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교/요르단선교사

『선교 백서』를 위한 선교사 사역

미션(cmc) 2017. 9. 27. 19:38

『선교 백서』를 위한 선교사 사역

 

1. 선교사의 개인적 생애(출생과 성장)

- 출생과 부모, 가족 관계

강덕수 선교사는 1966년 6월 20일 부친 강석정과 모친 오영순 사이에 2남1녀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디모데와 같이 모태로부터 경건한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아 하나님의 말씀과 따뜻한 사랑으로 양육받으며 좋은 믿음의 가정환경 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난 때는 중학교 일학년 때 처음 참석했던 여름수련회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적으로만 알고 믿었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졌던 나에게 찾아오셔서 진정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인격적으로 영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이며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셨고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한때,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사였던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던 저에게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맡아 감당하게 하시는 은혜를 통해서 나의 이러한 성격들을 보다 적극적이고 통솔력 있는 성품으로 다듬어 주셨고 사역자로서의 리더십과 자질들을 배워나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황동노회 학생면려회 회장직을 맡아 섬기면서 좀 더 폭넓고 더욱 유익한 배움이 있었습니다(1983년).

청소년기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을 앓으면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이 때 즈음 조그마한 사업을 경영하시던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대학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저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없었고 재수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도 되지 않아 1985년 경남 마산에 있는 외가댁에서 지금의 창원 국립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국립대학교여서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등록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함께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독립하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마치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 채고 삼촌 집으로 도망하면서 지낸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속이는 자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 시켜주셨던 것처럼 저의 신앙생활의 큰 전환점이 대학시절 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하나님께서 한국대학생 선교회(C.C.C)라는 선교단체를 통하여 더욱 사역자로서 구체적인 훈련들을 받게 하셨습니다. 나의 여러 가지 모난 성격들을 공동체 훈련을 통하여 형제가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랑하며 섬기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제자로서 주님의 삶과 인격을 닮아 가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역자를 일꾼으로 들어 쓰시기 전에 먼저 그릇을 준비시키는데 우선되는 것이 성품과 인격의 훈련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되는 4영리 전도와 양육에 대한 훈련의 경험을 통해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고 캠퍼서 대표 순장을 맡고 훈련받으면서 섬기는 리더십과 제자사역에 대한 비전과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훈련을 통해서 나의 성품과 인격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연단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가장 큰 은혜는 야곱이 라헬을 만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같은 캠퍼스에서 평생 반려자로 함께 살아갈 아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아내 이미옥 선교사는 1968년 9월 1일 경남 거제시에서 부친 이필형과 모친 김두례 사이에서 3남 4녀 중 4녀로 출생하여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경남 창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창원여고를 졸업하고 국립창원대학교 교육학과를 1991년에 졸업했습니다.

아내는 부모님께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는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4년간 한국대학생 선교회에서 전임간사 사역을 하며, 대학생들(부산여대)의 신앙교육과 상담사역을 3년간 하였고 C.C.C가 가지고 있는 전도와 양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역교회에 그대로 전수하여 교회에서 평신도를 중심으로 4영리를 가지고 전도하고 양육하는 훈련(New Life Training Center, NLTC)을 4년간 섬기면서 교회를 섬기고 훈련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 후로 본인과는 대학시절 같은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졸업 7년 후에 서로 배우자를 위한 기도 끝에 1995년 5월 13일에 당시 교역자로 섬기던 서대문 교회(현 장봉생 목사 담임)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평생 사역의 귀한 동역자요, 아내로서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녀 주희(96년생, Minot state University 재학), 장남 창대(97년생, Wisconsin State Superior University 재학), 차녀 주현(2000년생, Whiteman Academy in Jordan 재학) 삼남매를 우리 가정에 귀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2. 선교 헌신 동기 및 준비

 

