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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비전에 사로잡힙시다세상의 포로되지 말고 열정의 목표 향해 굳건히 가야비전이라는 말은 구약에는 카존 즉 ‘묵시’, ‘이상’, ‘환상’으로, 신약에는 호라마 즉 ‘본 것’, ‘광경’, ‘환상’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세상의 비전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근거한 것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비전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이고 나타내시고 계시하시는 것에 근거합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하고자 하시는 것에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보여주심으로 용기를 주거나 그것을 성취하시도록 부르시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삶을 조명함으로 비전이 무엇이며, 비전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서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기대합니다. 비전 있는 삶을 살려면, 1. 잡혀야 합니다 예수와 그의 비전에 강력하게 사로잡혀야 합니다. 주님이 들려주시는 말씀과 보여주시는 환상으로부터 진정한 비전은 시작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29:18). 즉, 비전(카존)이 없으면 인생을 방임하지만, 비전과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은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사로잡히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다메섹에 가는 길에 예수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예수라는 인격에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자신을 통해 하기 원하시는 부르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아나니야를 통해 증거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많이 받아야 할 것이다”(행 9:15~16). 또한,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가장 강력하게 그의 중심으로 붙들었던 것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삶이란 수치와 고난,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주님에게 사로잡히는 삶이란 주님의 십자가의 삶과 부활의 능력에 사로잡힘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에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들이 얼마 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7사단,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저도 장교 임관할 때에 2명이 특공연대에 배정됐는데 제가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편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이것은 세상의 관심이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비전 있는 사람은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주님과 그의 비전에 포로가 되지 않으면 악령과 세상과 욕심에 포로가 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만일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지 못하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너무 열정적으로 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바울처럼 강력하게 사로잡히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청소년기에 예수와 그의 비전에 사로잡히지 못하면 전자오락과 음란물과 약물과 허탄한 곳에 인생의 시간들을 허비하고 방종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와 예수의 부활의 강력에 붙들려야 합니다. 2. 잡아야 합니다 비전의 필수요소는 목표와 열정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로잡힘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에 사로잡혀 미치지 않는 사람은 목표와 열정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사로잡힌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우선, 비전을 추구하는 사람은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평생의 목표 즉 푯대가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었습니다. 본문 10~11절에 보면 그는 살아가면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 했고, 종국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 했습니다. 그가 갈망했던 최상의 상급과 푯대는 바로 죽음 이후에 주님이 주시는 부활의 상급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능력에 사로잡혔고, 그것을 위해서 주님이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던 것입니다. 예수와 십자가와 부활이 배제된다면 비전이 아닙니다. 상 받음의 확신은 바울의 목표이고 비전이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니,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 4:8). 우리의 비전이 세상의 것과 다른 점은 결과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인정이며,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에 대한 확신과 열망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기도의 제목은 주님이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열정이 식지 않고, 목표가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비전에 사로잡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면 하늘 단상에서 우리의 이름이 불리고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열정입니다. 열정은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추구입니다. 가장 멋지고 행복한 사람은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시간과 열정을 지속적으로 쏟아 붓는 사람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할 일이 없이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입니다. 경계할 일은 안일한 삶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그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바울의 비전을 향한 열정은 철저하게 현실안주를 거부합니다.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립니다. 끝으로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의 기도문이 여러분에게 큰 도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저희를 뒤흔드소서! 저희가 저희 자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만족할 때, 저희가 너무 작은 꿈을 꾸었기에 그 꿈이 이루어질 때, 저희가 그 해변에서 너무 가까운 곳으로 항해했기에 안전하게 도착할 때, 그럴 때 주님! 저희를 뒤흔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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