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27주/구원 받은 성도의 삶-나라사랑
(7월 8일 주일설교 / 롬13:1-4)
▣ 인도자 : 환영인사
1. 지난 한 주간 동안 은혜 받았던 내용들을 나누어 봅시다.
2. 나라를 위해서,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수원시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지 서로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 찬양이 : 경배찬양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2-3곡 선곡하여 부릅니다. 7월부터는 새찬송가 및 개역개정판 성경을 적용합니다(참고:586장, 460장).
▣ 인도자 : 말씀 나눔 / 롬13:1-4
1.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불신자나 타종교인보다 특별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1)하나님을 정말 진실하게 믿는 사람은 비록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비록 이해하기 어렵고 따르기 어려울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2)오히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단체와 연합들이 많이 있고 때로는 애국심을 발휘하고 때로는 감옥에 가기도 하고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순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점에서는 소극적이고 몸을 사리는 삶을 살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적인 나라 사랑과 하나님 중심의 나라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과연 누가 정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2. 바울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는 곳마다 동족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떤 마음을 먹었습니까? 그리고 기독교가 지향하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입니까?(행22:3, 8:1, 9:15, 14:19, 롬5:8, 9:3).
행23: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1)그의 생각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에 장사 되었다가 사흘만이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는 그의 생각에는 분명히 잘못된 종교요 이단이라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그의 사명은
이 땅위에서 기독교를 몰아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말을 만들고 부정적인 행동을 낳는 것처럼 바울은 그 때부터 기독교를 말살하는 일을 그의 사명으로 알고, 교회 탄압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여 투옥하고 매질을 하고, 죽이는 일에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과거 유대교를 믿을 때처럼 나와 다른 사람은 다 적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났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가 믿는 종교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잘못된 민족주의요, 잘못된 사상이요, 잘못된 종교인 것입니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인했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찾아오셔서 분명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바울에게 나타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사기극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음을 아시면서 그에게 천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를 당신의 일꾼으로 사용하시겠다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향하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랑할 수 없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면, 바울의 동족 사랑이 그러한 사랑이었으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민족 사랑도 그 같은 사랑인 것입니다.
3. 바울은 늦둥이 사도지만 많은 사역을 했습니다. 길이 번번히 막혔어도 왜 로마에 집착했을까요? 그리고 당시 로마의 시대적인 상황은 어떠했습니까?(고후11:26~30, 롬15:23,28, 1:15,13).
고후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아니하더냐/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롬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롬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그 많은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바울이 고난을 극복하고 1,2,3차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선교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에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이었음을 로마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던 때로 땅 끝을 서바나로 생각했으며, 로마로 가려는 것도 로마가 종착역이 아니라 서바나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리는 경유지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2)물론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세와 성공을 위해 너도 나도 로마를 가고자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었을 때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상숭배를 거절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의 신상 앞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황제들 가운데 기독교를 박해한 여러 황제들이 있지만 교회사적으로 열 명의 대표적인 황제들을 손꼽으며, 그 열명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황제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네로 황제이며, 바울 사도도 결국 네로 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4. 로마교회는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오늘날 정치 세력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불의한 통치자에 대한 자세는 무엇입니까?(롬13:1, 딛3:1, 벧전2:13,14, 롬13:3, 엡6:6,7, 롬13:5).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딛3: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벧전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벧전2: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총독에게 하라/롬13: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엡6: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엡6: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롬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1)(1) 권세에 순복하라
오늘 성경 말씀에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하고 국가의 질서와 국가의 평안을 위해서 내리는 명령이라면 내 생각과 맞지 않을 지라도 순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국가의 제도나 통치자의 통치 방법이 흡족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 권세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2)선을 행하라
설령 위정자들이 불법을 자행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정반대로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한 삶을 살며 비난대신 칭찬받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3) 신앙 양심을 지키라
국가의 권세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법을 준수하는 자세는 억지로가 아니라 신앙 양심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보이지 않는 거룩한 율법이 바로 양심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결코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2) 불의한 통치자에 대한 자세
그렇다고 해서 권세자들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이요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만일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경멸하고 성도의 올바를 신앙을 박해한다면 아합 왕 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들처럼 성도들은 마땅히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권세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적인 저항이 아니라 그 권세자를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시거나 제거하여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을지라도 권세자들에 대한 심판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5. 교회와 이웃 없이 나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서로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딤전2:2).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정말 상대방이 나보다 정치 지도력이 뛰어남을 인정을 하고 그를 높이고 그와 더불어 협력하는 상생의 정치꾼이 진정으로 정당보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참 지도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외롭지 않도록 ‘나’를 위해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이웃, 나라가 나와 상관이 없는 별개의 존재처럼 생각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존재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발판이고 기둥이고 지붕이고 담벼락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서로 섬기며, 이웃을 원수까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처럼 생각되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가정이 우리를 지켜주는 피난처라면 나라는 집을 보호하는 울타리와 같아서 나라가 없으면 가정도 위험하고 개인의 안전과 행복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주신 이도, 나라의 주권자를 세우신이도,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권자를 위해 기도하고 국법을 준수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길인 것입니다.
▣ 지킴이 : 합심기도
1. 나라의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고, 법을 준수하며, 자기 동족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정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기도합시다.
2. 새가족들이 우리 교회에 잘 정착하며, 모든 성도들이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서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3. 여름성경학교 및 수련회를 준비하는 교육부서와 대교구별 중식 봉사가 협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기도합시다.
4. 하반기에도 교회 표어인 치유와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열둘제자 셀 > 제자셀 교재(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힘써야 하나? (0) | 2008.12.10 |
---|---|
갚아야 할 빚 (0) | 2008.12.10 |
적은 것에도 감사하는 사람 (0) | 2008.12.10 |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웃에게 (0) | 2008.12.10 |
구원받은 성도의 삶-교회 앞에서 (0) | 2008.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