대학졸업 당시 저는 진로를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던 중에 캠퍼스에서 새롭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훈련받도록 인도하신 선교단체의 간사로 지원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목사 되기를 서원하셨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총신 신학대원에 입학기로 결정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저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이러한 부모님의 권유와 기도가 지금 이 길을 가도록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부모님의 바람도 있었지만 나의 진로를 놓고 하나님께 대한 나의 진지한 물음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대원을 입학 후 신학을 통한 학문과 함께 목회현장을 통해서 목회자로서의 소양을 배우기 위해 서대문교회(현, 장봉생 목사담임) 교육전도사로 부임한 것이 첫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1994년 4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서대문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서 사역할 당시 교역자로서의 인품과 목회적인 자질들을 훈련하여 주신 김태우 목사님(당시 서대문교회 담임), 그 이후 목회자로서의 길을 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첫 전임전도사로 부임했던 진주성북교회(1997년 1월 – 1998년 11월)당시 평생 동역자로 잊지 못할 진주성북교회 이춘수 목사님(現, 성암교회 담임)을 통하여서는 캠퍼스에서 훈련받은 제자사역을 목회현장 속에 어떻게 적용하고 열매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귀한 것들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목사 안수 받은 후 다시 서울에서 사역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곳에서는 교구사역과 청년부를 지도하면서(1998년12월 - 2001년 10월) 대광교회 김명섭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성실한 목회자의 모습과 목회만 전념하시면서 양 무리를 섬기시는 목회자로서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배울 수 있도록 목회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분당남서울교회(2001년 10월 – 2003년 11월) 최요한 목사님을 통해서는 개척 3년 만에 2000명이 넘는 성도로 부흥시킨 목회열정과 기도와 헌신의 삶을 보며 자칫 제자훈련이 갖는 경직된 목회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나에게 성령의 인도와 영성목회에 대해 신선한 도전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목회지였던 수원제일교회(2003년 11월 – 2009년 3월) 이규왕 목사님은 장년성도 3,500명 모이는 중형교회의 담임목사로서의 지도력과 섬기시는 인격에 많은 도전을 받았고 특별히 성경적인 강해설교를 통해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어떠한 도전과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회의 우선순위를 선교에 맞추고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의 모델을 한국교회에 제시할 만큼 교회의 우선적 사명인 선교에 대한 열정을 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배움은 매주일 담임목사님과 일주일에 한 번 씩 장로 일곱 분과 부목사 다섯 명이 함께 모이는 셀모임을 통해서 목사님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영적지도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분들이 있었기에 부족하나마 오늘의 제가 있었고 사역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고 고백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처음 대학시절 대학생선교회(C.C.C)에서 훈련받으면서 당시 총재이셨던 김준곤 목사님께서 부르짖으셨던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고 대학교 2년, 여름 전국대학생 몽산포 수련회에 참석하면서 선교에 헌신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지속적으로 선교에 대한 부르심에 대해 준비하였습니다. 부목사로 사역하면서도 총신 선교대학원에 진학하여 선교목회 석사과정(TH. M)을 졸업하였습니다(2004년 3월 졸업). 졸업하면서 비전트립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3개국에 있는 선교현장을 방문하면서 선교에 대한 헌신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와 함께 동일하게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준비하면서 중국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게 하셨고 실제로 선교여행을 온 가족이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고 준비하던 중에 ‘성장하며 선교하는 수원제일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선교사로 파송을 위한 준비와 훈련으로 2008년 1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세계선교회(G.M.S) 선교훈련 수료하고 총회 선교사로 임명받았습니다. 그 후 수원제일교회 당회와 선교위원의 결정으로 팔레스타인 선교사로서 베들레헴으로 2009년 4월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파송을 받을 당시 아내와 나는 그동안 품고 기도했던 중국선교가 아닌 중동 팔레스타인으로 파송 받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진지한 물음과 기도하는 가운데 선교는 내가 원하는 선교지가 아닌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 아내는 “그동안 연애는 중국과 하고 결혼은 팔레스타인과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사역은 베들레헴 보아스 뜰에 450평 면적에 지하1층, 지상 4층의 선교센터를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임 선교사로서 아랍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함께 동역하는 선임선교사 가정과 팀을 이루어 사역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점령지였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선교사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체류비자를 얻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1년 동안 불법체류자로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6개월 임시방문 비자를 얻었지만 결국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아 요단강을 건너 요르단 암만으로 사역지를 변경하게 되었고 2011년 1월부터 현재까지 요르단에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4월 처음 팔레스타인 지역 베들레헴에 수원제일교회(담임 이규왕 목사)에서 파송을 받아 현지 언어인 아랍어와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해 배우고 알라와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무슬림들과 함께 살면서 적응할 때 즈음 이스라엘의 점령지역으로 자주권이 없는 그래서 아직까지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팔레스타인에서 외국인이 그 땅에 정착해서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선교지에서 이스라엘의 비자거부로 말미암아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사역을 하며 사는 선교사라면 추방에 대한 경험이 없는 선교사 없을 정도로 힘든 곳이 중동이기도 합니다. 중동은 대부분의 나라가 선교 자체가 불법이고 안전한 비자를 가지고 장기사역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 가운데 요단강을 건너 동편 땅 요르단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3. 선교 전략 및 유형

