. 17. 20:55

겨자씨 모임 이야기


겨자씨 모임은 모라비안의 지도자가 된 진센돌프(1700~1760)가 할례대학에서 재학했던 시절 동료 5명과 함께 만들었다. 이 모임은 다른 그리스도인과 교제하면서 신앙으로 고심하는 친구를 돕는 것은 물론, 당시 복음이 전파되지 아니한 해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서구 교회들은 선교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였다. 선교는 신자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던 때였다. 그가 이 모임을 갖게 된 것은 1710~1716년이었다. 당시 10대의 소년이었던 진센돌프는 이미 이 때부터 세계 선교의 이상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센돌프의 선교적 이상은 후일 그가 비텐베르그와 우트레히트에서 공부하면서도 끊기지 않는다. 겨자씨 모임의 정신적 연원은 할례대학의 창설자인 필립 야곱 스패너로부터였다. 17세기 중엽 독일교회는 죽은 정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부패와 타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스패너는 1675년 그의 나이 40세 때에 프랑크프루트에서 한권의 책을 출판하였는데 그것이 경건주의의 방향을 제시한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이었다. 이 책은 당시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탄식하며 교회갱신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교회갱신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소그룹 모임을 제안했고 이러한 모임을 ’교회 속의 작은 교회‘라고 표현했다. 스패너는 이 소그룹 운동에서 신앙의 활성화와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했고 이러한 이상을 구체화 하려고 세운 것이 할례대학이었다.

스패너의 이상은 제자인 프랑케에 의해 계승된다. 프랑케는 성경연구와 경건훈련을 강조하면서 할례대학을 통해 목사를 배출했다. 스패너가 이 대학을 세운지 50년도 채 안된 대학에서 6000명의 목사와 60여 명의 선교사를 인도에 파송했다.

루터파 가정에서 출생한 진센돌프는 그의 나이 10세가 되기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단 한 가지 열망 밖에 없다. 그것은 그분 오직 그 분 뿐이다.” 진센돌프는 스패너를 계승한 프랑케를 할례에서 만나면서 ‘겨자씨 모임’을 통해 그의 이상을 구체화 해나갔다. 겨자씨 모임을 만들어 기도하면서 사랑하는 동지들과 어려서부터 세계선교를 꿈꾸었던 진센돌프는 18세기 선교사역에서 가장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선교 지도자가 되었다. 역사가 루스투커는 진센돌프에 대하여 선교의 위대한 세기가 도래할 수 있게 한 ‘개신교 선교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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