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과거 현재 미래 렘 1:4-10
김경진 목사<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우리는 과거라는 말을 잘못 이해해 『과거가 있습니다』 하면 뭔가 과거에 꺼림칙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과거가 있습니다. 태어났고 공부했고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과거입니다. 그런 과거는 또한 오늘과 관계가 있고 현재는 미래와 연관되어 있기에 본문을 통해 과거를 조명하면서 아름다운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오늘을 두려워하지 말자
인생을 사는 것이 어찌 이리도 힘이 듭니까.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면 또다른 고비가 슬며시 다가옵니다. 나라 경제가 좀 괜찮은가 보다 했더니 IMF가 터져 야단입니다. 혼자만이 아닙니다. 내외가 힘을 합쳐 살아가도 힘이 듭니다. 욥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말했듯이(5:7) 참으로 힘든 생의 길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곧 오늘이라는 현재가 두렵고 초조합니다. 과연 오늘은 무슨 사건으로 나를 놀라게 할까 하며 자신감이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성도가 낙망과 초조함 속에서 떨고만 있을 수는 없쟎습니까. 성도는 이런 위기 때 세상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가져야 하니 이때 성도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과거부터 역사해오신 우리 하나님을 기억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과거가 필요합니다. 물론 과거 속에는 슬프고 아픈 기억도 많아 과거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한 여인이 영원한 나라로 건너가는 강가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뱃사공이 강을 건너려면 레테 호수의 물을 마시고 건너든지 안 마시고 건너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그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사공은 지난 날의 괴로웠던 일을 말씀히 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기빠하며 그 물을 마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뱃사공은 그 대신 과거에 기뻤던 일도 잊고 미워했던 일도 잊지만 사랑했던 추억도 잊고 실패의 경험도 있지만 성공의 추억도 잊는다고 하자 여자는 그 물을 마시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과거가 있고 고통과 즐거움, 슬픔과 기쁨, 실패와 성공의 과거가 있으며 인간은 사랑이나 성공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자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성도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경험이 있겠지만 그 모든 과거에 속한 경험을 잊지 않고 그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가 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저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과거는 다시는 머리 속에 떠올리고 싶지 않겠으나 모세는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유대인은 『기억하라』로 삽니다. 구약에는 300회에 걸쳐 기억하라, 잊어버리지 말라고 표현합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의 한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기념한 박물관에 가보면 『우리는 기억하는 한 쫓겨나기 않는다』고 여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그런 과거를 기억함으로서 자신들을 겸손케 만들어 언제나 대비하며 살게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쓸데 없이 교만하여 자기 자신과 시대를 모르고 주변 국가를 모르고 오만하다가 다시금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포로되어가는 전철을 밟지 말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런 고통과 전쟁, 종살이와 포로의 와중에서 건져내시고 역사하시던 하나님의 손길을 오늘도, 현재에도 기억하고 살면서 오늘을 용감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과거의 종살이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유민이 되었는데 어찌 오늘의 역경과 난관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없다고 낙심할 것입니까? 과거에 보살피신 하나님이 오늘도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오늘을 살고 현재를 용감하게 개척하며 살아가자는 확신의 말씀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은 기억하라는 첫번 이유에서부터 걸려 자신을 모르고 조금 잘 산다고 오만하다가 오늘의 경제 난국을 만났고 거기서부터 우리는 수욕과 난관, 좌절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이유로 용기를 얻읍시다. 우리가 오만하다가 실패했지만 그 오만을 참으로 회개하고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특히 보리고개에도 힘들어했던 우리를 건지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 이 맥추절에 감사할 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이 나라와 민족에 다시 임하실 줄 믿습니다.
나를 세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미래를 살자
이제 성도는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 보살펴 주신 하나님께서 나의 오늘을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찬송 410장이 말하듯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제는 과거를 통해 현재가 두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어떻게? 물론 내일 걱정은 내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일을 생각해야 함은 준비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소망을 갖고 삶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내일은 있고 설혹 오늘의 삶이 어렵고 피곤해도 내일에 뭔가 아름다운 것이 있고 행복이 약속된다면 오늘을 딛고 살수 있습니다.
소망은 성공에 이르는 신앙이라고 말한 헬렌 켈러의 말처럼 성공을 원한다면 소망을 가져야 하며 내일에 대한 소망, 내일에 대한 꿈이 필요합니다. 그 소망 때문에 용기가 솟고 미래에 자신감을 갖습니다. 미래를 생각지 않으면 자식 기르는 재미로, 사업을 하고 돈을 벌고 공부를 한 재미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는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바쁜 견해를 가지고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의 미래는 어떠하며 미래에 대한 보장은 누가 합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복중에서부터 아셨고 세우셨고 그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미래를 책임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처럼 우리와 약속하습니다. 말할 줄도 모르고 아이와 같아도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한 목사님의 글에 『저의 과거는 에벤에셀이요 저의 현재는 임마누엘이요 저의 미래는 여호와 이레입니다』하신 말씀은 참으로 교훈적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까? 잘산다고 했던 한국이 이런 경제적 난국을 당했을 때 소망이 있습니까? 성도라 할찌라도 불안하고 초조함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IMF를 만난 이 맥추절에 말씀 앞에서 다시 용기를 얻도록 합시다. 그분은 에벤에셀에서 처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고 풀무불 속에서도 계시던 주님이 우리의 이 난국에서도 임마누엘로 함께 계시며 오늘 이후 내일 그리고 내년 그리고 미래에도 그 분은 여호와 이레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장해 주심을 믿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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