-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좌우명 또는 비전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선교사역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한 도구로 부르시고 택하셔서 사명을 주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분명 인간의 경험이나 신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따라서 선교지의 교회와 영혼들을 위하여 전도하며 섬기는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 일에 부르시고 감당하시도록 함께 하심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로서의 분명한 소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서 부르신 이유를 생각해보면 오늘 날 복음이 복음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바르게 전파하는 선교를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선교사가 할 일은 인간의 지혜로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입을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언제나 쉽지는 않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메시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정확하게 사용하라고 부탁했듯이 저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신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실천하는 일에 생명을 거는 선교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 성공을 위한 선교가 아닌 본질에 충실한 선교사역을 위해 힘씁니다.

사역에 있어서 진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며 사람에게도 진실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개종자를 만들어 내어야만 성공한 선교사이고 본국에 있는 교회들로부터 인정받고 많은 후원과 지원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간혹 선교사 가운데는 사역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선교지의 영혼들이 자신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 존재해야하는 대상이 되고 맙니다. 특히 아랍 선교는 다른 선교지처럼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 귀하고 한 영혼을 얻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열매에 집착하다가 선교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선교사이기 전에 저를 목사로 부르시고 목회자라면 무엇보다도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불붙는 것같이 골수에 사무친다고 하는 예레미야처럼 말씀을 전파하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열심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사는 복음에 대해 식어지지 않는 열정과 확신에 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 자신에게 먼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감격을 가지고 선교지의 영혼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갖도록 노력하는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네 번째로 현지인을 양육하고 제자삼아 지도자로 세우는 선교를 지향합니다.

선교사는 단순히 선교지의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뿐만 아니라 복음의 내용과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동안 짧은 목회현장 속에서 나마 제자훈련에 대한 사역경험을 통해서 얻은 목회적 확신입니다.

이것을 위해 선교사의 삶을 오픈하고 복음전달자와 수용자간에 전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선교, 마치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것이 참된 목회의 모델이라면 오늘날 선교가 단지 교회를 설립하고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는 등 선교의 한 단면에만 치중하면서 선교가 실적주의, 형식주의, 물질만능주의로 변질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선교는 복음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제자를 길러내고 이들이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자립하여 또 다른 민족과 종족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선교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교지의 영혼들을 훈련하여 선교사의 동역자로서 함께 선교사역에 참여시키고 이들을 영적 지도자로 세우는 선교사역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비전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선교현장에 적절한 전략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이슬람권에 있어서 기본적인 선교 전략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슬람과 코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는 것입니다.

