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이규왕목사

감사와 회개 그리고 소망/(시 85:1-13)

미션(cmc) 2017. 7. 13. 18:20

감사와 회개 그리고 소망
(시 85:1-13)


(시 85: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시 85: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시 85: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시 85: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시 85: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시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시 85: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시 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시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시 85: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 85: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 85: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시 85: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우리가 혹 낯선 곳에서 주일을 맞게 되었을 때 교회를 찾게 된다면 수많은 건물 가운데서 먼저 십자가가 있는 건물을 찾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 다수가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진실한 크리스천인가를 상징하는 마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를 목걸이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 감사-모두가 다 은혜

오늘 시편 85편은 표제에 기록된 것처럼 고라의 자손이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시편을 남겼는데 바로 오늘 시 85편입니다.
(시 85: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삼차(B.C. 605, 597, 586)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된지 칠십 년이 차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렘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사람들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상관치 않으시고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바벨론 땅에서 칠십년 간 포로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용기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칠십년의 때가 되었을 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방나라 왕들을 움직이셔서 삼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시켜(B.C. 536년)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오늘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한 죄에 대한 형벌로 바벨론 땅에서 칠십년 동안 포로생활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 전 과정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감사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 85:1) ‘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여기서 ‘은혜 베푸사’라는 말 (hx;r;,, 라차)은 ‘기뻐하다, 호의를 베풀다’ 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만이 아니라,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칠십년을 보낸 기나 긴 고난의 과정조차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말은 단지 해방 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이방에 포로가 되고 또 칠십년 동안 고난을 받은 전 과정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와 같은 고난이 은혜일까요?
(시 85: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여기서 ‘사하시고’라는 말(ac;n:, 나사)은 주의 백성의 죄악을 ‘들어올리다, 가지고 가다, 취하여 가다’라는 뜻으로 그 때문에 죄악이 떠나게 되었으니 은혜입니다. 또 죄를 ‘덮으셨나이다’라는 말(hs;K 카사)은 죄를 찾을 수 없도록 ‘덮다, 숨기다, 감추다’라는 뜻입니다.
(시 85: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여기서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라는 말(qp'a: 아파크)은 ‘붙잡다, 충동을 제지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분노하심과 진노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꽉 붙드셨다’는 뜻입니다.
당시 이방나라의 죄악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히 더 크고 악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시지만 그 보다 죄가 훨씬 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책임을 묻고 벌하시는 것은 그 만큼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그와 같은 고난 때문에 죄악이 사함을 받고, 그 때문에 모든 죄를 덮으시고, 그 때문에 분노를 거두시게 된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육 개월 동안의 삶이 비록 힘들 지라도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시각으로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은혜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비록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 불행처럼 생각되는 질병이나 실패나 사고조차도 나를 해롭게 할 수 없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그 뿐이겠습니까?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의 원죄와 평생 동안 짓는 모든 죄를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그 보혈로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시고 덮어 주셨을 뿐 아니라, 지옥 형벌에서 우리를 건져 내어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고 천국의 기업을 얻게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면 그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 한 마디로 감사, 감사, 감사 할 것뿐입니다.
(딤전 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 회개-부흥을 위하여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의 반전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시편 기자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죄악을 사하시며 모든 죄를 덮으시고 분노와 진노를 거두셨음에 대해서 감사하였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 기자는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받은 은혜를 잘 유지하고 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마음도 생각도 언어도 행동 일체를 조심하는 삶을 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마치 개가 토하였던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이 그와 같이 넘치는 은혜를 받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여전히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재촉하였습니다.
이번 만이 아닙니다. 지난 날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날마다 맛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그치지 않았었습니다.
어찌 그 뿐이겠습니까? 사사시대의 반복되는 범죄와 하나님의 징게와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다시 범죄하는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바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는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중단해 달라는 회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시 85: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시 85: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죽을 것을 모면하기 위해 무조건 살려 달라는 기도만 하기가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구차한 목숨 때문이 아니라 다시 살리셔서 주를 기뻐하는 살도록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시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여기서 하나님께 “다시 살리사”라는 기도는, 다른 말로 ‘부흥시켜 달라’는 말과 똑같은 기도입니다. 
(합 3:2)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또한 주를 기뻐하도록 이라는 말(jm'v; 사마흐)은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의 미완료 동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다시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근심시켜 드리는 부정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긍정적인 삶을 변화를 받는 것이 참된 부흥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회개가 없이는 진정한 부흥이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껏 구원하여 놓으셨는데 다시 옛날 죄악으로 회귀하여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나라, 그러한 교회, 그러한 성도를 부흥시키실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과 싸울 때가 아니라 적을 이기고 난 다음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어 넋을 놓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지난 날 세계 교회들이 놀랄만큼 크게 부흥하고 많은 축복을 받은 한국교회와 우리들이 현실을 돌이켜 보면 지난 날의 부흥의 불길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고 점차 침체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점인 것입니다.
예화
우리 한국 교회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몇 년 전 어느 단체에서 한국교회 실태 조사를 한 통계에 의하면 전혀 기도하지 않고 성경 거의 읽지 않는 성도 가 20-25%, 교회에 이름은 등록되 있으나 예배 출석하지 않는 성도 30%,  교회 출석은 하나 교회 일에 협조하지 않는 성도 40%, 주일 낮 예배만 드리는 성도가 60%, 선교, 구제, 장학사업에 동참하지 않는 성도70%, 특별 부흥회나 행사에 별 관심이 없는 성도80%, 전혀 전도하지 않는 성도 95%라고 합니다.  과연 이대로 가면 앞으로 한국교회는 영국교회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부흥은 교회적으로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편 기자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그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내 멋대로 살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영적인 부흥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시 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어리석어지게 되면 귀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허탄한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가장 확실한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3. 소망-하나님에 대한 기대

