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할머니 고영희 권사] 5년 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된 ‘이야기 할머니’에 도전한 고영희 권사는 ‘암기’와 ‘발표’라는 큰 숙제를 해내고, 매주 세 곳의 ‘어린이 집’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올 들어 최고 기온을 기록 했다는 6월의 어느 오후, 고영희 권사(61세 · 광현교회)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만남을 앞두고 연두 빛 수트를 곱게 차려 입었다. 매주 평균 세 군데의 어린이집을 방문하여 무료봉사로 그곳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지 벌써 5년. 그러나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을 떠올리면 마음은 여전히 설렌다. 아이들 앞에서 솜씨를 곁들여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먼저 머릿속에 전체 내용이 암기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고 권사의 머릿속에는 그간의 세월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뒤늦게 발견한 달란트와 그 달란트를 열심히 활용하는 자신의 꽉 찬 일상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고 권사는 자신을 ‘행복한 이야기 부자’라고 소개한다.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이들 정서교육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영어, 미술, 음악 등을 잘하는 젊은 어린이집 교사들은 잘 할 수 없고, 그렇기에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엄마라 할지라도 방법이 없다고 덧붙이면서.
50대 중반, 단 한 번 해본 적 없는 ‘이야기 발표’에 도전!
고 권사는 2002년 어느 신문에 실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 마음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독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고… 교회 유치부에서 오랜 세월 봉사한 덕분에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에 부담도 없고….’ 그래서 고 권사는 서울독서협회에서 주최하는 ‘이야기 할머니 교육’이라는 기회를 망설임 없이 붙잡았다. 6개월 과정의 교육이 시작될 무렵에는 유치원 원장을 비롯하여 쟁쟁한 40명의 어르신들이 ‘이야기 할머니’를 꿈꿨으나, 정작 교육이 끝나고 활동을 시작한 이는 4명뿐이다. 이야기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 하는 방법을 배우고, 회원들 앞에서 실습하며 서로의 장단점을 체크하는 등 교육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았으나,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야기 암기’ 와 ‘발표’는 어르신들에게 큰 숙제였다.
고 권사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교육 시간을 위해 매일 많은 시간을 준비했다. 낮에는 직접 녹음한 이야기 테이프를 틀어 놓고 소일거리를 했으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되새겨 보았다. 또 어느 정도 외워졌으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고 재밌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했다. 이런 노력으로 6개월 교육 과정을 마무리한 고 권사는 용산도서관 내 어린이 집에서 첫 실습을 가졌다.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맘이 들기에 충분히 연습했다고 스스로 다독였어요.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까르르 웃으며 반응하더라고요. 그때 굉장한 기쁨을 느꼈고, 이것이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잘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니 실력이 늘 수밖에…
고 권사의 ‘이야기보따리’는 날마다 업그레이드된다. 수시로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빌려와 읽고 그 내용을 암기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숙제 같던 암기지만 이제는 요령이 생겨 가뿐하게 해낸다. 또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하여 직접 손가락 인형 등을 제작해 이야기에 재미를 더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지혜와 따뜻한 정서를 선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해서 그런지 암기 실력, 바느질 실력도 덩달아 늘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유익한 이야기 시간이 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고 권사가 들려준 비법은 다음과 같다.
① 이야기는 구연동화와 차이가 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이야기 하면 아이들이 실증내지 않는다. ② ‘용기’, ‘합심’ 등 동일한 주제를 가진 이야기를 반복해서 전하면서 교훈을 심어준다. ③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악당을 통일한다. (예를 들면 비단뱀) 쉬운 대사에 가락을 붙여 “비단뱀을 잡아라~ 비단뱀을 잡아라~” 함께 노래하면 재미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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