모슬렘과 이슬람은 어떻게 다른가? 이슬람은 종교이며 모슬렘은 이슬람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배우는 것조차 꺼려해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길이 없습니다. 이슬람권에서 사역하며 복음전도 하는데 직접 영향이 있는 방법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하며 그들이 믿는 코란 경전에 대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이 없이 대화 할 경우 그들로부터 일방적인 설득만 당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아주 적은 이슬람에 대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깊은 이해는 복음 전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코란을 터부시하며 코란에 대한 지식 없이 이슬람권 선교를 계획합니다. 코란은 성경에 대해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많이 있으며, 특히 예수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코란을 안다면 그에 대한 지식은 코란과 성경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코란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며 오히려 성경과 비슷하고(코란, 수라19:16~21) 심지어 코란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쓰고 있습니다. 결국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그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바른 진리를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이슬람권 선교는 팀 사역과 연합사역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선교지에서 사역도 각각 은사를 따라서 다양한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연합하여 함께 사역으로 이루어질 때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경은 단독적인 사역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써 각 지체를 관장하며, 지체는 상호 유기적으로 은사에 연관되어,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교가 그러하겠지만 이슬람권 선교는 분명히 서로 연합하여 각자의 은사를 인정하며 팀을 이루어야만 한다. 실제로 현재 요르단에서 저와 아내가 맡은 사역은 현지인 사역자와 한인 사역자와 연합하여 모두 팀사역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슬람권 선교는 동일한 목적과 사역을 목표로 할 때 같은 교단이나 선교단체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단체와도 연합사역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 사역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고 좋은 팀은 팀 전략가, 중보 기도자, 잘 섬기는 사람, 행정가와 좋은 일꾼들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개인 전도와 양육을 통한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이슬람권에 접근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방법은 그 지역과 성격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제한지역으로 분류되어 길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찬양하면서 공개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인 전도의 훈련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요르단과 같은 제한지역에서 전도 방법은 관계를 통한 일대일 전도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이슬람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중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듯이, 예수님 당시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개인전도의 경험이 없으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만 할뿐 활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개인전도 경험은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선교의 가장 기본은 한 영혼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개개인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그들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게 하는 것과 믿기로 결심한 사람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실한 제자로 삼아서 또 다른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우리 복음의 능력은 곧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가 곧 선교의 동기고 출발점이여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라고 부탁한 것처럼 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을 때 선교의 열매가 풍성하게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권에는 잘 정비된 프로젝트와 거창한 계획보다 개인전도를 필요로 하고 있고 그 개인전도는 여전히 모슬렘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권 특히 요르단 상황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살펴보건 데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선교 전략이 필요합니다.

 

1. 현지 교회와의 협력선교 사역

 

요르단은 이슬람 국으로 외국선교사 활동을 제한하며 국내교회 활동을 억제하는 법적 정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의 자유를 소극적으로 허락하며 교회와 신학교 까지도 용납하지만 기독교 핍박정책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단은 초대교회의 전통과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은 교회와 성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느보산과 얍복강, 요단강 예수님 세례터, 엘리야의 고향인 디셉 지역 등 성지로서의 기독교 역사와 소중한 영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2.2%가 기독교인이며 로마가톨릭, 그리스정교회, 개신교를 모두 합한 통계입니다.

따라서 요르단 선교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모슬렘을 위한 개종사역도 중요하지만 기존 교회와 성도들을 깨우고 훈련하여 자국민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선교가 우선되어야할 과제입니다. 요르단 성도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크리스천의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신실하고 헌신된 크리스천이라기보다는 명목상 성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요르단 에는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하나님의 성회, 복음자유주의 교단 등 5개의 개신교단이 있으며 이들 교단과 현지 교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요르단 정부로부터 종교비자를 얻을 수도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들 교단과 교회와 잘 협력하여 사역함으로써 선교의 기반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요르단 선교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교회 개척사역

요르단에서는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를 담임할 수도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현지 크리스천들을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로 수평 이동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에 교회 개척은 현지 목회자를 담임으로 세우고 함께 협력하는 교회개척이 바람직합니다. 본 선교사는 요르단에 입국하여 노동하는 이집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마합바 교회)를 2013년도에 개척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3. 난민사역