해가 진 초저녁 보다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은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그 좋은 예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간 요셉입니다. 갈수록 고난이 가중되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경외한 요셉은 그 모든 고난이 결국 요셉을 애굽의 총리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르게 하는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절망만 한 것이 아니라 소망을 품고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시편기자가 하나님께 어떤 소망을 품고 기도하였는지 성경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깝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지 아니한다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하는 믿음의 사람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땅인 이스라엘에 가득하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시 85: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 손에는 정의 한 손에는 사랑을 가지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원하여 오셨습니다.
그것이 완성되는 날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사랑과 진리가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추는 날이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그러한 날이 올 것을 소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시 85: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 85: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2)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하나님은 반드시 결과를 좋게 하여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였습니다.
(시 85: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예나 지금이나 참된 믿음은 보이는 현실이나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현실이 고통스러울 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날,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믿음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시편 기자의 소망은 너무나 이상적이라 현실로는 불가능한 논리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들이 볼 때는 믿음은 마치 뜬 구름을 잡으려는 것처럼 허황된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편 기자의 믿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빈틈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은 마침내 때가 되니 거룩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시편 기자가 바라던 소망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은 하나님 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갈등과 대립관계에 있던 사랑과 진리, 의와 화평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와 같은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하신 일입니다.
1)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실 때에 그분의 긍휼과 공의가 서로 입을 맞추는 것을 보여주셨고,
2) 이방인에 대한 긍휼과 유대인에 대한 진리가 나타나셨고,
3)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셨고, 십자가의 은혜가 죄 사하심에 나타난 은혜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정의와 진리와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크신 구원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는 좋은 날이 오게 된 것입니다.
(히 4:16, 개정)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주님의 인자하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구원을 얻고 화평을 얻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으로 칭함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영광을 보이십니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것들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인은 의가 주의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의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앞에서 행하시고 우리를 주의 종적을 따라 행하도록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갈 길은 가르쳐 주시며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주님께 의탁하고 주께서 지나가신 그 발자국을 따라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시 85: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비록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은 험하고, 위험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많고, 잘못 곁길로 갈 수도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이 걸어가는 발자국을 따를 것을 명하신다. 그분은 앞서가시며 우리에게 발자국을 남겨 놓으실 뿐만 아니라,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사 평탄하게 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발걸음을 쉽게 따를 수 있도록 하신다.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