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23주/구원받은 성도의 삶-하나님 앞에서
(6월 10일 주일설교 / 롬12:1-2)
▣ 인도자 : 환영인사
1.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2. 갈수록 번성하고 있는 이슬람의 형식적인 기도와 그들의 예배에 대해서 아는 대로 나누어 보세요.
▣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해설찬송가 등을 참조하여 곡의 배경을 이해하고 부릅니다(참고:183장, 210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롬12:1-2
1. 자동차의 두 축인 전륜과 후륜처럼 우리의 신앙과 삶에도 두 축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지 말씀해 보십시오(눅3:8).
눅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2. 세상 윤리 도덕과 사법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과 계명을 주셨는데,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율법처럼 보이는 로마서는 구약과 어떤 차별성이 있습니까?(신4:13, 롬12:1).
신4: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3. 하나님은 산제사를 원하십니다. 구약의 죽은 제사와 신약의 산제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레1:4~9,사1:11,롬12:1,요4:23,24).
레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레1: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레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레1: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레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4. 매사에 어떤 문제이든 해법과 정답이 있습니다.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대안과 해결책으로 주신 소극적인 면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적극적인 면은 무엇입니까?(롬12:2, 히10:25, 빌2:5,6).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서로 나누어 보세요(시37:4, 빌2:11,4:20, 롬12:2).
시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로다/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지킴이 : 합심기도
1. 형식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예배를 위해 기도합시다.
2. 7월 1일 맥추절감사 전도축제와 작정한 태신자 2,032명에게 좋은 관계를 맺으며 당일 모두 초청되는 기쁨을 위해 기도합시다.
3. 수원신학교 10만 기도후원회 작정과 수원노회주관 교사강습회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4. 2007년도 교회 표어인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
(롬 12:1-2)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거리에 나가면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막론하고 전륜과 후륜의 바퀴가 없는 차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륜이든지 후륜이든지 만일 어느 쪽의 바퀴가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고급차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교환하기 전에는 계속해서 주행을 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의 두 축과 같이 우리에게는 믿음으로서의 구원과 구원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이 균형을 이룰 때 영육간에 가장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만일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합당한 삶이 없거나, 선한 삶을 말하면서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마치 어느 한 쪽이 고장 난 고급 자동차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많으나 바람직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는 불신자들은 더욱 신자들을 위선스럽게 보고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한 믿음 생활을 하고, 사람 앞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로마서 12장 본문 말씀에서 그 대안과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로마서의 차별성
기독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가 다 나름대로 타종교인보다 더 나은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묵시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윤리도덕이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나가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국가에는 선한 자를 장려하고 악한 자를 형벌하는 사법제도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것은 갈수록 왜 세상이 더욱 악해지기만 하는데 과연 그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게 되면 세상 윤리 도덕과 사법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율법과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광신도처럼 하나님만을 잘 믿으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잘 유지하라는 균형과 중용을 가르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같은 율법과 계명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 율법과 계명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아무리 율법을 잘 알지라도 타락한 인간의 의지로는 그것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살펴본 로마서는 마치 구약 성경의 원리와 똑같이 전반부인 로마서 1-11장까지는 바람직한 믿음에 대해서, 후반부인 로마서 12장부터는 바람직한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구약 성경 말씀의 원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구약과 똑같은 원리로 기록된 신약의 바람직한 믿음과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외형적인 원리와 구조가 구약의 율법과 똑같아 보이는 로마서는 어떤 점이 구약과 다른지 그 차별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차별성은 구약의 계명은 불특정의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신 것인 반면에, 로마서는 불 특정인에게가 아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라는 말씀처럼 믿음의 형제들에게 제한적으로 주신 말씀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믿고 인간관계를 바르게 해야 할 당위성을 가르치는 접속사로 1-11장까지 살펴본 구원의 도리를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가) 생각, 말, 행동 모두가 불의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고
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부르며 그들이 지켜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차별성은 구약의 계명처럼 일방적인 명령이나 그것을 지켜야만 복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율법적인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로 이미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자발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간절하게 권고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서 ‘권하노니’라는 말은 가까이서 부른다, 초청한다, 기원한다, 위로한다, 훈계한다, 부탁한다는 뜻으로 현재 능동태인 것을 볼 때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권고로 매우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구약시대 하나님이 강압적으로 명령을 해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이웃 사랑은 고사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며 살아온 인생들에게 그와 같이 부드럽게 권한다면 과연 받아드리고 지키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2. 거룩한 산 제사
대부분의 종교가 윤리나 도덕적인 면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종교마다 판이하게 다른 것은 종교적인 예전의 형식입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게 되면 번제에서 소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사 제도의 형식이 거창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 1:4)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레 1: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 1:6)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레 1: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레 1: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레 1:9)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물론 그 형식은 다 나름대로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형식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형식을 더 중요하게 여김으로 하나님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이 점차 형식화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이방 종교의 의식과 혼합하여 변질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제사가 바로 죽은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당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성전이 무너지고 법궤가 사라지도록 내 버려두신 이유도 바로 제사의 본질을 상실한 형식화 때문이었습니다.