요르단은 난민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요르단 본토인의 인구보다 난민의 수가 더 많은 나라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6일 전쟁을 통해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국민을 자국민으로 받아들인 정부시책의 결과 이 나라의 60%에 해당하는 인구가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며 2011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시리아 난민이 약 200만에 이르고 이라크 난민 150만이 요르단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요르단에서 이러한 난민을 대상으로 한 사역에 많은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다. 본국에서는 가족과 친족에 결속되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던 모슬렘들이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서 가족을 잃고 나를 떠나 타국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호사역과 어린이교육, 의료봉사 등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개종하는 사람들을 열매 맺게 됩니다. 아내 이미옥 선교사는 시리아 난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뜨개질과 비즈공예 등을 가르치면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인 또한 이라크 난민교회와 문화센터에서 이라크 난민과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4. 기타 이외에도 요르단에서는 단기 선교팀 방문을 통한 사역, 태권도, 의료봉사, 신학교 교수, 한글교사, 중보기도, 인터넷을 통한 사역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한 사역이 가능합니다.

이슬람권에서 목사와 선교사 비자를 받을 수도 없고 오히려 선교사라는 신분이 밝혀지면 추방을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지역은 직업과 기술을 가진 전문인들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문이 열려 있습니다. 요르단의 경우 성지라는 특성 때문에 기독교인들에 대해 호의적이며 관광자원으로 돈벌이를 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성지순례를 겸한 단기 선교팀 사역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가능성 있는 전문사역을 나열해 보면, 모든 나라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애쓰기 때문에 관광 사업을 하다보면 보다 넓은 융통성을 가질 수 있으며 호텔, 모텔, 게스트 하우스 등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요르단에는 여행업과 숙박업 그리고 한류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센터,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4. 연도별 선교활동 내용(연도별 또는 시기별)

 

2009년 3월 22일 수원제일교회 파송예배

2009년 4월 14일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사역 시작, 언어 및 문화적응, 한국문화원 사역(조이하우스 유치원, 한국문화원)

2010년 3월 11일 베들레헴 선교센타 기공식(450평 대지, 지하1층, 지상 3층, 보아스의 뜰)

2011년 1월 요르단으로 사역지 변경(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비자 거부로 추방)

2011년 11월 하쉬미솨말리예 교회 협력사역(이라크 난민교회)

2012년 1월 이집트 노동자 교회 개척을 위한 가정방문 사역시작

2013년 3월 10일 마합바교회 개척예배 드림(요르단 내 이집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역)

2013년 12월 시리아 난민 여성 위한 사역(뜨개질, 비즈공예, 퀼트사역)시작

2015년 7월 시리아, 이라크 난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활영어강좌(E.T.I) 사역 시작

2015년 9월 요르단 현지교회 여성 지도자를 위한 마더와이즈(Mother Wise)사역시작

2015년 12월 14일 요르단 현지교회 여성 지도자를 위한 마더와이즈(Mother Wise) 1기 수료식(12명)

2016년 5월까지 마더 와이즈 2기 수료식

2016년 8월 21일부터 2017년 8월 17일까지 첫 안식년을 가짐, 안식년 기간 중 풀러선교대학원에서 선교목회학 박사(D. MIN)과정 중

2017년 8월 18일 안식년을 마치고 요르단으로 사역복귀

 

5. 선교 사역 주요 결과 및 성과

1). 마합바교회 사역(사랑의 교회)

