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교/ 각종 설교 모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미션(cmc) 2009. 1. 26. 15:39

'지상설교'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고후 12:7-10)
김태일 목사(계산교회)

 

성도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는 누구나 계시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지극히 큰 계시 받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러 가지 참 계시를 받은 한 사람의 간증에 귀를 기울여야겠습니다. 그는 『여러 계시를 받은 사람이요, 지극히 큰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삼층천, 낙원에까지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온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7절에 나오는 그의 간증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관심은 큰 계시를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에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큰 계시를 받았느냐 보다는 먼저 그 사람이 자고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고하기 쉽습니다. 사실 은혜받고 자고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도, 하나님께서 교만하지 않게하시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셨을 정도가 아닙니까?
자고한 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0절에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실제로 자고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남이 나에게 자고하다고 하는 것조차, 『종 삼는 것』, 『잡아 먹는 것』, 『사로 잡는 것』, 『뺨 치는 것』 만큼이나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교만을 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남에게 종되는 것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잡아 먹히는 건 차치하고, 한 순간이라도 종이 된다거나, 남한테 끌려간다거나, 이유없이 뺨 한대만 맞아도 얼마나 화를 내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계시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이 이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러시다면 분명 계시를 이미 받은 것이고, 계속해서 받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보다도 겸손한 마음의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을 시작한 이후 어떤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더 겸손해지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기 전보다 예수 믿은 후에, 직분받기 전보다 그 후에, 지난해보다 올해에 더 겸손한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둘째로 계시와 더불어 우리가 받기를 원하는 또 하나는 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받기를 원합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안 그렇겠습니까만, 유독 우리 나라 사람들이 더 복 받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복 받기를 좋아하는지, 무슨 종교건 우리 나라에만 들어오면, 다 기복 신앙으로 변질시켜 놓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독교는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현세적인 모든 복을 받는다고 보장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일이 잘 됩니다. 예수 믿어 건강해질 수도 있고, 자녀가 잘될 수도 있고, 사업이 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세상적으로 만사가 형통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토록 하나님을 잘 섬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세상적인 만사 형통의 종교가 아닙니다. 영적인 만사 형통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적인 복을 받지 못했어도 만족할 수 있고, 또 만족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도는 한 여인이 그 남자의 신부가 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만족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듯이, 주님의 신부로서 항상 만족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가치관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세상적인 가치관과 예수 믿은 다음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어도 만족이 없고, 오히려 이중적인 가치관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현실 도피나, 극도의 신비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어떤 기도 제목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기도 제목을 가지고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겼다면 이제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셋째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계시 받기를 원하고, 복 받기를 원하고, 하나 더 있다면 능력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 능력을 어떻게 하면 받는가 그 비결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가시가 떠나기 위해 세 번 씩이나 간구한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9절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것은 기독교의 대 진리입니다.
영계의 대 원칙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진리를 발견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면 능력이 머무는가 하는 비결을, 세번째 기도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바로 나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이 약한 것들에 대하여 도리어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약한 것』에는 육체의 가시, 곧 몸에 지병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과 같은 것들도 포함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능력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능력 받기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안 받고 능력만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능력 받기는 원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는 사람은 참으로 적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한데서 오히려 온전하여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한 때, 한 순간은 큰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으로 머물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무사 안일에 빠지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세상적으로 복 많이 받고, 만사 형통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요!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서 무사 안일에 빠진다면, 능력이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기독교가 참으로 강할 때는, 바티칸에 있지 아니하였고, 카타콤 속에 있었다.』
성도 여러분 힘써 기도하시고 계십니까? 그런데도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 도리어 그 사실, 그 자체로 인해서 사도 바울처럼 크게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능력의 종이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기도 제목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오랫동안 기도했어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고난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 제목이 해결되는 동안 능력까지도 더불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받기 원하는 계시는 때로는 안목의 정욕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받기 원하는 이 땅 위에서 자자 손손 누리는 복은, 육신의 정욕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기 원하는 능력은 이 생의 자랑의 요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특별히 큰 은혜를 받은 형제들은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한때 은혜는 받고, 간증은 하되, 종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능력이 그 가운데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모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더 겸손하고, 더 만족하고, 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 중의 성도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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