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재물에 묻어버린 영적 ‘장자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 팔고, 어미와 아우에 속아 아버지의 축복기도 빼앗겨버린 에서
에서는 야곱과 쌍둥이로 태어났다.
같은 날 태어났어도 에서가 형이었고, 야곱은 아우였다.
에서가 보기에 아우 야곱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뭣보다 사내로 났으면 사내다워야 마땅한데 야곱은 그런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에서가 사냥을 해오고, 무예를 닦아 벗들과 솜씨도 겨루고, 호기롭게 술잔도 다투는 사이 야곱은 집안에만 틀어박혀 엄마 리브가의 치맛자락만 졸졸 따라다녔다.
맛난 음식을 먹기라도 하면 주방 일을 거들며 소일하는(창 25:27) 야곱, 엄마 리브가는 그런 야곱이 뭐가 그리도 이쁜지 치마폭에다 감싸고 돌았다.
족장인 아버지 이삭은 달랐다. 에서의 남자다움을 좋아하였고, 모험에 찬 사냥터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무엇보다 에서가 잡아온 들짐승과 산짐승으로 요리한 별미를 더욱 좋아 하였다.
연로한 아버지는 이가 약하여 기름기 적고 야들야들한 야생노루나 꿩 고기가 제격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사냥하는 일이 에서는 즐거웠다.
#즐거운 사냥꾼 에서
하루는 야곱이 이상한 행동을 했다.
여느 때처럼 사냥하느라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가 배가 고파 집에 들어서는데 입맛을 당기는 향이 새나왔다. 팥죽이었다. 야곱이 직접 쑤었다고 했다(창 25:30).
고마운 마음으로 먹으려는데 야곱이 먹기 전에 조건이 있다며 막았다.
“형의 장자권을 내게 준다고 맹세하면 먹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에서는 웃었다.
형과 아우의 순서야 나면서 정해진 법인데 아우가 형을 제치고 장자가 되겠다고? 게다가 단 둘이서 맺은 맹세가 무슨 효력이 있을라고? 아버지가 그 말을 받아들이기나 할까? 게다가 야곱이 장자가 되었다고 치자, 그 계집애 같은 녀석이 뭘 어쩌겠단 말인가? 생각하고 말고도 없었다.
에서는 기분 좋게 헛맹세를 하고는 맛나게 팥죽과 떡을 먹어치웠다.
하지만 에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사실 하나는 야곱이란 녀석이 장자권에 한이 맺혔고, 장자권이란 게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있어서 그저 세상의 권리만 떠올린 에서로서는 생각이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약속의 아들이 지니는 하나님과의 교제권, 영적인 축복권, 이런 권리들을 에서는 가벼이 여기거나 생각조차 못한 채 덜컹 맹세해버린 것이었다(창 25:34).
#어! 하는 사이 날아간 장자권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못하는 에서였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눈멀고 귀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은 자신에게 살며시, 죽기 전에 별미를 먹은 다음 마음껏 그를 축복해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축복기도를 어머니와 야곱이 짜고는 가로챈 것이다(창 27:1-30).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용서할 수 없었다. 위험한 사냥터와 이방 족속이 우글대는 가나안 땅에서 거부로 살아남자면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받은 아버지의 축복기도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부와 권력 그리고 가문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이 장래 약속들을 동생이 가로채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에서에게는 영적인 복도, 약속의 아들 같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물질적 풍요와 가문의 번창을 의미하는 세상적 축복만이 간절했다.
약삭 빠른 야곱은 줄행랑을 놓았다.
에서는 시원했다.
이제 77세였고, 아버지 이삭은 137세의 노인이었다.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가로챈 이후 어머니 리브가의 입지는 좁아졌다.
에서는 어머니를 뒷방 늙은이로 내몰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족장일을 도맡았다.
수백 명의 종복을 거느리고 농사와 목축, 게다가 집안까지 다스리기는 쉽지 않았다.
재산 증식은 재미났다. 나이 마흔부터 얻은 아내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족장 에서의 여인들
부모들은 이방 가나안 사람들의 딸이라고 싫어 했지만 그 중에는 온천을 발견하여 졸지에 재벌이 된 장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도 있었다(창 26:34, 35, 36:1-3, 24, 25).
덕택에 에서는 장인의 재산을 지키는 무사장이 되어 400명의 무사를 이끌며 세일 땅 에돔 들에서 군림할 수 있었다(창 32:2, 33:1, 36:6-9).
세일 산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된 에서는 하란 땅에서 거부가 되어 나타난 야곱이 부럽지 아니하였다.
자신은 야곱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가졌다.
역시 하나님은 공정했으며 사기꾼 야곱보다 장자인 자신의 편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꺼이 야곱을 용서해주고 180세에 별세하는 아비 이삭의 장례식에도 형제가 나란히 자리했다(창 35:28, 29). 평생 세상적 성공에만 몰두한 에서였고, 그 것만 충족된다면 세상에 부러운 것 없었다. 영생의 하나님, 세상에 전할 큰 복 따위는 야곱에게 아낌없이 주어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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