요르단 암만 주변도시에 거주하는 이집트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개척하여 은혜 가운데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3월 3일 첫 주부터 예배장소를 정하고 교회를 시작하고 현재까지 매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매 주일 30-4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주 중에는 심방과 양육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동역하는 현지 사역자(이집트 출신의 이합 전도사)와 더불어 주일예배를 섬기고 주중에는 형제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방문하여 함께 차를 마시고 때로는 식사도 하면서 이들을 더 깊이 알아가고 예배시간에 부족했던 교제를 풍성히 나누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형제들은 가족을 떠나 이곳 요르단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며 3-5명씩 함께 살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기철인 12월부터 3월까지는 춥고 비가 오는 계절에는 일 년씩 비자 갱신을 위해 이집트에 돌아갔다가 다시 3월부터 요르단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기간 중에는 몇몇 남아있는 형제들을 위주로 집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하는 노동자들이지만 신앙의 열심에 있어서는 오히려 요르단 교회와 성도들 보다 더 앞선 형제들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주류인 이집트 콥틱정교회, 가정교회, 가톨릭 등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예배공동체로서 세워가기 위해 성찬식을 거행하며 개신교 형식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 시리아 난민 여성 사역

2013년 지난 9월부터 시리아 난민 여성들을 위한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미옥 선교사는 매주 두 차례 시리아 난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손뜨개질, 비즈공예, 리본공예 등을 통해서 이들과 교제하면서 복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200만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요르단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사역자들이 이들 난민구호 및 교육, 교회개척 사역 등이 활발히 일어났지만 최근에 들어 요르단 정부가 이러한 외국인들의 사역에 주목하면서 많은 제제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한 때 진행되던 시리아 난민 여성사역이 요르단 정보부에 고발되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역과 방법에 대해 기도하며 준비 중 은혜 가운데 다시 사역이 재개 되었습니다. 매주 20여명의 여성들이 모이는데 이제는 제법 맘을 열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모임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듣는 가운데 개종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직 대다수의 난민 여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매 번 만날 때마다 복음을 들으면서도 거부감 없이 계속해서 모임에 나오는 이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마음 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날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3). 요르단 현지교회 여성리더(Mother Wise) 사역

이미옥 선교사는 요르단 현지교회의 여성들이 교회와 가정에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각각 사명을 발견하고 헌신된 주님의 일꾼들을 세워 지도자로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한인 여성 선교사 5명이 함께 연합으로 팀사역을 하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하는 현지교회 여성들은 대부분 요르단 현지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사모들이며 이들을 통해서 현지교회를 섬기는 사역의 기회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2017년 현재 6기까지의 요르단 여성 지도자들을 훈련하여 120여 명의 수료자가 생겼습니다.

 

6. 평가 및 회고

- 현재까지 본인 사역의 평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처음 팔레스타인에서 정착과정에 비자문제, 팀사역의 어려움, 추방 등을 경험했던 것이 요르단에서의 사역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교회개척을 통한 교회사역과 시리아 난민과 이라크 난민을 위한 사역, 요르단 현지 교회에서 여성 리더십을 위한 마더와이즈 사역 등 다양한 사역의 길을 열어 주셔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수원제일교회의 선교위원회와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기도 덕분에 어렵고 힘든 시기마다 믿음으로 잘 극복할 수 있었고 더욱이 사역지 변경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 가운데서도 충분한 이해와 배려 덕분에 요르단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고 사역을 지속적으로 펼쳐갈 수 있었습니다.

2016년 8월부터 일 년 동안 가진 안식년은 큰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선교사역을 잠시 내려놓고 지난 사역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안식년을 가지는 동안 요르단 현지 교회를 통한 보다 적극적인 사역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을 위한 사역뿐만 아니라 남성들을 위한 사역의 장을 놓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또한 청년대학생을 위한 사역에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요르단에 있는 이집트 노동자를 위한 교회와 더불어 요르단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사역의 장에 대한 필요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록>

1. 개인 및 가족사항

 

강덕수 선교사 약력(1966년 6월 20일생)

학력

1985년 2월 서울 마포고등학교 32회 졸업

1992년 2월 국립 창원대학교 자연과학대 물리학 학사 졸업

1996년 2월 총신 신학대학원 90회 졸업

2004년 3월 총신 선교대학원 졸업(TH. M, 선교목회학 석사학위)

2016년 8월 풀러신학교 선교목회학 박사(D. MIN) 과정 중

 