(사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나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구약의 제사와 본질적으로 다른 거룩한 산제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구약의 죽은 제사와 산 세사제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죽은 제사는 짐승을 잡아 죽여 드리는 형식을 위주로 하는 제사이지만 산 제사는 살아있는 전인젹적인 몸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2) 죽은 는 제사의 법도에 따라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산 제사는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적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고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는 산 제사인 영적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예배자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찾고 계신다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찾으시느니’라는 말은 사냥개가 먹이 감을 찾는 것 같은 모습이며, 동사의 시제는 현재 진행형임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를 찾으시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구약 시대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마음을 드려야 하는 예배가 어떤 면에 있어서는 훨씬 더 어려운 예배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관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 무엇보다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 바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지 못하면 오히려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던 구약의 제사나 다른 종교의 형식보다 더 못한 것처럼 보이기 쉬운 것입니다.
정말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마음에 진실한 믿음을 담아드리는 예배가 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 우리의 예배가 마음을 담아드리는 예배가 되지 못할 때 그 형식에 있어서 다른 종교에 비해 단순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산만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예배를 단지 은혜로운 설교를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아무런 마음에 준비가 없이 귀만 가지고 참석한다면 과연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간이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가 아니라 자기중심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주일성수의 벽이 무너져 버리면서 예배에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것에 대해서 죄스러운 마음이나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예배가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도 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깊은 자기반성이 요구되는 안타까운 마음이 오늘 우리들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대안과 해결책
매사에 어떤 문제든지 그것을 풀어가는 해법과 정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다른 차별성은 문제와 해법을 동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여 주신 율법은 항상 인간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만일 인간이 항상 죄의식 속에서만 산다면 아무런 기쁨이나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받은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으로 제사의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죄에 합당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림으로 속죄 받는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제도가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죄에 대한 면죄부를 만들어 더욱 타락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그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더 이상의 형식적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사라는 형식을 없앤 것이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만남과 화해와 교제라는 제사의 본질까지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사 제도를 파하신 것은 오히려 그 본질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가 그와 같은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해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의 대안과 해결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소극적인 부분과 둘째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적극적인 말씀입니다.
1) 소극적인 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이 세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우상숭배, 물질만능주의, 형식주의, 세속화와 같은 것들로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약화되고, 변질되어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세속화되고 예배가 형식화되고 신앙이 무기력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갈수록 구원의 감격을 상실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영적 예배에 게을리 하는 일입니다.
문제에 대한 대안이고 해결책인 성경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러한 이 세대의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본받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나님은 구약의 형식적인 제사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신약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통해서 회복하기를 원하시며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산 제사인 영적 예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의 제사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형식화되면서 변질되어 버린 것처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변질되어가고 있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 가치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부분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는 영적인 삶에는 점차 무관심해져가고 오로지 돈을 벌어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충족하려는 물질 만능 주의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예배를 삶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일의 우선 순위에 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이 일주일에 있어서 첫날인 주일 성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삶의 여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순위에 최우선은 자기의 필요를 채우는 일이고 그것을 채고 난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자주 예배를 결석하면서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게 됩니다.
2) 적극적인 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신앙이 형식화되거나 아니면 그러한 형식조차 이행하지 않는 시대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삶은 결코 우리의 의지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아닌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에서 신령과 진정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이유를 오늘 성경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던 마음으로 재생하고 회복하라는 의미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모델로 삼으신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마음으로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본받아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이 바로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우리가 매주일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는 일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본받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게 되고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깨달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삶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이슬람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이슬람 사원도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형식을 거부하는 교회 안에는 십자가 장식이라도 볼 수 있지만 이슬람 사원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지 같은 종교인들끼리 집성촌을 이루고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사원에 나가거나 아니면 있는 자리에서 동쪽을 향해 엎드려 기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살아 갑니다. 심지어 공항에도 이슬람 사람들을 위한 기도실이 있습니다. 테러를 주도하는 폭력적인 종교처럼 매도되고 있는데도 갈수록 번성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관심을 갖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가장 이해가 쉬운 답은 이슬람은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고 의식이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슬람은 기독교 종주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국 교회를 무력화시켰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해도 가만히 있지 않고 점심을 사고 선물을 하고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냥 버려두시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고는 가만히 계실 수 없을 것입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렇습니다. 내 욕심을 이루고 내 소원을 이루겠다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을 하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힘이 들지만 손해 같지만 하나님이 그렇게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일에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내가 잘되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거듭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4: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정말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신령과 진정의 예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요, 근심이요, 마음의 소원이요,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물론 구약 시대의 제사처럼 억지나 형식이 아니라 이슬람과 같은 제도권이나 강압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예배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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