목회경력

서대문장로교회 1994년 3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중등부 담당 교육전도사 및 찬양사역자로 사역

진주성북교회 1997년 1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청년부 담당 교역자, 청년 및 평신도 제자훈련 담당

대광교회 1998년12월부터 2001년 10월까지, 교구담당 및 청년부 부목사로 사역, 제자훈련 및 중보기도훈련 담당

분당남서울비전교회 2001년 10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교구 담당 부목사 및 교회행정 담당

수원제일교회 2003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담당 부목사 및 선교위원회 담당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교단(gms)파송 요르단 선교사 2009년 3월부터 2017년 현재까지

 

선교훈련 및 경험

대학시절 한국대학생 선교회(C.C.C)에서 전도와 양육, 제자사역에 대한 지도자 코스 수료(캠퍼스 대표순장으로 사역). 전도훈련(L.T.C 초급, 중급, 고급)과정 이수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지도자과정 40기 수료. 제자교회 제1회 CAL세미나 수료, 「평신도를 깨운다」제자반, 사역반 과정 수료 및 소그룹 인도경험

해외단기선교 경험.

-1992년 한국대학생선교 훈련기간 중 New Life 2000 Conference 참석 20일간 필리핀 마닐라를 중심으로 사역

-1999,2001년 성북교회, 대광교회청년들 인솔하여 필리핀 민다나오 중심으로 모슬렘 사역 중심의 단기선교

-2002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총신선교대학원 권역별 연구과정 중 14박15 일일정으로 선교여행 참석

-2004년 인도네시아 파송선교사 사역지 방문 의료선교팀 인솔 14박15일 동안 사역

-2008년 중국 위해시 현지 신학교 강의

-GMS 요르단 지부 지부장 역임(2015-2016)

 

가족사항

아내 이미옥 선교사(1968년 9월 1일생)

장녀 주희(1996년 3월 13일생, Minot state University 재학),

장남 창대(1997년 10월 8일생, Wisconsin State Superior University 재학),

차녀 주현(2000년 8월 18일생, Whiteman Academy 재학)

 

2. 선교지 국가 개관(선교지역 특성)

1). 요르단 개요

요르단은 중동에 자리 잡은 이슬람 국가로서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초대 압둘라 국왕에 이어 현재 4대 압둘라 2세가 통치하는 왕정국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시리아, 북동쪽으로는 이라크, 동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남쪽으로는 이집트와 국경을 두고 있어 요르단은 지리적으로 중동선교에 있어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현재 인구는 약 900만 명이며 이 가운데 70퍼센트가 타국에서 들어온 이민자이거나 난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나그네의 나라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서 시리아 난민이 대거 유입되어 전쟁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고 나라를 떠나 살아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활발한 선교활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요르단의 정치는 공식적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군주제라곤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고 국왕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전제 군주제 국가입니다. 국왕은 총리와 군부 및 정보기관 수장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 대법관과 의회 의원까지 국왕이 임명합니다. 의회 역시 국왕이 해산권을 가지고 있어 국왕 내키는 대로 소집하고 해산하여, 있으나 마나 한 존재입니다. 입법도 상원과 하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지만, 국왕이 있는 정부 주도의 입법이 대부분입니다.

언론에 대한 탄압도 심각한 수준이라 언론과 출판, 인터넷은 무조건 검열하며 국왕, 왕실, 정부, 군대, 종교에 대한 비판은 금지하며 할 경우 가차 없이 징역 삽니다. 그러다 보니 요르단은 언론자유지수에서 낙제를 면치 못하며 심각한 언론탄압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후세인 1세는 꽤나 개념 있던 군주로 이름이 높으며, 그의 치세 때 입헌군주제가 되었습니다. 현 국왕인 압둘라 2세는 그의 장남. 그는 다른 아랍 왕족과는 비교될 정도로 개념 충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아버지보다는 약간 평가가 안 좋은 편입니다. 또한 그의 아내인 라니아 왕비가 미인으로 유명합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벌어진 민중혁명으로 요르단 왕가도 좌불안석입니다. 그동안 친미, 친 이스라엘 정책으로 지원을 얻어 왕가와 군부를 유지했기에 인구 다수가 팔레스타인계로서 불만을 억누르던 터에 이런 일로 이집트에 이슬람 과격 정권이 세워지고 그 여파로 요르단도 민중 혁명이 터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왕가는 각종 세금을 내리고 불만을 다독이고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한때 위기론도 있었으나 그래도 2012년 11월까지도 난장판이 된 시리아와는 달리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합니다.

테러에 대한 위협- 2014년 아랍권을 휘어감은 암적인 존재 다에시(IS)가 나오면서 요르단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다에쉬의 주요전략이 국내 치안이 불안정하고 국가가 파탄나기 일보직전인 나라에 기생하여 이슬람의 성전을 주장하며 하층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형태인데, 요르단의 경우 치안유지도 잘 되고 있고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 아직 대대적인 침략이나 각종 시설의 공작 파괴 등을 받지 않으나 요르단 내에서 가담자가 나오면서 테러라든지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에서 난민들이 수십만씩이나 들어온 상황이라 임금은 하향세를 보이고 집세가 급속히 올라버려서 자국민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이 와중에 이라크에서도 난민들이 대거 몰려오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르단도 감당이 안 되어 2017년 1월에 더는 난민을 못 받아주겠다며 시리아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종교는 90%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 로마 정교회, 가톨릭, 개신교를 통틀어서 8%의 기독교인이 있으며 개신교인의 수는 약 1만 명 정도가 됩니다. 요르단은 초대교회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기독교 전통과 역사를 오래 간직한 기독교인의 가문이 있으며 현지 한 개의 초교파 개신교 신학교와 목회자 그리고 약 50여개의 개신교회가 있습니다.

 

2). 요르단의 영적인 상황

중동에서 가장 일반적인 인사말은 “살람, 알라아쿰”이입니다. 이 말의 뜻은 “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가장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평화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 중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안을 인사말로 대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동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 특별히 2011년부터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에 내전으로 인해 6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그 중 삼분의 일이 터키에 그리고 레바논과 요르단에 각각 100만의 난민이 이주했으며 현재는 독일과 프랑스 헝가리 등 유럽 각지로 흩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제사회가 시리아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물적 인적자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전을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난민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동의 문제는 IS국가를 표방하는 수니파 무장단체, 레바논의 헤즈볼라, 아프리카의 보코하람 등 이슬람 극우단체에서 벌이는 테러와 잔인한 인명살상 등이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과 테러 그리고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중동입니다. 따라서 중동에서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며 사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3. 선교지 GMS 선교연혁

2013년 6월 21일 GMS 운영규칙 제5절 지부분립의 요건을 충족하여 정회원 세 가정 이상구성 되어 요르단지부가 중동중부지부에서 분립하여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GMS파송 선교사 4가정이 요르단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4. 연도별 세부 선교 일지(연혁) - 성도수, 세례교인 수 등

2011년 11월 하쉬미솨말리에 교회 협력사역(이라크 난민교회)

2012년 1월 이집트 노동자 교회 개척을 위한 가정방문 사역시작

2013년 3월 10일 마합바(사랑의)교회 개척예배 드림(요르단 내 이집트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역)

성도 수 평균 30여명

2013년 12월 시리아 난민 여성 위한 사역(뜨개질, 비즈공예, 퀼트사역)시작

2015년 7월 시리아, 이라크 난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활영어강좌(E.T.I) 사역 시작

2015년 9월 요르단 현지교회 여성 지도자를 위한 마더와이즈(Mother Wise)사역시작

2015년 12월 14일 요르단 현지교회 여성 지도자를 위한 마더와이즈(Mother Wise) 1기 수료식(12명)

2016년 5월까지 마더 와이즈 2기 수료식(16명)

 

5. 사진으로 본 선교 역사(연도별)

별도 첨부파일 참조

 

6.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